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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트렌드)B급 제품의 이유있는 인기…"가치·경험을 팝니다"
LG경제연구원 "B급, 가성비 넘어 경험 제공…성숙기 시장의 돌파구 될 수도"
입력 : 2016-06-20 오후 12:30:00
불황이 지속되면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갖춘 B급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가성비를 갖춘 대표적 업체인 샤오미는 지난해 7100만대의 스마트폰을 판매한 데 이어 올해에는 화웨이에 이어 중국 업체로는 두번째로 '1억대 판매 클럽'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B급 제품에는 '가성비'만 있는 것은 아니다. B급 제품은 저렴한 가격으로 새로운 경험에 대한 문턱을 낮출 수 있어 시장의 새로운 돌파구로도 주목받고 있다. 
 
[뉴스토마토 원수경기자] 최근 B급 제품을 파는 인터넷 쇼핑몰이 늘고 있다. 지난 4월 중소 유통업체인 쇼핑코리아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이나 렌털·리퍼브·전시·중고 제품 등을 주로 판매하는 온라인 오픈마켓인 '타임투프라이스'를 선보였다. 이외에도 '리퍼브샵', '반품세일닷컴', '전시몰' 등 전시용 가전 및 리퍼브(반품됐거나 하자가 있는 제품을 수리한 것) 제품을 파는 곳이나 '떠리몰', '임박몰', '이유몰' 등 유통기한이 임박한 화장품 및 음식을 파는 쇼핑몰이 인기를 끌고 있다. 
 
B급 제품의 수요가 많아진 데에는 경기불황의 영향이 크다. 불경기와 성장 정체가 지속되면서 소비자들이 외부 시선보다는 실리를 더 중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 가성비가 일종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심리적 동조화 현상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다만 불황과 가성비가 B급 제품을 선택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B급 제품의 이유있는 선택'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B급 제품은 가성비가 좋다는 점 외에도 소유 대신 다양한 경험에 가치를 두는 성향을 충족시키는 데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편안한 소비·희소가치 충족
 
B급 제품의 소비는 겉치레식 소비에서 오는 피로감을 잊게 해준다. 유미연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B급 제품은 남들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것 혹은 주류를 좇지 않아도 소비 자체는 포기하지 않으면서 소소한 가치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컬러스위치(Color Switch)'는 B급 제품이 가지는 특유의 편안함과 친숙함으로 인기를 끌었던 모바일 게임이다. 컬러볼을 튕겨 다양한 색깔의 컬러 장애물을 통과시키는 게임으로 컨셉트나 제작 과정 등을 보면 B급에 속한다. 하지만 화려한 그래픽으로 무장한 하이엔드급 게임 사이에서 살아남아 구글플레이 게임차트에서 한달 반 동안 1위를 기록했다. 개발자인 데이비드 레이첼트는 코딩을 할 줄 모르는 일용직 근로자이자 색약이다. 그는 '빌드박스(Buildbox)'라는 드래그앤드롭 방식의 DIY 제작툴로 게임을 만들었다. 초보자가 만든 게임으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즐길 수 있고, 제작 과정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공개되면서 오히려 사용자들에게 호기심과 친숙함을 느끼게 할 수 있었다는 평가다. 
 
모바일 게임 '컬러스위치'. 사진/구글플레이스토어
 
B급 제품이라고 모두 가격이 저렴한 것은 아니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희소성이나 특별한 가치를 느끼게 하는 B급 제품은 높은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스위스의 국민가방으로 불리는 '프라이탁(Frietag)'은 버려지는 쓰레기를 모아 만든 재활용 가방이다. 가방 천은 트럭 위를 덮는 방수천으로, 어깨끈은 폐차에서 떼어낸 안전벨트로, 접합부는 자전거 바퀴의 고무튜브로 만들었다. 원료가 이렇다 보니 가방에서 화학제품의 냄새도 꽤 난다. 하지만 가격은 우리 돈으로 50만원 전후에 육박할 정도다. 프라이탁의 인기는 희소성과 가치에서 온다. 같은 소재, 같은 디자인의 방수천으로 만들더라도 저마다 헌 정도나 때가 탄 정도가 달라 똑같은 가방이 하나도 없다. 또한 재활용품으로 환경보호라는 가치를 공유할 수도 있다. 
 
트럭의 방수천을 재활용해 만든 프라이탁 가방. 사진/프라이탁 홈페이지
 
네덜란드의 벤처기업이 개발한 조립식 스마트폰인 '페어폰(FairPhone)'은 '인권'이라는 가치로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페어폰은 비분쟁 지역에서 생산된 광물만 사용해 안전한 노동환경이 보장된 공장에서 조립하는 공정폰이다. 또 페어폰 한 대가 팔릴 때마다 2.5달러씩을 기부해 노동자 복지에 쓰이도록 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한 번도 만들어본 적 없는 회사의 제품이고 소비자가 주요 부품을 배송 받아 손수 조립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는 B급이지만 가치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며 10만대 이상 판매됐다. 
 
새로운 시장 개척자 역할도 수행
 
저렴한 B급 제품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1만원 대에 구매할 수 있는 샤오미의 미밴드는 웨어러블 시장으로 많은 소비자들을 이끌었다. 지난 2014년 구글이 개발자 회의에서 선보인 가상현실(VR) 조립 키트인 카드보드도 VR 생태계 확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골판지를 접어 렌즈를 끼워 만드는 투박한 형태지만 생소한 VR을 소비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유 선임연구원은 "소비자들은 B급 제품으로 새로운 기술을 접할 뿐만 아니라 낯선 사용 방식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다"며 "투박하지만 대략의 사용경험을 제공할 수 있고, 향후에 출시될 제품에 대한 사용자의 기대와 니즈를 발견할 수 있는 매개역할로 저사양·저가격 제품이 적절하게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넷플릭스는 '넷플릭스 양말'과 '더 스위치' 등 DIY형 B급 제품으로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넷플릭스 양말은 안에 내장된 전자칩을 통해 신체의 움직임을 감지한다. 시청 중 잠이 들어 움직임이 멈출 경우 넷플릭스 재생을 스스로 중지하게 된다. '더 스위치'는 버튼 하나로 조명을 끄고 스마트폰을 진동 및 무음 모드로 바꾸고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제품이다. 모두 실제로 판매되는 완제품이 아니고 소비자가 키트를 주문해 직접 만들어야 하는 제품이다. 다소 투박할 수 있는 DIY 제품이지만 이를 통해 소비자들이 자연스럽게 넷플릭스 콘텐츠 소비량을 늘리도록 유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넷플릭스의 '더 스위치'. 사진/넷플릭스 홈페이지
 
자동화 앱인 'IFTTT'도 DIY식 레시피로 사물인터넷(IoT) 등에 대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럴 때는 이렇게, 저럴 땐 저렇게(If This, Then That)'라는 뜻의 이름으로 특정 상황에서 앱-앱 혹은 앱-하드웨어가 서로 연동되도록 한다. 레시피는 사용자가 임의로 조건이나 명령에 해당하는 앱 기능과 거기에 자동으로 반응하는 앱이나 기기를 조합·설정하는 것을 말한다. '매일 오전 7시에 날씨를 문자로 보내고, 뉴욕타임즈의 톱 기사를 정리해 이메일로 보내'라는 식으로 앱과 앱을 연결할 수 있다. 혹은 '내가 집에 들어오면 자동으로 필립스 휴 스마트 LED 전구를 켜고, 기온이 30℃ 이상일 경우 벨킨 위모(가전제품 원격제어 스위치)를 이용해 에어컨을 가동시켜'라는 명령도 입력할 수 있다. 일반 사용자들이 만드는 레시피는 단순하고 정교함이 떨어지는 이른바 B급이다. 하지만 수천가지의 레시피가 공유되면서 기업은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하드웨어 인터페이스나 사용 시나리오를 발굴할 수 있다. 
 
B급을 넘어 '공유경제'로
 
B급 제품은 소비 주기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비싼 제품을 하나 사 오래 소유하고 사용하기 보다는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품들을 많이, 짧게 경함하는 쪽을 택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짧은 소비를 하는 사람들은 물건을 구매할 때 포장 상자와 사소한 구성품 하나까지 깨끗하게 보관해 추후 재판매하며 신품 구매자금에 보태는 경우도 많다. 유 선임연구원은 "제품의 소유 가치가 없어져도 경험 가치는 존재한다"며 "기업들은 어떠한 판촉 활동을 전개할지 여부보다 고객과의 긍정적인 경험을 지속시킬 방안을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품을 소유하는 것보다 경험하는 가치가 높아지는 현상은 자연스레 공유경제로 이어지고 있다. 스타트업 기업인 '렌트더런웨이(Rent the Runway)'는 유명 디자이너의 드레스를 도매가에 구입한 뒤 온라인으로 대여해주는 사업을 운영하는 곳이다. 중요한 이벤트나 파티 등에 쉽게 고급스러운 드레스를 빌려 입고 갈 수 있는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시작됐다. 고급 드레스라고 하지만 불특정 다수가 빌려입은 옷이기 때문에 B급 제품이라고 볼 수 있다. 비싼 드레스를 구입해 몇번만 입고 옷장에 넣어두기 보다는 B급 제품을 공유하며 경제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더 낫다는 쪽으로 소비자들의 생각이 모이며 가능했던 서비스다. 
 
유 선임연구원은 "B급 제품이 시장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B급 제품은 합리적 소비와 기호나 취향에 따른 경험적 소비를 모두 만족시킨다. 이렇게 발굴된 경험은 많은 사람에게 공유되기도 한다. 철저히 비주류에 속하는 B급 제품도 있지만 차별성을 꾀할 경우 그 자체가 프리미엄이 될 수 있다는 특징도 있다. 유 선임연구원은 "기업들은 소비자들이 어떻게 제품을 사용하고 자신에 맞게 최족화하는지, 또 어떤 긍정적 경험을 통해 소비자들과 관계를 지속시킬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
원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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