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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입력 : 2018-08-20 오전 6:00:00
리처드 파인만(1918~1988)은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196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유명세가 싫었던 파인만이 기자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노벨상을 받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 질문의 의도를 아는 기자는 이렇게 답했다. “노벨상 안 받으면 더 유명해질걸요?” 결국, 파인만은 노벨상을 받기로 결정했다.
 
파인만을 최고의 물리학자로, 위대한 과학자로 만든 것은 지적 호기심이었다. 학창시절부터 엉뚱했던 모양이다. MIT 재학 시절 무의식을 주제로 리포트를 작성하기 위해 매일 밤 자기 꿈을 관찰했다. 설탕통에 개미가 꼬이지 않는 방법을 찾기 위해 집 창틀에 모인 개미의 습성을 연구하기도 했다.
 
또 하나의 비결은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는 여유로운 태도였다. 파인만은 권위를 싫어했다. 그에게 기존 지식과 이론이란 ‘참을 수 없는 무거움’ 그 자체였다. 거기에서는 어떤 흥미도 느끼지 못했다. 그는 물리학자이면서도 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했다. 화려한 여성 편력을 자랑하면서도 죽음이 예고된 여성과 결혼하는 순애보를 남겼다. 원자 운동을 연구하면서 깨달았으리라.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야말로 세상 모든 존재의 ‘존재 방식’이라는 사실을.
 
정치는 말로 하는 전쟁이다. 한때는 총과 칼이 말을 대신했다.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총과 칼보다 더 치명적인 말 공세를 퍼붓는다. 무자비한 ‘말 폭탄’을 투하한다. 그래서 무겁고 진지(한 척)하기로 따지면 정치 분야가 단연 금메달감이다. 그렇다고 늘 그런 건 아니다. 링컨과 더글러스가 선거에서 격돌했다. 더글러스가 링컨의 과거사를 들춰냈다. “(링컨은) 법을 어기며 서점에서 술을 팔았다.” 링컨은 부인하지 않았다. 대신 이런 말로 응수했다. “사실이다. 그런데 그 서점의 최고 단골손님은 더글러스였다.”
 
오바마와 롬니가 대통령 자리를 놓고 날카롭게 대결하던 때였다. 둘은 어느 날 뉴욕에서 열린 자선모금 행사에 나란히 참석했다. 롬니가 포문을 열었다. “선거운동, 참 피곤해요. 하지만 믿고 의지할 사람이 있어 다행입니다. 저에겐 아내가 있고, 오바마에겐 빌 클린턴이 있으니까요.” 클린턴 전 대통령이 오바마 후보를 적극 지원하는 것에 대한 야유였다. 당하고만 있을 오바마가 아니었다. “저는 오늘 뉴욕의 몇몇 상점에서 쇼핑했어요. 아마 롬니는 뉴욕의 몇몇 상점을 쇼핑했겠죠?” 부자이면서, 부자들의 지원을 받는 롬니를 향한 조롱이었다.
 
미국 정치권의 이런 ‘유머 연설’은 오랜 전통이다. 시민들은 누가 더 날카롭고 품격 있는 유머를 구사하는지 평가한다. 웃음의 경연장이지만, 밀리는 사람은 전세를 뒤집기 어렵다. 유머가 그 사람의 능력과 자질을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인 것이다. 리더의 자질을 관찰하는 현미경이다. 당신이 유권자라면 위 두 쌍의 후보 중 누구를 찍겠는가? 결과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
 
얼마 전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났다. 그가 한국 사회와 정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새삼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그는 세련된 유머와 촌철살인의 화법을 구사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정치인 중 한 명이었다. 막말과 고성이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그가 구사하는 유머는 진흙탕에서 핀 연꽃처럼 우아했다. 많은 사람이 진정으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정치가 우리의 삶과 얼마나 가까운지 시시때때로 확인했다. 노회찬 의원이 쏟아내는 촌철살인을 위안으로 삼았다.
 
정치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노회찬 의원 같은 인물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과학기술계는 특히 그렇다. 많은 사람이 과학기술을 어렵다고 한다. 사실 그렇다. 더 큰 문제는 어려운 이야기를 무겁게 한다는 사실이다. 과학기술 관련 학회, 토론회, 행사장, 심지어 대중강연장을 가보라. 재미가 없다. 왜 그렇게 무겁고 진지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유머는 자신감에서 나온다. 누구나 무게는 잡을 수 있어도 아무나 여유 있는 유머를 구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회찬 의원의 꿈은 전 국민이 악기 하나 정도는 다룰 줄 아는 세상이었다. 과학기술계 출신 정치인의 입에서 “천문대와 과학관을 초·중·고교 수학여행의 필수코스로 만들고 싶다”라거나 “최소한 대학에서라도 <코스모스>가 필독서인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말을 듣고 싶다. 여유 있고 세련된 유머가 정치권과 과학기술계에 더 많이 퍼졌으면 좋겠다. 가장 무겁고 딱딱한 곳이 바뀌면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김형석 과학 칼럼니스트·SCOOP 대표(blade31@daum.net)
이해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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