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포항에서 20대 여성이 한 모텔에 11개월된 여자아기를 유기하고 달아났다가 붙잡히는 일이 발생했다. 아기는 이미 지난해 11월 숨진 채 반 년을 가방 속에 있었다. 동거하던 아기 아빠가 다른 사건으로 지난해 5월 구속되자 원룸 월세비를 감당 못해 모텔을 전전하던 아기 엄마는 홀로 아기를 낳아야 했다. 아기 엄마 이외에 이 아기가 태어난 사실을 아는 이는 세상에 아무도 없었다.
같은 달 구미에서는 한 원룸에서 20대 남성이 생후 16개월 남자아기와 나란히 숨진 채 발견됐다. 남성은 사실혼 관계이던 여성이 떠난 후 도시가스 요금도 내지 못할 정도로 사회적으로 고립됐다. 남성은 주민등록이 말소되고 아기는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아 복지혜택도 전혀 받지 못했다. 남성과 아기 모두 매우 야윈 상태로 발견돼 남성이 병사한 후 아기는 아사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매일 쏟아지는 사건·사고의 경향성은 각자도생의 시대를 가리키고 있다. 그들이 최악의 상황에 처하기까지 누구도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다. 누군가가 책임지지 못할 아기를 왜 낳느냐고 한 소리해도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세상에 살고 있다. 아니, 그런 것만 같았다.
얼마 전까지 서울 양천구 신월5동의 한 여관에 머물던 김씨와 박씨 부부의 상황도 앞선 두 사례 못지 않았다. 각자 부모가 이혼한 후 학업도 마치지 못한 김씨와 박씨는 일정한 일자리를 갖지 못한 채 2011년부터 서로에게 의지했다. 신월동에 월세 30만원짜리 집을 얻었으나 이조차 감당하지 못해 지난해 9월 결국 길거리로 나와 여관으로 향했다.
그 해 11월 임신 사실을 알게 됐지만, 박씨는 주민등록이 말소돼 병원 한 번 가보지 못했다. 김씨는 늘어나는 식비를 감당하려 건설 일용직이라도 해보려 했지만, 쉬는 날이 늘어만 갔다. 김씨는 매일 울기만 했고, 박씨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밀린 여관비는 100만원에 육박했고 부부 수중의 돈은 이미 0원이었다.
그 때, 여관 주인은 주민센터에 알렸고, 주민센터 직원이 방문상담 후 이들의 사정을 지역사회에 알렸다. 부동산중개소를 운영하는 통장은 중개수수료를 받지 않고 부부가 머물 곳을 알아봤다. 집주인은 시세보다 싼 가격에 살게 했고, 이마저도 나눠 받기로 했다. 집 안 가구는 장애인협회에서 경기도 전역을 다니며 중고로 구해 와 직접 채웠다.
지난 10일 설득 끝에 박씨는 산부인과로 향했고, 이튿날 3.5kg의 건강한 여자아기가 태어났다. 부부는 아기 이름을 ‘하람’이라고 지었다. ‘하늘이 내린 귀한 사람’이란 뜻이다. 주민센터는 아내의 주민등록을 되살리고 혼인신고와 출생신고를 진행하고 긴급복지제도를 신청했다. 취지를 전해들은 병원은 병원비를 받지 않았다.
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산후조리도우미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으며, 건설회사를 운영 중인 협의체 위원장은 김씨의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김씨는 감사해하며 다시 일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하람이는 그렇게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여전히 각자도생의 시대일테다. 그럼에도 신월5동 주민들이 보여준 변화는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 얘기하는 것만 같다. 세상은 마블 영화 속 히어로가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관심과 선의가 바꾸는 거라고.
박용준 사회부 기자(yjunsa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