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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눈 가리고 아웅
박용준 공동체데스크
입력 : 2020-04-23 오전 6:00:00
선거가 끝났다. 웃는 자도 있고, 웃지 못한 자도 있지만 선거공보물만은 여전히 씁쓸함을 남긴다. 선거공보물 한 쪽에 첨부된 보이스아이 때문이다. 각 후보자는 선거법에 따라 점자공보물을 제작하거나 공보물에 인쇄용 바코드(보이스아이)를 첨부해야 한다. 
 
서울에서 이번 총선에 출마한 후보자 4명 중 1명은 보이스아이를 첨부했다. 지난 총선보다 3배 이상 늘었다. 어떤 정당이나 후보자들은 자신들이 시각장애인을 위해 보이스아이를 첨부했다며 시각장애인을 배려하는 듯한 홍보물과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하지만 보이스아이는 비시각장애인이 보기엔 그럴싸해보여도 껍데기일 뿐이다. 시각장애인 중 보이스아이를 쓸 수 있는 사람은 10명 중 1~2명에 그친다. 범용 QR코드가 아니여서 별도의 앱으로만 열 수 있다. 시각장애인이 스마트폰으로 보이스아이를 찾아 앱을 구동해 실행하기엔 너무 힘들다.
 
실제로 시각장애인을 배려한다면 점자공보물을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점자는 가장 기본적인 문자다. 현재는 점자출판시설이 아닌 일반 인쇄업소에서 인쇄하다보니 불량률이 너무 높다. 매수도 제한돼 일반 공보물에 3분의 1밖에 내용을 담을 수 없다. 
 
법이나 제도를 만들면서 장애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 같지만 당사자 입장이 아니라 비장애인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눈 가리고 아웅’이다. 십수 년간의 건의와 싸움으로 점자공보물은 의무화됐지만, 겨우 의무화 턱을 넘었을 뿐이며 그나마도 보이스아이가 끼어들었다.
 
이는 단순히 선거에만 그치지 않고 장애인이 사는 일상 전반에 해당한다. 시각장애인이 다니는 길만 해도 산 넘어 산이다. 서울시 조사결과 강북권 보도 866km에서 발견된 이상 건수는 1만건이 넘는다. 신호등에 설치된 음향신호가 잘못됐거나 보도에 볼라드나 점자블록이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은 경우가 부지기수다.
 
시각장애인들 5명 중 4명은 다른 스마트폰보다도 아이폰을 선호한다. 시각장애인들의 사용을 위한 접근성이 다른 스마트폰보다도 월등하기 때문이다. 아이폰은 본사가 위치한 미국 문화와 법 제도에 따라 스마트폰의 모든 기능과 텍스트를 음성으로 묘사하는 등 별도의 특수기기 없이도 시각, 청각, 운동 능력, 읽기, 쓰기 능력을 보완해주는 보조 기능을 갖췄다. 
 
물론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는 국내 대표 스마트폰 제조업체들도 장애인을 위한 보조기술을 내놓고 있지만, 아이폰과는 다르다. 아무런 추가 없이 간단한 조작만으로도 활용 가능한 아이폰과 시각장애인 전용 폰, 혹은 전용 서비스를 이용해야만 하는 다른 스마트폰 사이의 거리는 아직 멀다. 2020년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은 디폴트값이 아니라 옵션이다.
 
안내견 조이의 국회 회의장 출입 논란이 제법 시끄럽다. 국회조차 장애인 국회의원은 기본값이 아니라 추가사항인 셈이다. 지난 제17대 국회에서도 장향숙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이후 장 당선인이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과정에서 국회 내 시설 보강으로 떠들썩했던 일이 있었다. 다행히 장 의원이 활동하면서 그나마 장애인에 대한 인식 변화와 시설 개선이 일부 이뤄졌다.
 
안내견 출입 논란 역시 김예지 당선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존 사회에서 안내견이 대중교통 탑승을 거부당하거나 공공시설 출입을 저지당하는 등 안내견에 대한 차별이 공공연히 이뤄져왔다. 이번 논란이 어떻게 결론나느냐에 따라 시각장애인의 보행안전권은 좌지우지될 것이다. 또 국회 본회의장의 전자투표시스템, 국회 업무망에 대한 접근성 보완 등은 시각장애인 국회의원 앞에 놓인 장벽이다. 
 
한국 사회가 장애인을 대할 때 보이는 고질병 ‘눈 가리고 아웅’이 이번에 바뀔 수 있을까. 우리는 바꿀 준비가 돼 있을까. 이제 국회, 그리고 한국사회가 답할 차례다.
 
박용준 공동체데스크
박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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