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9일 정오를 기점으로 남북 간 모든 연락채널을 차단하면서 2018년 시작된 남북 평화 모드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정상 간 핫라인과 개성 연락사무소는 물론 국경지대 최소한의 안전판 기능을 하던 군통신선까지 원천 차단됐으며, 남북관계는 대결구도로 회귀하는 모양새다.
북한의 이러한 조치의 근본적 원인은 대북전단 살포, 일명 '삐라'에 있다. 관련해 '입장을 바꿔 우리 최고지도자에 대한 모욕 전단이 살포된다면 분명 자극하는 문제임이 분명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사실 대북전단은 한국전쟁의 부산물이다. 전쟁 기간동안 유엔을 비롯해 남북은 모두 선전용 삐라를 날리기 시작했고, 이때 유엔군이 뿌린 삐라는 25억장에서 40억장 정도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유엔군은 삐라에 투항을 권유하고 신분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았고 이는 '귀순증'이라고 한다. 해당 전단을 가져 오면 귀순을 받아준다는 내용으로 북한군에게는 포로가 될 경우에 대비하는 '생명보험' 구실을 했다고 한다.
80년대에도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 초대권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삐라를 만들었다. 그러던 중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2000년 김대중 정부가 남북 상호 삐라 살포를 중단하기로 합의했고 이때부터 민간단체들이 나서 삐라를 날리기 시작했다.
삐라가 과거에는 일정부분 효과가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2020년인 지금에도 과연 그 효과가 남아있냐는 의문이 남는다. 탈북단체들은 삐라가 북한의 하층민과 엘리트층까지 민심 이반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민심이반이 기반이 돼 북한 정권이 붕괴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북한의 반응을 볼때 삐라는 오히려 북한 사회를 더 경직되게 만들고 있다. 삐라가 폐쇄적 북한사회에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 붕괴를 막기 위한 정권이 내부 단속을 더욱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 인권을 더욱 열악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결국 탈북단체들의 의도와는 달리 삐라가 접경지역 긴장을 높이고 있다. 삐라는 자칫 남북간 국지적 충돌을 유발하고 지역 주민들의 안전에 위협을 발생시킬 위험이 높다. 삐라라는 미비한 효과에 기대기보다는 교류협력을 통한 남북간 진정한 평화모드를 기대해야할 것이다.
국회에선 여당을 중심으로 '대북전단 금지법'이 거론된다. 이를 놓고 '표현의 자유'를 해친다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국가 안보를 해칠 위험이 있다면 표현의 자유를 우선해야 할지 고민해봐야 한다.
한동인 정치팀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