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기종기자] 국내 시장에서 고속 성장을 지속해 온 수입차 업계에 올 한해는 더욱 특별했다. 해마다 두자릿수대로 성장하던 판매량은 마침내 '연간 20만대 돌파'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폭스바겐 디젤 게이트와 BMW 화재 사건, 벤츠 골프채 파손 등 각종 악재에도 시장 강자들은 위치를 굳건히 지켰고 포드와 재규어랜드로버는 국내 진출 이래 첫 1만대 클럽 가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밖에 볼보와 푸조 등도 업계 평균을 웃도는 성장치를 기록하며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1년 장사를 마무리 중이다.
하지만 이같은 수입차 업계에도 '아픈 손가락'들은 있다. 상품성과 경쟁력에 있어 결코 밀리지 않아 내부적으로도 기대를 가졌지만 예상 밖 변수와 생각만큼 따라 와주지 못한 시장 반응에 본의 아닌 '숨은 진주'가 된 모델들도 존재했다.
해외선 잘 나가는데...국내엔 시기상조?
부쩍 커진 시장에서 수입차 업계는 고객층 확대를 위한 시도를 부지런히 전개했다. 하지만 수입차 시장에 두드러진 세단 강세와 자동차 시장을 통틀어 돌풍을 일으킨 SUV 인기에 모험적인 시도에 머물렀다.
부동의 시장 1위를 기록 중인 BMW의 경우 '320d Touring'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름 그대로 여행을 위한 차종인만큼 넉넉한 실내공간과 부족하지 않은 뒷좌석 공간에도 불구하고 유독 세단을 선호하는 국내 분위기 탓에 월 평균 10대 남짓 판매하는데 그쳤다. 유럽에서 세단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는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메르세데스-벤츠 역시 인기모델 C클래스를 기반으로 출시한 왜건형 모델 'C220 d 4MATIC Estate'가 아쉬운 성적표를 받았다. 높은 실용성과 뒤쳐지지 않는 스펙을 바탕으로 지난 1986년 유럽에서 1세대 출시 이후 해외에서는 전세계적으로 100만대 판매를 돌파할 정도로 인기가 있는 모델이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들의 취향을 바꾸지는 못했다. 본격 판매에 돌입한 지난 9월부터 지난달까지 54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해외에선 높은 인기를 끌고있지만 왜건 모델 특성상 올해 국내에서 큰 반응을 일으키지 못한 BMW 320d 투어링(왼쪽)과 벤츠 C220 d 4MATIC ESTATE(오른쪽). 사진/ 각 사
하지만 업계는 왜건형 모델의 가능성을 높이 사는 편이다. 세단의 안정감과 SUV만큼의 공간 활용성을 갖춘 왜건형 모델이 국내 시장에서 인기를 끌지 못할 요인은 없다는 것이다. 과거 해치백 모델이 외면받다 최근 각 사별 인기 핫해치를 기반으로 시장에 안착한 것 역시 왜건에 기대를 걸게 하는 부분이다.
절대강자에 가려진 '숨은 진주'들
특정 브랜드의 견고한 입지를 넘어서지 못하고 숨은 진주들이 힘을 못 쓰는 경우도 존재했다.
한국 진출 이후 첫 1만대 클럽 가입을 눈 앞에 둔 포드와 소형 SUV 2008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둔 푸조는 독일 브랜드의 강세에 아쉬움이 남는 모델을 남겼다. 소형 해치백 모델 포커드 디젤과 푸조 뉴 308이 그것이다.
두 모델은 '디젤'과 '컴팩트'라는 올해 수입차 시장의 트렌드를 충실히 따랐지만 해당 세그먼트 절대 강자인 폭스바겐 골프의 높은 벽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같은 디젤 차량인 포드 몬데오와 푸조 2008이 호조를 보인 데 비해 아쉬운 결과다.
포드 포커스 디젤(왼쪽)과 뉴 푸조 308(오른쪽). 사진/각 사.
씨트로엥의 피카소는 다소 애매한 포지셔닝이 아프게 작용했다. 아웃도어 붐을 타고 7인승 모델인 그랜드 피카소가 각광받았지만 5인승 모델은 탁월한 개방감과 높은 연비 등의 장점에도 SUV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정체성으로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아우디의 플래그십 세단 A8은 너무 젊은 이미지가 발목을 잡았다. S클래스로 수입 고급세단 시장에서 절대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벤츠는 물론, BMW 7시리즈에도 밀리는 형국이다. 여타 플래그십 세단들이 중장년층에 특화된 데 반해 다소 젊어보이는 브랜드 이미지가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한 케이스다.
해외 시장에서는 젊은 CEO들이 주로 선택하기도 하지만 중장년 CEO 수가 절대적인 국내 기업 환경 특성상 우위를 점하긴 힘들었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해당 모델들은 비록 아쉬움을 남겼지만 내부적으로는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꼽히는 만큼 내년도 수입차 시장 트렌드에 따라 반등할 잠재력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정기종 기자 hareggu@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