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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혁의 스포츠에세이)불분명한 국위 선양과 '병역특례'
입력 : 2014-09-07 오후 4:07:22
[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인천 아시안게임에 나서는 야구대표팀은 '병역 원정대'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지난 2012 런던올림픽에서는 축구대표팀의 김기희가 후반 44분 투입돼 단 4분을 뛰고 병역특례를 받았다.
 
팬들 사이에서 "공이 입대 영장으로 보여 놀란 마음에 방망이로 쳤더니 홈런(야구)"이라거나 "감독이 가서 군 면제증을 받고 오라고 투입했다(축구)"는 식의 우스갯소리는 이렇게 나왔다.
 
◇'국위 선양'이 병역특례의 배경
 
◇인천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의 류중일 감독. ⓒNews1
 
국제대회 성적에 따른 병역특례는 1973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생긴 법이다. 세계 속에 한국을 빛냈다는 '국위 선양'이란 개념이 뒤를 받치고 있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유니버시아드대회, 아시아청소년대회, 아시아선수권대회를 대상으로 하다가 1990년부터 '올림픽 3위 이상 입상자와 아시안게임 우승자'로 혜택을 축소했다.
 
특별한 사례도 있다. 2002 한일월드컵 4강과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의 성적이 나오자 '국위 선양'이라는 이유로 특별법을 적용해 선수들에게 병역특례를 주기도 했다.
 
이때부터 국제대회에 나서는 선수들의 병역특례는 스포츠를 바라보는 또 관심거리가 됐다. 지난 2012 런던올림픽에서 축구대표팀이 동메달을 따자 '축구 사상 첫 메달'이란 성과 외에 선수들의 병역특례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최근에는 아예 국제대회에 나서는 선수들의 선발을 놓고 병역특례 대상자인지 아닌지가 여론의 관심을 받기도 하는 분위기다.
 
"일반인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받는다"는 의견과 "피땀 흘려 고생한 선수들에게 그 정도는 줄 수도 있다"는 반대편 목소리도 있다.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병역 문제는 스포츠계에서도 언제나 뜨거운 주제다.
 
◇병역면제와 병역특례의 차이
 
한 가지 짚을 점은 흔히 말하는 병역면제와 병역특례의 차이다.
 
특례는 군대에 아예 안 가는 것이 아니다. 해당 특례 인원이 예술·체육요원으로 분류되는 것을 말한다. 이 인원은 4주간 기초 군사훈련을 받은 뒤 34개월간 해당 분야에서 활동하는 것을 군 복무로 인정받는다.
 
스포츠의 경우에는 선수 또는 지도자로 활동하는 것을 뜻한다.
 
이 때문에 최근 새 팀을 찾는 데 난항을 겪고 있는 박주영의 병역특례가 거론되기도 했다. 박주영은 지난해 6월 기초 군사훈련을 받았으니 아직 34개월을 채우려면 2년 가까이 기간이 남았다.
 
◇'대체 복무'에 의견 모여
 
◇지난 5일 스포츠문화연구소가 '스포츠 선수 병역특례,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 모습. (사진=스포츠문화연구소)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카톨릭청년회관에는 스포츠문화연구소의 주관 아래 전문가들이 '병역특례'를 놓고 한자리에 모였다.
 
주성택 체육시민연대 전문위원, 류태호 체육시민연대 공동대표, 최동호 스포츠평론가, 박지훈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정희준 동아대 교수는 각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스포츠계 병역특례에 대한 의견을 털어놨다.
 
이날 토론회는 병역특례를 부분적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과 다른 직업군의 사례를 살펴봤을 때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섞였다. 다만 토론회 끝에는 '대체 복무' 등의 방법이 논의될 시점이라는 데 의견이 모였다.
 
대부분의 선수가 길면 10년 조금 넘게 선수 생활을 하는데 이를 위해 조금 늦게 병역을 해결할 수 있도록 보완을 해줄 수 있다는 뜻이다.
 
방법과 시기를 놓고 치열한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제도 개선을 위해 칼을 빼 들어야 할 시기는 됐다.
 
◇다른 분야와 형평성 제기 되기도
 
토론회에서는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도 했다. 문화예술에서도 스포츠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병역특례가 나오고 있는데 유독 스포츠가 미디어의 관심을 많이 받으니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문화예술 쪽에서 병역특례를 받기 쉽다는 말은 조금 빗나간 주장이다. 135개 국내외 콩쿠르 입상을 받던 시절에나 가능한 평가다.
 
이미 2011년부터 30개 콩쿠르에서 2위 안에 입상할 경우에만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도록 법이 강화됐다. 당시 법이 바뀌면서 클래식 기타가 병역특례 분야에서 제외돼 말이 많았다. 기타 협회는 똘똘 뭉쳐 병무청에 병역특례 분야로서의 편입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그 결과 지난 6월 클래식 기타 부문과 국제 기타 콩쿠르 2개 대회 우승자에 한해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다는 성과를 얻어냈다.
 
이런 맥락 속에서 문화예술 분야에 밝은 한 관계자에게 물으니 그는 "오히려 현장에서는 분야를 떠나 병역혜택을 더 확대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특정 인기 종목과 비인기 종목이 구분돼 다소 엇갈리는 의견이 나온 스포츠계와는 다른 모양새다.
 
◇대체 복무 도입은 왜 어렵나
 
◇최근 무적 선수 신분이 길어지며 병역특례의 또 다른 사례로 떠오른 박주영. ⓒNews1
 
사실 대체 복무는 몇 년 전부터 끊임없이 흘러나온 목소리다. 특히 선수의 은퇴를 고려해 30세 이후나 특정 나이를 지나 군 복무를 할 수 있도록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여러 번 나왔다. 그러나 법이 바뀌는 일은 아직 현실화하지 않았다.
 
법조계 현장에 있는 한 인사는 이 부분에 대해 짚었다. 그는 법 개정이 다소 쉽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전했다. 어떠한 기준을 두고 법을 고치자는 얘기가 나올 경우 그 기준에 반대되는 쪽에서 심하면 헌법까지 끌고 와 들고 일어설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사회에서 병역 문제는 여전히 민감하고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기본권과 국가의 존립 문제까지 확대될 경우 뒤엉킨 실타래는 더욱 풀기 어렵다.
 
최근 군대의 각종 사건·사고까지 끊이지 않으며 국민 정서라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부분까지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희준 동아대 교수는 토론회 도중 "사실 병역특례 문제가 해결되려면 통일이 돼야죠"라고 웃으며 말했다. 다소 팽팽해진 토론 분위기를 풀려는 농담이었다. 하지만 그냥 스치기에는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최동호 스포츠평론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는 "스포츠가 국가적 관점을 떠나 더 많은 어떤 것을 국민들에게 준다는 인식이 생길 때 국위 선양이나 병역특례 같은 논의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론 환기와 기초 개념 적립 필요
 
국제대회 메달 색깔이 여전히 '국위 선양'과 직결되느냐는 관측도 있다. 이 미묘한 개념을 2014년 세계 10위권 경제국을 운운하는 한국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느냐는 지적과 같은 맥락이다.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병역 문제가 스포츠계에 들어와 '특례'를 붙인 지 40년이 넘었다. 지난 3월까지 병역특례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대상자는 예술요원 553명, 체육요원 797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끌고 오면서 스포츠계에서 변화의 목소리는 꾸준히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접점을 찾기 어려운 모양새다.
 
결국 끊임없는 여론 환기와 더불어 기초 개념들의 정의부터 차근차근 이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임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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