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법률구조공단의 내부 갈등이 해결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해 7월 신임 조상희 이사장이 취임한 직후 변호사인 A지부장에 대해 허위보고 등을 이유로 전보발령 한 것에 대해 법적다툼으로 이어지더니, 올 1월 공단이 개방형 직위 변호사 채용을 5년 임기로 추진하면서 공단변호사들과 갈등이 증폭되었다. 변호사 노조는 지난 3월 A지부장 인사에 대해 직권남용혐의로 조 이사장을 경찰에 고발했고, 지난 4월에는 법무부 청사 앞에서 조 이사장의 해임을 촉구하는 시위를 했다. 반면 공단 일반직 직원들은 시위 당일에 "조 이사장의 개혁정책을 적극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조 이사장은 상황이 심각해지자 지난 4월 30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해명의 자리를 마련했다. 그는 기존 변호사들에게 적용되는 정년 65세·고임금 등 고비용 구조를 유지하면 공단의 운영에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임금체계 개선과 임기제 변호사 도입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공단이 현재 고용노동부로부터 체불임금사건을 해결해주는 대가로 지원금을 받고 있는데, 국회에 계류된 임금채권보장법개정안이 통과되면 이 지원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심각한 재정난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개정안에 의하면 노동자가 일정 금액 이상의 체불임금확인서를 노동부에 제출하면 밀린 돈을 지급받을 수 있어서 공단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임금사건 급감우려 때문에 이 모든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단이 2018년에 발표한 업무현황자료를 보면, 공단은 지난 1년 동안 민사 등 사건 구조 149,906건, 형사사건 17,405건을 수행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임금 사건은 92,999건에 달하여 민사구조사건의 약 62%를 차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난 해 공단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지원금은 253억 원에 달한다. 지난 해 공단의 자체자금 492억 원 중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에 조 이사장의 우려도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그 동안 공단이 수입증대에 지나치게 치중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 매해 400억 원이 넘는 국고보조금을 지원받으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민들에게 적시에 필요한 법률구조를 하는 것이 공단의 설립취지인데, 전체 사건의 60%가 넘는 임금사건에 치중해가며 돈을 버는 구조였다는 비판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임금사건이 줄어들 것 같으니 변호사들에 대한 고비용 탓으로 책임을 돌리는 것은 다소 무책임한 주장이 아닌가 싶다. 변호사노조는 2016년 말 변호사 직급체계를 개편하여 초봉은 연봉 6천만 원 정도로 하향했다고 반박한다.
여기에 더해 조 이사장은 "단순 사건, 평이 사건, 반복 사건을 65세까지 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20년, 30년 경력자가 처리할 수밖에 없는 고난도의 사건이 있지 않느냐고 하는데 사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됩니다" 라며 공단이 수행하는 사건들을 폄하했다. 그러나 단순히 소가(금액)가 낮다고 해서 사건이 단순하고 평이하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조 이사장은 판사출신이다. 그렇다면 소액사건을 담당하는 판사들도 마찬가지인지 되묻고 싶다. 조 이사장의 발언은 갈등을 격화시키는 것으로서 적절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조 이사장은 A지부장이 일반 직원의 법률상담은 변호사법 위반이라고 강변한 것에 귀를 기우릴 필요가 있다. 실제로도 공단에서 거의 대부분의 법률상담은 직원이 수행하며 구조가 결정되고 있다. 직원이 구조거절을 하면 공단을 찾아간 서민들은 변호사는 만나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법률상담에서 구조까지 변호사가 관여해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 따라서 기관장을 직원이 맡을 수 있도록 검토한다는 공단의 입장은 방향이 잘못된 것이다.
공단은 업무를 대폭 줄이고 법률에 규정된 것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민을 돕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공단은 지금 “법률상담과 구조결정은 변호사가”,“법률구조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민에게”라는 캐치프레이즈가 필요한 때다. 공단의 내부 갈등을 단순히 밥그릇싸움이라고만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