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우찬기자] 출장 중인 대표이사에게 휴가 하루 전날 SNS 메시지로 휴가신청을 한 것은 무단휴가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회사는 무단휴가 등을 이유로 직원을 해고했지만 법원은 부당해고라고 판단했다.
A사 대표이사는 지난해 4월8일부터 이틀 동안 지방 출장을 갔다. 4월9일 오후 5시24분쯤 이 회사 지원팀 대리 B씨는 대표이사에게 간단한 업무보고와 함께 "대표님 나오실 줄 알고 기다렸습니다. 저 내일 휴가 주십시오"라고 카카오톡 메신저로 휴가를 신청했다.
대표이사는 같은 날 오후 9시53분쯤 "어떤 휴가인가요? 하루 전에 휴가 요청을 하시나요?"라고 답장을 보냈지만, B씨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4일 뒤 대표이사는 B씨에게 무단휴가에 대해 시말서를 써서 내라고 요구했지만 B씨는 응하지 않았다.
4월15일에는 대표이사가 회사 운영규정을 가져오라고 지시했지만 B씨가 자신이 갖고 있다며 응하지 않았고, 대표이사는 운영규정을 훔쳐갔다는 이유로 경찰을 불렀다. 이틀 뒤에는 대표이사가 이력서 등 인사기록물을 가져올 것을 요구했는데 B씨는 자신에게 불이익이 되는 인사 처분을 할 것으로 생각해 응하지 않았다.
4월20일에는 대표이사가 업무인계 지시와 대기발령을 통보하자 B씨는 이날 오전 "대표이사의 부당행위에 대한 제소를 위해 오후 2시까지 외출을 신청한다"는 내용의 외출신청서를 작성한 뒤 대표이사 출근 전 동료사원에게 대신 제출해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B씨는 4일 뒤 해고됐고 이후 노동위 구제신청을 통해 부당해고를 인정받았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장순욱)는 중소 컨설팅회사 A사가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을 취소하라"며 중앙노동위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고 31일 밝혔다.
재판부는 "4월10일(B씨 요청 휴가일) B씨가 반드시 출근해야 하는 중대한 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B씨가 신청한 휴가를 (대표이사가) 거절할 만한 사유는 없었다"며 "대표이사가 출장 중이라 문자메시지를 통해 휴가신청을 한 것으로 보여 무단결근으로 볼 정도의 중대한 절차상 하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이사는 다른 직원이 1일 전 휴가 신청을 한 것을 승인한 적이 있다"면서 "직원들의 휴가 목적을 문제 삼아 휴가 신청을 반려한 적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B씨가 무단결근을 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시말서를 작성할 정도의 잘못을 했다고 볼 수 없다"며 "B씨는 시말서 형식으로 잘못을 인정할 경우 이를 빌미로 해고를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 거절한 것으로 보인다. B씨가 이렇게 판단한 것은 부당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B씨가 인사기록물을 제출하라는 지시에 불응한 점과 회사 서류를 무단 반출한 점은 징계사유로 인정했지만 "인정되는 징계사유만으로는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지속할 수 없을 정도의 책임 있는 사유가 아니다"라면서 "해고는 징계권자에게 맡겨진 재량권을 일탈하거나 남용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한편, B씨는 대표이사가 회사 소유 서류들을 절취했다고 고소한 뒤 절도 혐의 등으로 약식 기소됐고,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7월 문서들을 손괴했다는 점을 유죄로 인정해 벌금 20만원을 선고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회사는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유급휴가를 줘야 한다.
서울행정법원. 사진/뉴스토마토 DB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