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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혁의 스포츠에세이)시도민 축구단 문제, 정치로 풀자
입력 : 2014-12-12 오후 5:19:47
[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스포츠는 스포츠로 바라볼 때 가장 빛난다. 정치 문제가 개입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스포츠 팬 대다수가 공감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프로' 스포츠로 시선을 돌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직 국내 현실에서 스포츠와 정치는 떼려야 뗄 수 없다. 국내 프로 스포츠의 발전이 그랬기 때문이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로 눈을 돌려도 축구와 정치의 '동거' 역사는 깊다.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단일 종목으로 가장 인기가 높은 축구를 정치권은 외면할 수 없었다.
 
정치권에서 축구는 이따금 지지를 호소하는 좋은 도구가 됐다. 때로는 사회통합을 이루는 재료이기도 했다. 어떨 때는 정치적인 문제를 불러일으켜 지역, 인종, 나라 간 전쟁까지 부르는 갈등의 초석도 됐다. 이런 사례를 모아 축구와 정치를 풀어낸 책이나 논문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국내 사정도 비슷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축국'이란 공차기 놀이가 있다고 기록했지만 근대 축구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조선 시대인 1882년(고종 19년) 6월이라는 게 정설이다.
 
당시 영국 군함 플라잉피시호의 승무원들이 연안 부두에서 공을 찼으며 이를 지켜본 주민들이 축구를 따라 한 것이 한국 축구의 시작이었다. 이후 한일 감정과 남북관계 등을 토대로 정치권이 축구판 자체를 키운 면도 있다.
 
◇K리그 경기 모습. ⓒNews1
 
◇대립각 세우고 있는 축구계 내부와 외부의 시각
 
축구와 정치를 묶어본 것은 최근 시도민 프로축구단에 많은 시선이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이재명 성남 시장 겸 성남FC 구단주의 '심판 판정' 논란과 홍준표 경남도지사 겸 경남FC 구단주의 '팀 해체' 발언 때문이다.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구단주이자 지역 정치인들이 축구의 한 면을 공론화했다는 것은 공통점이다.
 
이를 두고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사태 이후 이 두 명의 정치인들이 축구에 대해 얼마나 관심과 애정을 쏟는지 지켜봐야 한다.
 
주목할 점은 이를 둘러싼 내부와 외부의 온도 차다. 특히 이재명 구단주의 사례는 축구계 안쪽 의견과 바깥쪽 의견이 판이하다. 축구계 내부에선 "정치인들의 정치적 발언", "축구를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 "정치에 축구가 개입해선 안 된다"와 같은 목소리가 있다. 반면 일부 팬들과 축구계에 종사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일리가 있는 말", "한 번쯤 개선이 필요한 문제", "축구만 예외일 순 없다" 등의 주장도 있다.
 
시간을 되돌려보면 이번 사안에서 이재명 구단주는 볼멘소리를 했다. 그는 스포츠 전문 언론과 취재진이 선입견을 품고 자신을 본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구단주는 취재진을 향해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도 했다. 그의 화법과 방법이 모두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왜 그런 소리를 계속하는지는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지난 11일 이재명 구단주의 징계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49.7%가 '구단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발언으로 징계 대상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프로축구의 명예를 훼손하였으므로 마땅히 징계해야 한다'는 응답은 28.1%에 그쳤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기사 댓글 등에서 다수의 팬이 몇몇 언론을 향해 내놓은 쓴소리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모양새다.
 
"축구도 모르는 정치인이 하는 소리"라고 선을 그을 게 아니라 진짜 한 번 치열하게 토론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바깥에서 현실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치부한다면 이 세상에 비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집단은 없다. 팔은 안으로 굽기 때문이다.
 
◇성남FC의 이재명 구단주(왼쪽)와 김학범 감독. ⓒNews1
 
◇시도민구단 재정 안정화까지는 정치적 도움 필요
 
시도민구단이 처한 상황 때문에도 그렇다. FC안양과 인천유나이티드의 '임금 체납'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이들 구단은 선수단과 직원에게 줘야 할 임금을 제때 주지 못해 홍역을 치렀다. 두 구단을 비롯해 대전시티즌, 강원FC, 경남FC, 광주FC, 경남FC 등은 이미 자본 잠식상태다.
 
클래식(1부리그)과 챌린지 22개 팀 중 군경 팀인 상주상무와 안산경찰청을 제외하면 10개의 시도민구단이 있는데 이들 모두 마땅한 수익처가 없다. 그러다 보니 각 지자체에 기대는 재정 문제가 종종 불거지고 있다.
 
프로축구단의 각 경기장 시설 운영권은 구단에 없다. 구단들은 결국 빌려 쓰는 세입자다. 자연히 관련 사업을 펼쳐 이익을 얻기 어려운 구조다. 이 세상에 전셋집 살면서 집 고치고 앞마당 가꾸고 집값 높이려 이런저런 인테리어를 하는 사람은 없다.
 
수익이 없으니 제대로 된 선수 영입도 어려워진다. 수준 높은 선수가 없으니 성적 부진으로 이어진다. 성적이 떨어지면 구단이 거둬들일 수 있는 광고비도 줄어들고 스폰서 구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상황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돌며 시도민구단의 재정 상태는 더욱 악화되는 구조다.
 
이를 위한 해결책도 제시되고 있다. 해외 유명 클럽들의 사례나 일본 J리그 클럽의 모범적인 시도민구단 운영이 꼽히고 있다. 모두 좋다. 그러나 시간이 걸리는 방법이다. 여기서 제시하는 '지역 밀착 마케팅'이나 '유소년 클럽 활성화'는 긴 호흡이 필요한 사안이다. 축구단을 운영하는 실무진도 이런 것들은 귀가 따갑도록 들어 알고 있다.
 
결국 시도민구단이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는 정치에 해결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법과 제도를 손보는 게 시간을 단축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프로축구연맹 이사회 모습. (사진=프로축구연맹)
 
◇토토 활성화와 경기장 운영권 등 요구 사항 충분
 
시도민구단이 지자체의 재정적 지원을 받고 지자체장을 구단주로 두면서 "정치인은 개입하지 말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이는 마치 다 큰 성인이 부모님께 생활비 받고 살면서 "돈만 달라, 내가 뭘 하든 말 한마디도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축구에 정치인이 불순한 의도로 개입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무턱대고 축구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라고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축구계 내부 고위층이 시도민구단에 대한 자립환경을 만들어주는 데 얼마나 노력했는지 반성할 때다.
 
정치권에 요구할 방법은 많다. 이른바 '지하 경제'로 불리는 거대한 불법 스포츠토토 시장의 제도를 손봐 프로축구연맹이 거둘 수 있는 수익을 늘리는 게 한 예다. 여기서 나오는 수익 중 일정 금액을 기업구단보다 시도민구단이 더 갖게 하는 방법도 있다. 아니면 시도민구단이 지역 조기 축구회를 통해 각종 수익사업을 벌이며 지역 밀착 마케팅까지 펼치는 법도 있다. 경기장 운영권을 줘 지역민들에게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익을 챙길 수 있게 하는 장기적인 계획도 세울 수 있다.
 
정치권도 자신들이 개입해 온 축구판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정치권이 프로축구의 출범과 시도민구단의 출현 과정부터 돌아봤으면 한다. 1983년 프로축구 출범은 당시 정치권의 의지가 있었으며 2002년 한일월드컵을 전후로 '창단 붐'이 퍼진 시도민구단도 각 지역 정치권이 시작점이었다.
 
원로 축구계 인사들이 펼친 일을 지금 축구계 인사들이 다듬고 수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치인들도 자신의 선배들이 축구에 한 긍정적인 일과 부정적인 일 모두 끌어안아 발전적인 길을 제시해야 한다.
 
유럽 축구계에서 유명한 조세 무리뉴(첼시) 감독은 화려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연패에 빠졌을 당시 압박감에 대해 "그런 건 압박감이 아니다. 진정한 압박감은 자신들의 아이들을 위해서 음식 살 돈이 없는 전 세계 수백만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축구와 그를 바라보는 세계관을 내비친 말이다.
 
스포츠의 가치는 고귀하고 축구도 전 세계적인 언어이자 문화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넓은 시각으로 '세상 안에서의 축구'를 들여다보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축구를 사랑하는 측면에서 보면 축구와 정치가 분리된 '축구 선진국'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의견이다. 분명히 그렇게 돼야만 한다. 하지만 국내 현실에서 이는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때까진 정치권과 축구가 올바른 동거를 해야 한다.
 
임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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