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페이스북 트윗터
(시론)'훈령'으로 '헌법' 제한하겠다는 법무부
입력 : 2019-11-04 오전 6:00:00
정치인이나 재벌 등 권력이 수사를 받는 경우 거의 실명으로 자세히 소개된다. 일반인들의 범죄혐의가 단발성 사건위주로 비실명 처리되는 반면 권력의 범죄혐의는 그들이 누구인지, 관련자가 누구인지, 제대로 수사 받고 있는지가 아주 상세히 지속적으로 기사화된다. 우리는 이를 알 권리로 당연시 여긴다. 단순히 이들을 망신주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보를 우리에게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언론이고 기자다. 언론의 자유가 헌법에 명시되고 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의 핵으로 소개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앞으로는 뇌물 받은 정치인이나 뇌물을 준 기업인에 대한 수사상황을 우리는 알 수 없게 되었다. 법무부가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제정했기 때문이다. 조직 내에만 효력이 있는 ‘훈령’으로 말이다. 피의사실과 수사상황 등이 원칙적으로 공개가 금지되고, 공개소환 및 촬영도 전면 금지된다. 예외적으로 공개심의위원회를 설치하여 허용되는 경우를 논의하겠다는 단서를 붙이기는 했지만, 자의적으로 운용될 경우 반대 세력에 대해서만 적용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단지 우리의 알 권리가 휴지통에 던져지는 게 문제가 아니다. 권력에 대한 감시가 소홀해 질 것이 몹시도 두렵다. 유력 인사들에 대해 검찰이 비공개소환하면 ‘봐주기 수사’하냐면서 비난일색이었던 것이 엊그제다. 기자들의 취재의 자유, 국민의 알 권리를 법률이 아닌 ‘훈령’으로 제한하는 것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훈령에는 독소조항도 숨어 있다. 오보를 한 기자는 검찰청 출입제한을 할 수 있는 규정이다. 오보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주체는 검찰이다. ‘아니면 말고’식의 기사도 있었기에 일견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오보를 접할 때 피해 당사자가 입은 피해는 돈으로 보전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법체계에 따르면 헌법에 언론의 자유가 있고, 당사자는 법에 따라 정정보도, 손해배상 등을 청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일단은 언론의 자유를 폭 넓게 허용하되, 잘못이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엄격히 묻도록 시스템이 구축된 것이다. 
 
권력의 비위에 대한 초기 취재는 아무래도 설익은 기사가 나오기 마련이다. 의혹당사자는 초반에 대개 부인한다. 극단적으로 어디에 투신하겠다며 결백함을 호소하는 정치인들도 여럿 있었다. 지난 정권에서 ‘정윤회 문건’을 폭로했던 세계일보에 대해 정부의 태도가 어땠는지 우리는 기억한다. 2014년 최모 판사가 사채왕으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한국일보 보도에 대해 대법원은 이례적으로 직접 나서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언론의 보도는 모두 사실로 확인되었다. 또한 검사의 비위의혹이 있는 경우 오보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검찰에게 있다면 그 결정에 대한 신뢰가 생길지도 의문이다. 
 
“후보자의 배우자가 조모씨의 소개로 블루코어밸류업 1호 사모펀드에 투자한 것은 사실이나, 그 외에 조모씨가 투자대상 선정을 포함하여 펀드운영 일체에 관여한 사실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법무부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던 지난 8월 19일 사모펀드관련의혹이 불거지자 기자단에 해명한 자료다. 법무부는 “사실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라고 정중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언론의 보도가 오보라는 뜻을 완곡하게 내비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조 전 장관의 배우자와 조모씨는 사모펀드 의혹과 관련하여 나란히 구속되었다. 언론의 의혹제기가 설득력이 있었다는 반증이다. 만일 법무부가 오보라고 단정하고 검찰을 통해 기자들의 출입제한을 가했다면 어땠을까. 기자들은 후속 취재에 당연히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그만큼 국민의 알권리는 침해되게 되고, 사회는 불투명하게 된다.
 
언론의 잘못된 관행이나 오보에 대한 책임을 더욱 강화하는 것에는 전적으로 찬성한다. 그러나 그 전에 권력에 대한 언론의 자유는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 우리가 궁금한 것은 일반 형사사건이 아니라 권력의 비위다. 세상은 점점 공개되고 투명화 되고 있다. 변호사는 형사처벌이 아닌 단순 견책과 같은 징계의 경우도 생년월일까지 포함하여 실명이 변협을 통해 공개되고 있다. 권력에 대해 뭔가 숨기고 감추려는 태도는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감'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최기철 기자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