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피해자인 응우옌티탄씨 등 2인이 유엔특별절차에 진정서를 제출한다고 7일 밝혔다. 지난해 4월 한국정부에 진상 규명 및 인정과 사과를 요구하는 청원을 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받지 못한 데 따른 추가 조치다.
탄씨 등을 대리하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국제연대위원회와 베트남전민간인학살진상규명을위한TF(민변)는 이날 한베평화재단 등과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TF 간사를 맡고 있는 임재성 변호사는 "베트남전 민간인 피해자가 국제사회에 피해 구제를 요구하는 건 전례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번 진정은 유엔인권이사회를 통해 권한을 부여 받은 유엔특별절차를 통한 개인진정으로, 44개의 주제별·12개의 국가별 절차가 있다. 이중 탄씨 등은 고문방지특별보고관, 인권옹호특별보고관, 진실정의배상과재발방지특별보고관 등 3개의 진정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특별보고관은 온라인으로 접수한 진정서의 진정성을 심사한 후 질의에 답변을 요구하거나, 필요 시 유엔인권이사회 연례보고서에 내용을 기재하거나 직접 조사에 착수하는 등의 개입도 가능하다. 심각한 인권침해가 확인되면 긴급성명 발표나 해당 정부에 긴급조치 요청도 할 수 있다. 일례로, 올초 육군 복무 중 트랜스젠더임을 밝혔다가 강제 전역 당한 변희수 하사가 유엔고문특별조사관에 진정을 제기했고, 당시 조사위원은 군의 행위가 '고문'이며 국제인권법 위반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민변과 한베평화재단이 7일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개최한 '베트남전쟁 시기 민간인학살 사건에 관한 유엔 진정서 접수 기자회견' 시작에 앞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최서윤 기자
민변 측은 진정 제기 의미에 대해 "당시 한국군이 비무장 민간인들에 대해 무차별 공격을 자행한 행위는 고문과 학대 등을 금지한 제네바협약을 포함한 국제인도법과 국제인권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전쟁 범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같은 해 9월 국방부가 최초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내놓은 바 있지만, "군이 보유한 전투사료에서는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며 "사실 확인을 위해서는 베트남 당국과 공동조사가 필요한데 여건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정부가 사실상 진상조사 요청을 거부했다는 게 피해자 측의 판단이다.
한국정부가 사건 해결에 미온적인 이유로는 '베트남 정부가 외교 관계를 이유로 진상규명과 배상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꼽힌다. 이에 김남주 변호사는 "103명의 청원인 등 약 9000명의 피해자분들은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주 베트남 한국 대사관은 2000년경 한국군의 베트남 학살 경위를 자세히 조사했고, 이 내용이 현지 군대 신문 등에 보도됐다고 한다.
임 변호사는 "(6·25 전쟁 당시 미군에 의한 한인 민간인 학살 피해인) 노근리 학살 진상규명위를 만든다는 정부가 1968년 발생한 사건에 그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는 건 무책임하다"면서 "피해자들이 정부의 답변에 실망해 유엔에까지 제기하는 진정을 계속 묵인하고 방과할지 묻고 싶다"고 했다.
한편 퐁니퐁넛마을 생존자인 탄씨는 한국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 오는 1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첫 변론기일을 갖는다. 탄씨 등은 코로나19 확산 상황으로 인해 한국에 오지 못했고, 한베평화재단과 민변 측을 통해 사건을 조율하고 있다.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