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홍 기자] 정부가 '포용적 금융' 일환으로 카드수수료 인하와 제로페이 참여독려, 예대율 규제 등 규제성격의 정책을 진행 중인 가운데 금융산업 발전 정책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도 정부의 금융정책에 기본적으로 공감하지만, 한쪽으로만 치우친 정책은 위험하다고 진단한다. 윤 교수는 금융연구원장을 거쳐, 지난해 10월까지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을 역임한 금융정책 전문가다. 현재는 학계에서 정부 경제정책을 비평하는 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뉴스토마토>는 윤 교수를 만나 현재 금융정책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앞으로의 개선방향을 들어봤다.
-정부가 포용적 경제에 이어 포용적 금융을 내세우고 있지만 최근 들어 시장의 반발이 심하다. 학계 및 언론도 정부의 경제정책을 많이 비판하는 추세다. 현재 경제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포용적 경제라는 단어는 나온 지 굉장히 오래됐다. 예전에 다보스 포럼에서 처음 나왔는데 그 이후 글로벌 어젠다로 제시됐다. 당시 포럼에서 지식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전파된던 것이 바로 사회적 책임(CSR)이다. 이런 어젠다는 꼭 문재인 정부만 쓴 것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포용적 금융의 일환으로서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고자 했다. 보수정권도 포용적 경제의 가치를 무시하진 않았던 셈이다. 현재 정부도 포용적 금융을 메인 어젠다로 제시하고 있는데 취지는 공감한다. 돈이 적은 사람은 계속 가난해지고, 돈이 많은 사람은 더 부자가 되는 구조는 당연히 문제다. 그러나 다른 정권이라고 해서 양극화를 걱정 안 했을까. 어떤 정부라도 양극화 해소를 추구했을 것이다. 이런 가치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정책이긴 하지만 포용성만 가지고 경제정책을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정부가 카드수수료 인하, 은행 예대율 규제 등 포용적 금융정책으로 시장에 무리하게 개입한다는 비판이 있다.
물론 나도 금융연구원장 시절 때 따뜻한 금융을 추구했었다. 하지만 똑똑한 금융이라는 어젠다도 가지고 있었다. 금융산업이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금융은 서민과 약자를 지원하는 역할도 하지만,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는 역할도 병행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은 자체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이 잘 안 보인다. 오히려 정부는 서민들만 잘 도와주라고 말한다. 이는 금융을 도구화시키는 것이다. 시장으로서의 금융을 보지 않고, 다른 목적으로만 본다. 결국, 이렇게 된다면 국내 금융산업 경쟁력은 약화할 것이다.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카드수수료 인하 정책을 보자. 카드사도 기업이므로 적절한 이득을 내야 한다. 자기자본 수익률(ROE)도 올라야 주주 배당도 하고, 미래산업에 투자를 할 수 있지 않겠나. 1조4000억원 인하는 상장사로 따지면 주식시장 반토막 난 것으로 보면 된다. 일각에서는 "차라리 카드사를 국유화해라"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소상공인 어려움의 원인이 카드사에 있다고 보나.
아니다. 최저임금 때문인데 카드사에 전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애초 새로운 일자리가 없다 보니 이미 자영업은 포화상태였다. 이처럼 장사가 잘 안되는 상황에서 최저임금이 2년 연속 올랐다. 소상공인들이 들고일어나니 정부는 카드사라는 엉뚱한 곳을 겨냥한 것이다.
-은행 규제도 심해지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당분간 은행들은 숨죽이고 살아야 할 것이다. 현 정부가 은행의 가치를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정책방향 공약집을 보면 금융산업 발전에 관한 이야기가 거의 없다. 대부분 서민 보호, 금리 인하 등만 해당됐다. 그걸 보니 "금융산업 발전이라는 것은 안중에 없구나"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장발장 은행이라는 시장원칙에 어긋나는 것이 있더라. 돈 없어서 벌금 못 내는 사람에게 범칙금을 빌려주는 것이다. 은행이란 무엇인가. 돈을 빌려주고 원리금을 회수하는 게 은행이다. 그런데 장발장 은행은 그냥 복지정책이다. 시장기능이 없다.
일각에서는 은행을 고리대금업이라고 깎아내린다. 하지만 은행은 시장에서 매우 중요하다. 부실대출이 생기면 은행들은 자기 돈으로 부실대출을 막아야 한다. 부실대출 못 갚으면 문닫고, 결국 고객들의 예금도 함께 증발해버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은행의 수익성을 어느 정도 보전해줘야 한다. 가령, 정부가 '비오는데 우산 뺏지 말라'며 차 부품 사의 여신 회수를 자제하라고 은행들에 당부했다. 하지만 그 우산이 은행들의 우산인가. 고객들의 예금으로 만들어진 우산이다. 고객들의 우산을 차 부품사에 빌려줬다가 못 돌려받으면 누가 책임지나.
-요즘 금융혁신이 화두다. 인터넷은행, 핀테크 등 다양하다. 금융혁신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혹자는 금융혁신의 핵심이 핀테크라고 하는데, 나는 아직도 은행이라고 생각한다. 은행도 주식회사다. 예금 대출 외에도 다양한 사업에 투자할 수 있다. 미국 은행은 해외사업에 많이 투자한다.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만들고 일자리도 만든다. 일본 은행은 어떤가. 일본 은행은 동남아 무역에 올인하고 있다. 우리나라 은행도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처럼 은행도 투자할 일이 많다. 전산시스템도 방대하다. 앞으로 블록체인 기술도 나온다. 은행도 이런 다양한 사업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은행이 공적 업무가 많긴 하지만 굳이 공공의 성격으로만 볼 수 없다. 모두 사기업들이다. 주주들이 따로 있다. 사기업 정체성도 유지돼야 한다.
-우리나라의 금융시스템은 다른 국가에 비해 어떤가.
많이 약하다. 과거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일 때는 관치금융이 심했다. 은행의 자금을 싸게 쓸 수 있게 했다. 가격을 통제했다. 시장금리가 20%가 되는데 은행금리는 10% 정도였다. 이러한 후유증이 지금도 심하다고 본다. 그리고 국민이 수수료를 잘 안 내려고 한다. 소비자도 내긴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무형의 재화, 서비스에 대해서는 돈을 잘 안내려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은행들의 비이자 수익이 10%밖에 안 된다. 원래는 이자수익과 비이자 수익의 비율이 5대5여야 하지만 지금은 9:1인 셈이다. 수수료에서 이익을 얻을 수 없으니 은행들이 이자금리를 올리려고 하는 것이다.
-금융산업은 어떻게 개편해야 하나.
세계 경제 위기에 학자들끼리 이런 논의를 많이 했다. 투자은행을 키워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아무래도 상업은행보다는 투자은행 쪽이 좀 더 가볍게 움직일 수 있다. 최근 들어 펀드 등 투자하겠다는 사람도 많이 늘고 있다. 그만큼 투자은행의 할 일이 많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초대형 투자은행이 생길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금융데이터 활성화도 중요하다. 금융데이터는 지주회사 산하 계열사끼리 공유가 돼야 한다. 지금은 마케팅 목적이 아닌 경우에만 공유하게 돼 있다. 금융데이터가 활성화되면 고객들은 금융상품을 사용하는데 더 편리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