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국내 최고령 선수이자 최다 출전 기록을 써나가고 있는 김병지(45·전남드래곤즈)가 구단의 미온적인 태도와 예산 감축으로 인해 위기에 처했다. K리그 선수들의 잇따른 중국 이적이 속출하는 가운데 '레전드(전설)'조차 돈 때문에 대접받지 못한다는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병지는 최근 전남과 재계약을 포기했다. 동갑이자 함께 선수생활을 했던 노상래 감독이 구단에 김병지 잔류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K리그 700경기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고 최고령 출전 기록을 써나가고 있던 그의 선수 생활이 팀을 옮기지 않는 이상 끊길 모양새다.
축구계에서 전남과 김병지 사이의 이상 징후는 여름부터 포착됐다. 김병지가 700경기 출전을 세운 게 지난 7월26일 제주와 경기인데 그날 이후 전남은 백업 골키퍼의 기용을 늘렸다. 김병지는 이후 6경기 출전에 그쳤다. 전남이 김병지와 재계약에 미온적이라는 관측도 그때부터 나왔다.
김병지의 '고액 연봉'이 이유로 꼽힌다. 3억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김병지의 연봉이면 신인급 선수들 다수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김병지는 줄곧 "돈을 벌기 위해 뛰던 시절은 지났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구단 입장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어린 선수를 키워내는 게 남는 장사다.
구단 운영 방안도 김병지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K리그 기업구단이나 시도민구단 모두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전남의 모기업인 포스코도 지난 7월에 국내 계열사 50% 감축 방안을 발표했다. 김병지가 막 벤치로 밀려나던 시점이 바로 이 때다. 모기업이 허리띠 졸라매기에 돌입한 상황에서는 축구단도 그 여파를 피할 수 없다. 실제 전남 유스에서 자란 이종호와 핵심 수비수인 임종은도 최근 전남에 이적료를 안기고 전북현대로의 이적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랜 기간 열심히 뛴 선수들을 '레전드'라 부르며 칭송하지만 이런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는 현실 속에서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는 문화는 여전히 요원한 상황이다. "777경기 출전 기록 만큼은 세우고 싶다"던 김병지의 바람은 이제 전남 유니폼이 아닌 다른 팀에서나 가능한 얘기가 됐다.
축구 관계자는 "일본에 미우라 같은 선수도 아직 뛰고 있다는 얘기를 듣다 보면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것 또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면서 "김병지라는 하나의 상징성이 이렇게 사라지는 건 아쉬운 일"이라고 말했다.
1990년대 한일전에서 김병지를 향해 슈팅을 날리던 일본 공격수 미우라 카즈요시(48·요코하마FC)는 여전히 J리그를 누비고 있다. 요코하마는 지난 11월11일 11시11분에 미우라와 재계약을 공식 발표했다. 등번호 11번인 그를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미우라는 J리그 최고령 득점기록(48세4개월2일)과 출전기록(48세7개월22일)을 보유하고 있다.
임정혁 기자 komsy@etomato.com
◇지난 7월26일 전남 광양축구전용구장에서 열린 '2015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전남 드래곤즈와 제주 유나이티드의 경기에서 700경기 출장 기록을 달성한 전남 김병지가 슈팅을 막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7월26일 전남 광양축구전용구장에서 열린 '2015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전남 드래곤즈와 제주 유나이티드의 경기에서 700경기 출장 기록을 달성한 전남 김병지(맨 오른쪽)가 국민 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