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핵심공약인 ‘서울페이’를 구체화한 ‘제로페이(가칭)’를 발표했다. 기초적인 틀은 갖춘 셈이지만, 실질적 수수료 면제 여부와 소상공인 부담 경감 가능성, 소비자 참여가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25일 서울시가 발표한 제로페이 면면을 살펴보면 열린 시스템 구축이 우선 눈에 띈다. 서울시는 허브시스템을 운영해 다수의 플랫폼 사업자와 다수의 은행을 연결하고, 가맹점 등록정보를 공동QR코드로 관리한다. 이는 공공기관인 서울시가 특정 사업자와 협력해 특혜 의혹을 받거나, 자체 플랫폼을 운영해 공공이 민간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비판을 비켜갈 수 있다.
사업자들 서비스 경쟁 기대
다수의 사업자를 묶어놓으면서 서비스 경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현재 간편결제 시장에서 활약 중인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페이코 등 5개 업체와 대형은행이라 불리는 국민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등 11개 은행이 참여해 접근성을 대폭 높였다. 실제 소비자나 소상공인에게는 기존 간편결제 서비스나 이미 이용 중인 은행 계좌로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또 허브시스템을 도입하면서 특정 지역으로 가맹점 등록정보를 한정짓지 않아 전국 다른 지역으로 빠른 확산이 가능하다. 덕분에 서울시가 3개월 전부터 자체 준비를 했음에도 다른 지자체나 정부 등이 관심을 갖자 이들과 공동발표하는 방향을 선택한 것도 허브시스템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서울페이(S-Pay)라는 기존의 명칭은 전국 확산을 위해 고집하지 않는 대신 제로페이(가칭)라는 명칭을 택하면서 전국 확산의 길을 열어 두었다.
서울시가 판 깔고 은행 등 선수 참여
제로페이는 기본적으로 서울시가 허브시스템으로 판을 깔아주고, 수수료 면제라는 룰을 정하는 조건으로 사업자들과 은행들이 참여해 활동하는 구조다.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등 기존 간편결제 플랫폼 경우에는 각자 특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오프라인에 취약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오프라인 시장 확대의 열쇠인 가맹점 확보를 위해서는 인건비와 마케팅비 등 초기 비용투입이 불가피한데, 제로페이에선 수수료를 안 받는 조건으로 가맹점 확보를 허브시스템이 해결해 준다.
또 기존에는 마케팅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부담하던 은행 계좌이체 수수료를 제로페이에서는 부담하지 않아도 돼 건당 30~400원에 달하는 수수료 부담도 덜 수 있다. 간편결제업체 입장에서는 당장은 수수료 면제로 큰 수익을 얻지 못하더라도 가맹점 확보에 들어갈 초기비용 절감과 계좌이체 수수료 면제에다가 제로페이 이용 활성화에 따라 각 간편결제 플랫폼에 대한 충성도 상승까지 노릴 수 있다.
은행도 고객 확보 이점 있어
참여 은행 입장에서도 계좌 거래 활성화와 주거래 고객 확보라는 이점이 있다. 수수료를 받지 않으면서 기대 수익은 줄지만, 대신 소비자가 계좌에 거래 이전에 입금하거나 판매자가 거래 이후에 출금하는 과정에서 수수료가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월급 등을 이유로 다른 은행에 빼앗겼던 고객을 제로페이 이용으로 묶어둘 수 있어, 미참여에 따른 고객 이탈보다 얻는 것이 많다.
간편결제업체들과 은행들을 연결해주는 조건으로 서울시는 실절적인 수수료 면제를 실현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중기부와 5개 지자체, 5개 간편결제 업체, 11개 은행, 소비자·판매자 단체들이 공동으로 체결한 업무협약서에는 ‘참여기업 결제수수료 제로’, ‘참여은행 계좌이체 면제’ 같은 구체적인 문구를 명시했다. 이론적으로는 제로페이를 이용할 경우 소상공인 부담 비용을 ‘0%대’가 아닌 아예 ‘0%’로도 가능한 셈이다.
소상공 수수료 '면제 문화' 조성
서울시는 나아가 올 12월 제로페이 실시를 앞두고 항구적인 수수료 제로를 위한 사회적 계약을 참여 주체들과 체결할 계획이다. 반짝하다 사라지는 일시적인 정책이 아니라 소상공 수수료 면제를 아예 문화 차원까지 정착시켜 소상공인들의 3대 부담인 인건비·임대료·수수료 가운데 한 축을 제거하자는 구상이다. 항구적인 수수료 제로에 따라 참여주체들은 의무적으로 수수료를 받지 않으며, 제로페이 이용 확대와 소상공인 수수료 제로에 대한 캠페인 등을 공동으로 시행한다.
제로페이의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오랜기간 신용카드 이용 습관을 갖고 있는 소비자들을 얼마나 제로페이로 끌어올 수 있느냐다. 2016년 기준 최종소비지출 대비 신용카드 이용실적률을 살펴보면 전체 소비 가운데 70.7%를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소비자 유인 가능성 미지수
먼저 결제한 후 나중에 지불하는 신용카드 이용패턴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현장에서 바로 지불하는 제로페이로 얼마나 넘어올지 미지수다. 소비자 단체, 판매자 단체들마저도 아무리 수수료가 0%에다가 참여 주체들에게 좋은 환경이 조성돼도 소비자들을 유인하지 못하면 ‘빛 좋은 개살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까닭이다.
제로페이가 꺼내든 첫번째 무기는 소득공제다. 신용카드 15%, 체크카드 30%에 불과하던 소득공제율을 제로페이의 경우 40%로 높여 알뜰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을 유인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미 체크카드의 높은 소득공제율로 인해 신용카드에서 체크카드로 이용 패턴을 바꾸는 소비자들도 상당한 만큼 보다 상향된 혜택으로 제로페이 이용을 유인한다.
연말정산만 따져보면 '제로페이' 이익
연봉이 5000만원인 직장인 A씨가 2500만원을 소비한다고 가정하면, 신용카드의 경우 연말정산으로 약 31만원을 환급받지만 제로페이는 79만원을 환급받을 수 있다. 1년에 48만원이면 웬만한 신용카드의 부가서비스와 각종 혜택과 견주어도 적지 않다.
또 제로페이는 공공기관이 추진하는 만큼 신용카드의 민간 부가서비스를 따라가진 못해도 공공시설 연계라는 혜택을 부여할 수 있다. 교통카드 기능 연계, 공용주차장·문화시설 이용 할인 등 공공시설 할인혜택으로 신용카드와의 간극을 좁힐 수 있다는 계산이다.
자료/서울시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