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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사람)"논어에 사투리·비속어 쓰면서 쾌감을 느꼈죠"
'군자를 버린 논어' 역자 임자헌 "중요한 해석만 따를 이유 있나요?"
입력 : 2016-08-03 오전 11:16:00
[뉴스토마토 원수경기자] "성숙한 인간은 늘 시원시원, 좀팽이들은 언제나 조마조마."
 
믿기 힘들겠지만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 공자가 한 말이다. 논어 술이편에 나오는 "자왈, 군자탄탕탕, 소인장척척(子曰 君子坦蕩蕩 小人長戚戚)"이다. 
 
이 번역이 실린 책은 '군자를 버린 논어(루페)'다. 제목에서부터 말하듯이 '군자'라는 단어는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군자, 소인이라는 딱딱한 말 대신 '성숙한 인간', '좀팽이' 같은 쉽고 익살 넘치는 단어를 선택했다. 탕탕은 시원시원, 척척은 조마조마로 바꾸는 것처럼 미묘한 라임을 살린 번역도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경어체와 대화체로 바뀐 논어는 술술 읽혔다. 요즘 말로 소위 '약빤 번역'이다. 
 
논어에서 엄숙주의를 벗겨낸 발칙한 번역가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최근 서울 문래동의 한 카페에서 이 책의 번역을 맡은 한문 번역가 임자헌을 만났다. 그는 시종일관 유쾌하게 논어에 대해, 번역 과정에 대해 말했다.
 
먼저 책에 대한 반응이 궁금했다. 다행히도 비난은 없었다고 한다. "주변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어요. 일단 쉬우니까 일반인들이 매우 편안해 해요. 들었던 것 중 가장 기뻤던 소식은 이 책으로 이틀만에 논어를 뗐다고 하는 말이었어요. 그러려고 쓴 책이거든요."
 
임자헌 '군자를 버린 논어' 역자. 사진/원수경 기자
 
이같은 급진적인 번역을 탄생시킨 배경에는 그만의 독특한 이력이 있었다. 심리학과를 졸업해 미술잡지 기자생활을 하던 그는 돌연 한문으로 진로를 틀었다. 기자생활을 할 때 담당했던 동양 미술의 영향이었다. 
 
"저는 한문을 매우 늦게 시작했어요. 그래서 한문 혹은 공자님, 맹자님을 떠받드는 마음이 없었어요. 공부를 할 때에도 늘 뒷자리를 선호했어요. 앞자리에 앉으면 모범생으로서 열심히 예·복습을 해야하고 성실하게 공부해야 하지만 뒷자리에 앉아 선생님의 관심에서 멀어지면 내 나름대로 생각하는 시간이 풍성해지거든요. 잠깐 딴 생각도 하고 재미있는 구절은 진도와 상관없이 두세번 읽어보고 써보는 것 같은 나름의 공부시간을 가지면서 수업을 들은거죠. 그러다 보니 공자님을 어려운 분으로 생각하거나 하나의 해석 중요한 해석만 따라가야 할 이유가 저에게는 없었던 거죠."
 
그럼에도 번역은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고 한다. 번역했던 내용을 전부 뒤엎는 일도 두번이나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정치철학서인 논어에 담긴 개념어들을 풀어내는 과정이었다. 
 
"논어에 많이 나오는 인, 의, 예, 지, 신, 경, 군자, 소인 등은 전부 개념어입니다. 개념어라는 건 여러 의미를 포괄적으로 담고 있는 말이라 상황에 따라서는 도저히 한 단어로 풀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문장에 따라 똑같은 번역을 넣지 못하는 상황도 있고요. 기본적인 개념을 잡고 변용시키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 때 제가 제대로 한 건지 확인하는 과정이 꼭 필요해요. 이런 과정들이 제일 어려웠어요. 그래도 (번역 과정은) 거의 다 재미있었어요. 저는 장난치는 거나 재미있는 걸 좋아하거든요. 논어에 아르마니, 벤츠 등을 집어넣고, 시골의 현자가 나오면 사투리로 상황을 쓰고, 비속어를 뻥뻥 쓸 때 쾌감을 느꼈죠."
 
옛 때를 벗고 현대의 옷을 입은 논어는 더 이상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시대를 초월하는 사상과 철학이 담긴 책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현재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논어의 가르침은 무엇일까. 임자헌은 안연편에 나오는 "군군, 신신, 부부, 자자(齊景公問政於孔子. 孔子對曰 君君,臣臣,父父,子子)"를 제시했다. 책에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하는 것이지요" 라고 번역된 부분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여러 문제가 생긴 건 '다움'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우리는 그 지위를 가지는 데에만 신경을 쓰지 그 위치에 있으려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무엇을 구비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고민을 안 하는 것 같아요. 인(仁)이라는 것도 어려운 철학이 아니라 사람다운 사람이 되자는 거에요. '억울하면 너도 출세해라' 이런 말이 나오는 건 정말 '답지' 못한 일입니다."
 
'다움'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배움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일침했다. 위정편을 보면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라는 말이 나온다. 책에서는 이를 "지식을 쌓기만 하고 자기 생각이 없으면 고학력 앵무새, 자기 생각만 있고 제대로 된 지식을 쌓지 않으면 사람 잡는 선무당"이라고 번역했다. 
 
"공부는 탐구하고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일생에서 뗄 수 없는거에요. 하지만 우리는 (자격)증을 받기 위한 공부만 해왔어요. 그래서 고학력 앵무새가 되는거죠. 또 책을 읽으면서 지금 내 생각이 어디서 왔고 어떤 오류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걸 안하고 너무 쉽게 말하면 선무당이 되는거에요. 그런 것들이 우리를 '답지' 못하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
 
원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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