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최근 FC안양과 인천유나이티드의 '임금 체납' 논란으로 시도민 구단들의 재정 상태가 도마 위에 오른 가운데 지역 특성을 살린 장기 계획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FC안양은 지난 20일 선수단과 축구단 직원에게 줘야 할 승리 수당과 10월 월급을 주지 못했다. 미지급액은 총 3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천유나이티드는 지난달 선수들의 급여 지급을 위해 5억 원을 건설회사로부터 빌렸다. 인천시의 재정 지원 예산도 내년부터 줄어들 전망이다. 2012년부터 떠돌던 운영난이 다시 불거진 셈이다.
지난 3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보면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대부분의 시도민 구단이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FC를 제외한 인천유나이티드, 대전시티즌, 강원FC, 경남FC, 광주FC 등이 자산총계에서 부채총계를 뺀 자본총계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현재 K리그에 참가하는 전체 22개 팀 중 군경팀인 상주상무와 안산경찰청을 제외하면 10개의 시도민 구단이 있다. 이들 모두 지자체의 지원금과 각종 스폰서 수익을 빼면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모 기업의 지원이 있는 구단들과 시도민 구단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유망주를 발굴해 더 큰 구단에 파는 것이 그나마 남는 장사라는 게 시도민 구단들의 인식이다.
하지만 이 경우 구단 측의 스카우트 활동과 유소년 클럽이 탄탄해야 하고 무엇보다 선수를 길러내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이런 시도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당장 성적을 원하는 일부의 조급함이 이를 종종 뒤흔들어 놨다.
◇시도민 구단 취지에서 벗어난 현실
국내 시도민 구단의 이런 현상은 크게 봤을 때 원래 취지와도 다르다.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할 부분은 야구와 축구의 프로화 과정이다. 세계적인 관점에서 보면 프로야구와 프로축구는 탄생하기 전 조건이 달랐다.
야구는 세계 최초의 프로야구단인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가 1869년 출범하면서 자본가들의 투자가 발판이 됐다. 시작부터 소소한 시민들의 돈이 모여 꾸릴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반면 축구는 17세기 영국에서 귀족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다 산업혁명을 계기로 도시 노동자들에게 번지기 시작했다. 영국에선 1870년대에 기업 창단 팀이 20개 있었지만 대부분의 축구클럽은 일반 직원들이 만든 팀이었다.
대표적으로 맨체스터유나이티드는 철도 직원들이 주축으로 탄생한 팀이다. 프로화로 성장하면서는 지역 중산층과 시민들이 돈을 모아 지역 선수들을 지원하는 시민구단이 생겼다. 이때부터 '서포터'란 용어가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프로축구의 시작은 조금 다르다. 오히려 프로야구와 좀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1966 잉글랜드월드컵에서 북한이 8강에 오르자 이에 자극받은 대한축구협회와 정부가 프로축구 팀 창단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후반에는 방송사들이 유럽축구를 녹화 중계하면서 세계 축구에 대한 갈증이 시청자들에 번지기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 속에 1979년 취임한 최순영 전 대한축구협회장이 프로축구 출범을 주장하면서 여러 진통 끝에 1980년 11월26일 한국프로축구연맹준비위원회가 발족했다. 그 결과 같은 해 12월20일에 한국 최초의 프로축구팀인 할렐루야가 창단했다. 이 팀의 운영은 한국 기독교 선교원이 맡았다.
2호 프로축구팀인 유공도 대한석유공사의 주도 아래 1982년 12월17일에 탄생했다. 이어 1983년 5월8일 프로축구 원년인 '슈퍼리그'가 탄생하면서 방송사 KBS가 홍보 파트너로 나섰다. 여기에 대우, 포항제철, 국민은행 등 기업이 지원하는 아마추어 3팀이 참가해 모두 5개 팀이 프로축구단의 시작점이 됐다.
◇지난 2009년 국제축구연맹(FIFA)이 세계 7대 매치로 선정한 FC서울과 수원삼성의 '슈퍼매치' 모습.ⓒNews1
최동호 스포츠평론가는 "유럽 축구를 보면 선수들이나 구단이 팀의 정체성을 잘 안다. 주민들과 융화돼 지역의 각종 일이 있을 때 의사표시를 한다"면서 "우리는 지역 발생적으로 (시도민 구단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냥 어느 곳이든 스타로서의 이미지만 가져가려 한다. 그러니까 지역 특성이 하나도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시도민 구단은 지역 주민들보다 지자체에 기댈 수밖에 없다. 지난해 6·4 지방선거철에는 "모 지방 선거 분위기가 모 시도민 구단 운영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 같다"는 말이 돌았다. 일부에서는 "그래도 여당이 돼야 운영에 조금 더 낫지 않겠느냐"는 풍문도 돌았다. 시도민 구단 지자체장이 보통 구단주를 하기 때문이다.
최동호 평론가는 "시도민 구단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단체장들의 즉흥적인 생각으로 출발한다. 그 이후에는 선거 때 지자체장을 도와줬던 사람들이 구단 운영에 나선다"면서 "이렇게 일하는 사람들은 장기적인 계획을 못 세운다. 다음 번 선거에서 자기를 그 자리에 앉혀준 사람이 떨어지면 그 과실은 다음 지자체장과 단장이 가져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성과 내기에만 급급하다"고 평했다.
◇대안은 있다..시간이 필요
시도민 구단의 성적을 살피려면 K리그 클래식(1부리그)보다는 K리그 챌린지(2부리그)를 보는 게 빠르다. 현재 K리그 클래식에는 인천(8위), 성남(10위), 경남(12위) 등 3개의 시도민 구단이 강등을 면하려 분전하고 있다. 나머지 7개 팀은 모두 챌린지 리그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챌린지 리그에 머무는 것은 단순히 성적 부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당장 수익과 연결되는 스폰서 확보와 관중 동원에 어려움을 겪는다. 여기에 중계권료와 광고 수익 배분도 클래식 리그보다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결국 재투자의 어려움을 갖고 온다. 선수 연봉 지급 등의 기본적인 것들에도 지장을 미친다. 매번 이적 시장이 열리면 시도민 구단은 선수 영입은커녕 오히려 타 구단에 주축 선수를 뺏기지 않을까 가슴을 쓸어내린다.
뛰어난 경기력과 우수한 성적을 바탕으로 관중에게 즐거움을 주는 게 프로 스포츠의 존재 이유다. 하지만 시도민 구단 앞에 놓인 현실은 무턱대고 이런 것들을 바랄 수 없게 한다.
◇23일 기준 K리그 챌린지(2부 리그) 순위표. 안산, 고양, 충주를 빼면 전부 시도민 구단이다. (표 캡쳐=프로축구연맹)
이같은 재정난 타개를 위해서는 가까운 일본의 J리그를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J리그 소규모 구단이 펼치고 있는 '지역 밀착' 마케팅을 받아들여아 한다는 것이다. 각종 지역 사회 공헌활동을 활발히 하고 시민들의 품속으로 파고들어 그들로부터 소소한 후원을 받기 시작하면 언젠간 흑자로 돌아선다는 게 핵심이다.
물론 여기에도 구단 고위층에서 "성적이 곧 돈"이라는 인식을 바꾸고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게 전제 조건이다.
프로축구연맹도 각 구단이 축구와 지역 사회 공헌활동을 통해 연고지에 녹아들길 바라고 있다. 시도민 구단들도 각종 사회공헌활동과 유소년 클럽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프로축구연맹 홍보팀 관계자는 "구단에 관련 자료를 요청해 모으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지금보다 더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국내 축구 전체를 이끄는 대한축구협회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정희준 동아대 교수는 "A매치 위주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A매치 대부분도 서울에서 열리지 않느냐"며 "프로축구연맹이 일본에 건너가 J리그 사례도 많이 보고 각 구단도 노력을 많이 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협회가 국가대표 위주의 행정을 지양하고 K리그를 비롯한 풀뿌리 축구에 더 신경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