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해곤 기자] 이연승 선박안전기술공단 이사장은 국내 첫 여성 조선공학박사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선박설계 분야를 공부했고, 당시 남성 중심이었던 조선업에서 독보적인 행보를 이어왔다. 독일 유학을 마치고 현대중공업 선박해양연구소와 대우조선해양 성능연구소에서 보다 나은 선박설계 시스템 개발에 매진했다. 대학 졸업 후 30년 동안 연구에 몰두했고, 전문성을 인정 받아 공단의 이사장 자리에도 올랐다. 이 이사장은 "경영자로서의 경험은 많이 부족하지만 그간의 경험과 전문성을 잘 살려 먼저 소형선박의 기술적 낙후로 인한 안타까운 사고들을 예방할 수 있는 연구를 중점적으로 수행하겠다"고 했다. 그는 "선박 사고의 대부분은 중소형 선박에서 발생하는 만큼 충돌·전복 경보시스템 개발 및 전복사고 대응 비상탈출 관련 연구 등 사고를 직접적으로 예방하고, 사고 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연구를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임기 동안 '해양교통안전공단' 설립과 선박검사소 설치를 가장 큰 목표로 세웠다. 간단해 보이지만 공단의 숙원사업이라고 할 정도로 쉽지 않은 일들이다. 취임 6개월 동안 현장을 누빈 이 이사장을 만났다.(편집자)
이연승 선박안전기술공단 이사장. 사진/뉴스토마토
작년 12월 취임하고 6개월이 지났다.
지난해 12월29일 취임 이후, 지난 4개월간 현장 업무 파악에 중점을 두고 모든 일정을 소화해 왔다. 선박검사와 운항관리 업무 현장을 파악했고, 동시에 대내·외 소통 강화를 위해 전국 15개 지부, 11개 운항관리센터, 유관기관, 업·단체 및 고객사들을 방문해 현장에서의 애로사항, 고객의 소리 등을 청취하는 것은 물론, 검사 및 운항관리프로세스는 문제가 없는지, 안전 사각지대는 없는지 살펴봤다.
직접 현장을 둘러보고 느낀 점은 무엇인가.
전국의 현장에서 만난 현장 검사원들과 운항관리자들의 뜨거운 열정에 마음이 뿌듯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현장 곳곳에서 발견된 애환과 고충에 많은 안타까움도 느꼈다. 최근 크고 작은 해양사고가 잇따르면서 바다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역할이 나날이 커지고 있는 시점에, 공단이 해사안전의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 가기에는 아직도 인력이나 인프라 부분에서 부족함이 많아 보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나.
인력이 너무 부족하다. 관련 전공을 공부하는 학교에서 볼 때 선박안전기술공단은 정말 좋은 기관이었다. 학생들도 취업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업무 강도가 너무 세다. 1년에 검사해야 하는 선박 수가 3만5000척이다. 전체 검사 대상은 9만5000척에 이른다. 특히 이 가운데 6만5000척이 어선이다. 하지만 검사 인력은 100여명에 불과하다. 또 어선들은 대부분 낙후되거나 노후된 선박들이다. 검사를 해서 지적 사항이 있고 불합격을 받으면 조업을 못해 큰 손실이 발생하니 검사를 꺼리는 경우도 많다. 특히 최근 어획량이 줄어 선주들의 더욱 거부감이 커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뭔가.
선박도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거점마다 검사소를 두고 선박들이 들어와서 검사를 받도록 했으면 한다. 선박검사소 시스템 구축은 어쩌면 공단의 숙원사업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검사를 더욱 전문적으로 할 수 있다. 직접 방문해 검사를 진행하다보니 고도화된 장비를 사용하는 것도 쉽지 않다. 검사소 시스템을 통해 이런 부분들을 해결할 수 있다.
이연승 선박안전기술공단 이사장은 작년 12월 취임 이후 6개월 동안 전국의 검사 및 운항관리현장을 점검했다. 사진/선박안전기술공단
선박검사소 구축과 함께 해양교통안전공단의 신설 필요성도 강조하고 있다.
급속하게 변화하는 해양교통환경에 대응하기에는 제도적으로 미흡한 부분이 많다. 그래서 해양교통안전관리 전담조직이 필요하다. 해양사고는 해양교통환경과 해양문화가 변화하면서 늘어나는 추세다. 조선기술과 항해 장비가 발달해 선박형태가 다양해진 것이 원인이다. 여러 종류의 선박을 편리하게 이용하게 된 반면, 해양사고는 더욱 복잡하고 큰 피해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해양친화적인 문화가 퍼지고, 낚시해양 레저인구가 늘면서 이와 비례해 바다에서 일어나는 사고도 잦아지고 있다. 이제 해양교통안전공단 설립을 통해 해양사고를 예방해야 한다. 해양교통안전공단 설립은 해양교통안전 관리의 종합적·체계적 수행을 위한 것으로, 지난해 12월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이 입법 발의해 논의가 시작됐다. 교통안전공단 설립이 육상의 교통사고를 줄인 것처럼, 해양교통안전공단 신설로 해양안전관리 효율화가 이뤄질 경우 해양사고를 감소시킬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국내 첫 여성 조선공학 박사다. 여성으로서 관련 연구와 업무가 쉽진 않았을 것 같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배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특히 요트와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 기술이 집약된 선박을 설계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이 분야를 선택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현업에 있을 땐 여성에 대한 경험이 없는 산업이다보니 선입견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연구의 성과가 나왔을 때 모두한테 인정을 받기도 했다. 일례로 대우중공업에서 근무할 때 설계최적화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1만4000TEU 규모의 대형 컨테이너선을 제작했다. 당시 대우는 LNG선과 중·소형 중심이었지만 이 컨테이너선 이후 초대형 선박 수주가 급격히 늘기도 했다.
앞으로 공단은 어떤 방향으로 연구·개발을 진행할 예정인가.
공단의 주요사업인 선박검사와 여객선 운항관리업무를 선진화하기 위한 해양분야 4차 산업혁명의 플랫폼을 지향하는 기술 인프라를 구축하려고 한다. 그 첫걸음으로 인공지능기반 스마트 종합정보포털시스템을 구축해 공단의 인트라넷, 정보시스템 및 검사시스템 등 산재해 있는 시스템들을 하나로 모아,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하는 포털시스템, 플랫폼을 만들 계획이다.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을 통해 업무 효율성과 전문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이와 함께 공단의 대외 위상 제고를 위해 국제협력 기회를 창출하고 우리 공단의 기술력을 해외에 적극적으로 알려 우리나라의 해사안전 분야 경쟁력 향상에도 기여할 것이다.
전문성은 충분하지만 경영자로서의 경험은 부족하다고 말했다. 공단을 어떻게 운영할 생각인가.
공단은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 동안 부패방지시책평가에서 4~5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작년에는 뼈를 깍는 노력을 통해 우수등급을 달성했다. 반부패·윤리경영 추진체계를 정비, 강화시키고 내·외부 이해관계자의 반부패·청렴활동을 적극 전개한 결과다. 앞으로도 선박안전에 관한 종합적인 기능을 하는 안전관리 전담 공공기관으로서 무엇보다 높은 청렴도를 바탕으로 한 업무 추진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받는 기관이 되려고 한다. 임직원 의식개혁을 통한 청렴한 조직문화 조성, 부정부패 사전 차단을 위한 예방활동 강화, 부패행위의 근원적 차단 및 엄중 처벌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그리고 혹시나 아직 남아있을지 모를 ‘관행’이라는 부조리한 행동이 발생할 가능성이 없는지 적극 살펴보겠다.
세종=이해곤 기자 pinvol197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