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축구대표팀은 당시 세계 최강인 헝가리(0-9)와 터키(0-7)에게 대패하며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6·25 전쟁(1950~1953년)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뛴 그들의 실력을 탓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리고 수십 년 후 한국은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 개최와 4강의 기적을 포함해 8회 연속(1986~2014년) 월드컵 진출 등의 결과를 달성했다.
지난 9일(한국시간) 개막한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선 팔레스타인은 미래의 한국과 같은 기적의 역사를 써내려가기 위한 첫번째 도전장을 던졌다.
상황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이들 또한 국민들에게 축구로 희망을 주겠다는 마음은 과거 한국 축구대표팀과 같다.
팔레스타인에게 아시안컵은 사상 첫 메이저 대회 본선진출이자 이스라엘과의 오랜 분쟁으로 고통을 받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대회다.
◇2015 호주 아시안컵에 출전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선수단. (사진=로이터통신)
팔레스타인은 지난해 5월31일 아시아축구연맹(AFC) 챌린지컵 결승에서 필리핀을 1-0으로 꺾으며 우승을 차지했다. 5경기에서 1골도 내주지 않으며 사상 첫 아시안컵 진출을 이뤘다.
이 때문에 팔레스타인 대표팀은 지난 12일 일본과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0-4로 졌어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박수를 받았다. 당당히 팔레스타인 국기를 달고 "우리도 하나의 국가"라는 사실을 세계에 알리고 싶은 마음이 선수들에겐 더 크기 때문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 수십 년 넘게 분쟁 중이다. 흔히 '가자지구 분쟁'으로 대표되는 대립으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끝이 안 보이는 전쟁을 계속 하고 있다.
지난해 7월30일에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규모 공습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국가대표 축구팀 출신 코치인 아헤드 자쿠트가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그는 청소년 대표부터 차근차근 엘리트 코스를 밟은 팔레스타인 축구의 상징과도 같았다. 당시 로이터 통신은 "팔레스타인이 최고의 선수를 잃었다. 그는 최고의 미드필더였다"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팔레스타인이 축구에서만큼은 하나의 국가로 인정받고 있지만 이 또한 쉽지는 않았다. 팔레스타인은 1998년 처음으로 FIFA에 가입했다. 분쟁지역이기 때문에 FIFA는 하나의 독립 국가로 팔레스타인을 인정하고 가입승인을 하는 데 큰 부담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팔레스타인은 우여곡절 끝에 FIFA 회원국이 됐지만 여전히 국제연합(UN)에는 올라있지 않은 국가다. UN에는 정식 국가보다 한 단계 낮은 비회원 옵서버 국가가 있는데 팔레스타인은 여기에 들어있다.
팔레스타인은 현재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113위이고 이는 이번 아시안컵에 참가하는 16개 국가 중 14번째다.
특히 이번 아시안컵에서 팔레스타인 대표팀은 가자지구 출신의 주전 6명이 함께 하지도 못했다. 이스라엘 당국이 여행제한 조치를 해 비행기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한국시간) 열린 팔레스타인과 일본의 2015 호주 아시안컵 D조 조별리그 경기 모습. (사진=로이터통신)
하지만 이러한 것들도 선수단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팔레스타인의 주축 공격수 아쉬라프 누만은 일본전을 앞두고 AFC와 인터뷰에서 "세계가 우리의 국가를 듣고 우리의 깃발을 볼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우리도 축구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세계에 증명하려 여기에 와 있다"고 말했다.
누만은 최근 미국 스포츠전문매체 ESPN이 선정한 2014년 아시아선수 순위에서 4위에 올랐다. AFC 챌린지컵 5경기에서 4골을 터뜨려 팔레스타인의 사상 첫 아시안컵 출전 1등 공신이다.
팔레스타인은 오는 16일 요르단과 D조 조별리그 2차전을 치른다. 20일에는 이라크와 마지막 조별리그 3차전을 펼친다. D조에서 일본의 조 1위가 확실시되는 가운데 이미 골 득실 '-4'를 기록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이 2위에 오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축구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승패를 뛰어넘어 당당히 세계 속 하나의 구성원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읽힌다. 팔레스타인의 사상 첫 메이저 대회 첫 골의 주인공도 관심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