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최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감독 지형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스페셜 원' 조제 무리뉴(52·첼시) 감독의 공격적인 화법 대신에 '노멀 원' 위르겐 클롭(48·리버풀) 감독의 소통이 환영받는 분위기다.
각각 특별함과 평범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무리뉴 감독과 클롭 감독 간 묘한 대결 구도도 형성됐다. 이 가운데 첼시와 리버풀은 오는 31일(이하 한국시간) 첼시 홈구장인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EPL 11라운드 맞대결을 벌인다.
성적 부진으로 경질설까지 나돌고 있는 무리뉴 감독과 3경기 연속 무승부로 예열을 마친 뒤 첫 승리를 따낸 클롭 감독 모두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이다.
◇추락하는 '스페셜 원' 무리뉴
◇첼시의 조제 무리뉴 감독. 사진/첼시 홈페이지
강한 자신감으로 똘똘 뭉쳤던 무리뉴 감독의 첼시는 최근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시즌 초부터 팀 주치의와 갈등을 일으켰던 그는 최근에도 끊임없이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면서 비판의 화살을 직접 맞고 있다. 그러자 여러 현지 언론들은 무리뉴 감독의 선수 기용과 경기 운영까지 꼬집는 중이다. 논란이 또 다른 논란을 낳으면서 최악의 상황까지 치닫고 있다.
팀 분위기가 꼬꾸라지니 성적도 좋을 리 없다. 지난 시즌 EPL 우승팀이라는 첼시의 자신감은 사라진 지 오래다. 첼시는 EPL 20개 구단 중 15위(3승2무5패·승점11)라는 충격적인 순위표에 머물러 있다. 지난 28일 열린 캐피털 원 컵(리그컵) 16강전에서는 스토크시티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탈락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시즌 초부터 이어진 무리뉴 감독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는 최고점을 찍었다. 무리뉴 감독과 첼시 선수단 사이의 불화설까지 제기되고 있으며 악명 높기로 소문난 일부 현지 언론들은 연일 무리뉴를 향한 자극적인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하지만 분위기가 최악으로 흐르고 있어도 무리뉴 감독의 태도만은 굳건하다. 그는 최근 <스카이스포츠>와 인터뷰에서 "항상 사람들은 내가 이기면 결과가 전부는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또 무조건 결과를 내놓으라고 하는 모순을 보인다"면서 "그들은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그건 내가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챔피언이었다는 사실"이라며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무리뉴의 태도를 놓고 유럽 축구 전문가 사이먼 쿠퍼는 포르투갈인이라는 그의 특성을 들어 해석하기도 했다. 쿠퍼는 무리뉴에 대해 "현재 유럽에는 존재하지 않는 파쇼 독재 정권하의 포르투갈에서 성장했다. 포르투갈은 서유럽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혁명을 겪은 나라"라며 "포르투갈에는 여전히 음모론이 퍼져있는데 가장 잘 팔리는 2대 일간지가 스포츠 신문이니 축구에 집중된 게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따금 무리뉴가 심판 판정부터 리그 운영까지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푸념한 것을 꼬집은 것이다.
또 다른 분석도 있다. 여전한 무리뉴 감독의 강한 자신감 속에는 금전적인 부분이 섞였다는 것이다. 첼시는 지난해 무리뉴 감독과 4년 계약을 맺었는데 구단이 그를 경질할 경우 위약금 3000만 파운드(약 520억원)를 내줘야 한다는 소식이다. 아무리 부자 구단 첼시라도 무리뉴 정도의 감독을 천문학적인 액수를 지급하면서까지 내치긴 힘들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무리뉴의 강한 자신감과 톡톡 튀는 언행은 뛰어난 성적 속에서 빛났다. 하지만 성적이 부진하자 그 모든 것들이 비판의 초석으로 변해 발화하고 있다.
◇떠오르는 '노멀 원' 클롭
◇리버풀의 위르겐 클롭 감독. 사진/리버풀 홈페이지
이제 EPL 팬들과 언론은 클롭의 부드러운 카리스마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9일 리버풀 지휘봉을 잡으며 EPL에 부임한 그는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허물없는 소통과 편안한 이미지를 내뿜었다. 그러면서도 성적은 으뜸이었다. 2004년에 마인츠를 처음으로 1부리그로 올려놓은 뒤 도르트문트의 2010~2011시즌과 2011~2012시즌 2년 연속 우승을 이끌었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재충전을 위한 휴식에 들어가자 전 세계 유명 클럽들은 그에게 꾸준한 관심을 보여왔다.
이 때문에 리버풀은 계약 기간 3년과 연봉 700만 파운드(약 125억원)를 클롭에게 안기며 그를 붙잡았다. 리버풀 감독 역사상 최고의 조건을 내민 것이다. 이는 EPL 전체를 보더라도 무리뉴, 아르센 벵거(아스널), 루이스 판할(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 이어 4번째로 높은 금액이다. 지난 시즌을 6위로 마친 리버풀이 얼마나 그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신을 향한 기대를 알고 있어서인지 클롭 감독은 취임 직후 기자회견부터 재미있는 발언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는 '스페셜 원'과 비교해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을 받자 "난 완전히 평범한 사람이다. 난 '노멀 원'이다"라고 덤덤히 말했다. 리버풀은 클롭의 '노멀 원' 발언 이후 불과 이틀 만에 홈페이지를 통해 'The Normal One'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와 머그컵 같은 여러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런 클롭의 발언은 무리뉴 감독과의 묘한 비교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축구팬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지난 13일 영국 언론 '데일리메일'은 전 세계 트위터 이용자들의 축구 감독 부임 직후 이름 언급 횟수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클롭 감독은 리버풀 부임 직후 200만 번 이상 언급된 것으로 집계됐다. 클롭의 뒤를 이은 2위는 지난 2013년 첼시 감독으로 돌아왔을 당시의 무리뉴(170만 번) 감독이라고 전해지면서 둘의 대결 구도는 재차 눈길을 끌었다.
클롭 감독 부임 이후 리버풀은 3경기 연속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러다 지난 29일 홈구장 안필드에서 열린 캐피털 원 컵 16강 본머스와 경기에서 1-0으로 승리를 따냈다. 클롭 감독의 색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던 현지 언론의 긍정적인 평가는 더욱 따뜻해졌다. '스페셜 원'과 '노멀 원'이라는 대결구도가 구축되자마자 무게 중심이 '노멀 원'으로 기우는 모양새다.
임정혁 기자 koms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