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지난 19일 발레오전장 노동조합이 민주노총 산하 산별노조인 금속노조를 탈퇴해 기업노조로 변경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산별노조 산하 지회·지부가 스스로 기업노조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노동계 전반에 걸친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산별노조 체계를 기반으로 한 민주노총에 초점이 집중되고 있지만, 이번 판결을 계기로 유사한 사례가 늘어난다면 단체교섭의 주체가 ‘산업별 노사’에서 ‘사업장 내 노사’로 축소돼 노동계의 교섭력 약화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우선 노동계에서는 기업들이 판결을 악용해 산별노조 탈퇴 유도를 목적으로 기업노조 전환을 지원할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기존에 산별노조 지회가 기업노조로 전환하려면 조합원들이 지회에서 탈퇴한 후 별도의 노조를 설립해야 했다. 이 때문에 각 기업에서는 별도의 노조를 만들어 지원하는 방식으로 산별노조 지회를 견제해왔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기업은 노조원 전체를 기업노조 소속으로 돌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산별노조가 다시 해당 사업장에 지회를 만들려면 처음부터 가입자를 모집해야 하는데, 이 같은 방식으로 기존의 조합원 수와 영향력을 회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문제는 산별노조가 기업노조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어날 경우 사업장별 교섭력에 격차가 생겨 같은 산업 안에서도 양극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노동행위의 의미가 단순한 임금협상으로 전락할 소지가 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기존에 산별노조는 임금 같은 근로조건 중심의 협상뿐 아니라 공공성 확보,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연대, 노동정책에 대한 개입 등 노동환경의 전반적인 개선을 위해 노력해왔다”며 “그런데 교섭의 주체가 개별 기업노조로 축소되면 정부나 재벌을 상대로 한 교섭은 불가능해져 노동운동 전체가 후퇴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노동계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기업별로 교섭을 하면 노조의 규모나 영향력에 따라 동일 업종 내에서도 근로조건, 임금 양극화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제도적으로 노동조합의 지역별·세대별 연대를 인정하지 않아 업계와 단체교섭이 가능한 단체는 사실상 산별노조뿐이다.
다만 이번 판결의 충격은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다른 노동계 관계자는 “이미 산별노조 조합원들을 탈퇴시켜 기업노조에 가입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도 따지자면 조직형태 변화다. 따라서 판결 전부터 허용되고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세종=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
정진홍 (오른쪽 두번째) 금속노조 경주지부장이 19일 오후 서울 대법원 법정 밖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에 눈물을 보이며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