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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금융당국의 금기어 '공짜점심'
입력 : 2019-11-01 오전 8:00:00
이종용 금융팀장
옛날에 한 왕이 경제학자들에게 경제학을 짧고 굵게 요약해오라고 명령했다. 학자들은 한권당 600쪽이 넘는 분량의 87권이나 되는 책으로 보고했다. 왕은 학자들에게 다시 짧은 경제학 지침서를 주문했다. 경제학자들은 몇 차례 더 줄여나갔지만 왕은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결국 지혜로운 한 명의 경제학자가 왕 앞에서 진술을 하게 됐다.
 
"폐하, 세상의 모든 경제학자들의 책이 담고 있는 경제원리를 여덟 단어로 표현하면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i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
 
1938년, 미국의 한 지역신문에 실린 "경제학을 여덟 단어로 표현하면"이라는 글의 내용이다. 여기에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수반된다는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이 등장한다.
 
익숙하게 들어봤을 '공짜점심'의 얘기를 꺼낸 것은 최근 문제가 된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증권(DLF·DLS) 때문이다. 주요국 국채금리가 급락하면서 DLF가 대규모 원금 손실을 냈고, 투자자들이 판매은행이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면서 손실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금융감독원은 DLF 판매 은행과 고객간의 분쟁조정을 진행중이다. 금감원이 진행하는 불완전 판매 분쟁조정은 투자자 계약별로 금융사 불완전판매 정도와 투자자의 자기책임원칙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배상률을 결정하는 구조다.
 
고위험 상품에 투자해본 경험이 없는 고령자에게 고위험 상품을 추천했다면 은행에 불완전판매 책임이 있다. 그러나 고령자라고 해서 금융상품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거나 안정적인 투자성향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때문에 당국은 투자자의 과거 투자상품 투자이력 등을 들여다보고, 금융이해력 정도를 감안해 배상비율을 가감한다. 투자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은 통상적으로 경험이 많은 사람보다 배상률이 높게 나온다고 볼 수 있다.
 
금융소비자 분쟁조정의 일반적인 구조가 이러한데, 금융당국 수장들은 '투자자 책임의 법칙'을 입에 담지 않는다. 금융소비자 보호는 현 정부의 아젠다이기 때문에 '공짜 점심'은 사실상 금기어에 가깝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얼마전 '공짜점심' 발언을 해명하기 바빴다. 기자간담회에서 '투자는 자기 책임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국정감사에서도 국회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지자 DLF 투자자를 꼬집어 말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도 마찬가지다. 금융감독원의 주요 역할이 '금융소비자 보호'인 만큼,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 않았다. 윤 원장은 DLF 상품를 겜블(도박)에 비유하면서, 금융사가 국가 경제에 도움이 안되는 상품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물론 불완전판매 정황이 드러난 금융사는 일벌백계 해야 한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회사 있냐'는 볼멘소리도 들리지만, 먼지가 안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금융상품 투자 손실과 소비자 대책 마련은 매년 반복되는 문제다. 불과 6개월 전에 당국은 소비자보호 종합대책을 내놨었다. 금융상품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금융사에 으름장을 놓거나 제도만을 개선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긴급한 구조조정 현안이 있을 때마다 금융당국은 '이해관계자의 책임분담' 원칙을 강조해왔다. 금융사건사고에서는 이해관계자가 많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공평해야 한다는 것이다. 키코(KIKO)부터 DLF, 라임사태로 이어지는 파생상품의 위험성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지금처럼 여론을 의식해 경제의 기본법칙 마저 금기어로 다룬다면, 금융시장 정상화는 요원하다는 것을 금융당국은 상기하기를 바란다.
 
이종용 금융팀장 yong@etomato.com
 
이종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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