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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분노, 자살로 이어지는 것 막으려면 좋은 리더 필요"
이명수 자살예방행동포럼 '라이프' 대표
입력 : 2016-12-15 오전 8:00:00
[뉴스토마토 원수경기자] 하루 평균 4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자살로 인한 연간 사망자 수는 1만5000명. 2001년 미국의 9·11 테러 당시 사망자의 5배에 달한다. 대한민국의 씁쓸한 자회상이다.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1990년 7.6명에서 2013년 28.5명으로 4배 가까이 증가하는 등 자살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자살예방행동포럼 '라이프'는 자살문제의 사회적 해결을 위해 만들어진 비영리민간단체다. 자살률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 라이프의 목표다. 이를 위해 정책 제안, 캠페인,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사회 각계각층의 200여명이 뜻을 함께 하고 있다. 라이프를 이끌고 있는 이는 정신과 전문의 이명수 대표다. 현재 경기도 자살예방센터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일주일의 절반은 진료실에서, 나머지 절반은 센터와 라이프 활동 등을 통해 자살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이명수 자살예방행동센터 라이프 대표(사진제공=라이프)
 
-자살문제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정신과 의사는 기본적으로 자살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다. 직업적으로 자연스럽게 노출되게 됐다. 정부의 자살예방센터는 고위험군 관리를 우선적으로 하는데 이것만 가지고는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느꼈다. 자살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개선 사업을 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싶어 라이프 활동도 하게 됐다. 병원에서는 치료, 센터에서는 자살 고위험군에 대한 시스템 개발, 라이프에서는 전 국민 인식개선 사업을 하며 각각의 일터마다 서로 다른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한국은 몇 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자살이 줄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인세대가 매우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사실 노인인구를 빼고 50대 이하의 자살률만을 놓고 본다면 상위권이긴 해도 1위까지는 아닐 것이다. 노인 자살률이 출중하게 높다 보니 전체 자살률이 올라갔다. 우리나라 노인세대에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친 전후세대로 최빈국이었던 우리나라의 경제수준을 올리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높은 교육열의 영향으로 자녀에 대한 투자와 희생도 많았다. 하지만 현재 자녀 세대는 부모 세대를 잘 챙기지 않고 있다. 많은 희생을 했지만 가진 것은 없게 된 것이다. 수중에 돈은 없는데 국가의 지원도 약하다 보니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한 세대의 특성이 자살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면 자살 문제는 사회적인 것으로 봐야할까. 
 
자살은 사회적인 문제에 영향을 받은 개인적인 문제라고 본다. 비슷한 상황에서도 자살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실업자 200만명 중 자살하는 사람은 1만3000명뿐이다. 198만7000명은 죽지 않는다. 힘든 상황에서 자살을 행동으로 옮기느냐 옮기지 않느냐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측면이 크다.
 
하지만 개인을 힘들게 만드는 것은 사회적인 요인이다. 노르웨이 같은 유럽 국가들은 복지가 워낙 잘 돼있다 보니 자살의 원인을 주로 개인의 우울증에서 찾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에 비해 사회적인 영향이 큰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자살은 대를 물려서 내려가기도 한다. 생물학적으로 유전되는 성향도 있지만 학습되는 부분도 있다. 부모세대가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것에 자주 노출되다 보면 자녀 세대는 나중에 문제에 닥쳤을 때 자신도 모르게 자살이라는 답을 선택하게 된다. 그래서 노인 자살이 청소년에게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자살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이 되느냐 아니냐는 결국 사회 문화적인 문제인 것이다. 사회적으로 자살이라는 유산을 물려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세월호 사태부터 최순실 게이트까지 여러 가지 정치·사회적 이슈를 겪으며 분노와 무기력감, 우울감을 호소하는 등 사회적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사람이 많아졌다. 
 
사회적 스트레스는 자살 문제에 악영향을 끼친다. 다만 1년 뒤에 확인해봐야겠지만 최근의 자살률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분노가 밖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외부의 대상이 사라지면 분노는 내부로 돌아오고 우울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분노, 화의 시기가 지나면 우울해지는 시기가 오는데 이 때 이 사건이 어떤 식으로 마무리 되느냐가 중요하다. 아마 어떻게 되든 국민들에게 타격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문제의 당사자가 구속되고 처벌되더라도 이후의 허망한 느낌과 박탈감이 개인에게 돌아올 수 있다. 이 경우 다시 개인적인 우울감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이번 사태가 이상하게 풀린다면 정의에 대한 개념이 헷갈리고 가치체계가 흔들리며 아노미적 자살이 나타날 수도 있다.
 
지금보다는 내년이 더 중요하다. 좋은 리더가 나타나서 상처가 잘 아물도록 회복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를 정의롭게 만드는 구체적인 방안이 나와야 할 것이다. 2011년 노르웨이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있었을 때 공항에서 총리가 생존자를 만나 포옹하는 사진을 인상 깊게 본 적 있다. 우리나라에도 진심으로 국민들과 소통하는 리더가 나타난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꼭 사회적 이슈 때문이 아니더라도 평소 과중한 업무나 경제적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도 매우 많다. 일상의 스트레스가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진되지 않아야 한다. 한병철 교수의 책 '피로사회'를 보면 나의 역량을 다 발휘했는데 사회적으로 더 많은 것을 요구할 때, 혹은 사람을 부품처럼 소모시키는 환경이 만연할 때 피로사회가 되고 우울사회가 된다고 나온다. 소진된 것이 있다면 채워 넣어야 한다. 채우는 것은 근무시간 이후에 해야 하는데 사실 그 때는 잠자기도 바쁜 것이 현실이다. 근무시간 이외에 개인시간을 잘 확보할 수 있는 고용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주변에 자살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심폐소생술은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는데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사회 환경에서는 누구든 자살을 막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집중하고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 누군가가 힘들다고 얘기한다면 이를 경청하고 왜 힘든지, 무엇이 힘든지 질문을 해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말로 죽고 싶은지' 물어보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하면 '나는 너와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약속이 맺어지는 것이다. 왜 죽고 싶어 하는지 끝까지 들어보고 함께 도울 수 있는 사람을 알아보고, 힘들 때 연락할 수 있는 핫라인을 알려주는 행동들이 자살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명수 대표(왼쪽)가 라이프 콘서트에서 출연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라이프)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
원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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