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 지난 8일부터 한국과 일본 간 기업인 입국절차가 간소화되면서 한껏 경색돼 있던 양국관계가 경제부문에서 숨통을 텄다. 스가 내각 출범 이래 첫 합의로, 강제징용 판결 등 민감한 역사문제와 경제를 분리하는 '투트랙' 외교가 순항할지 주목된다.
11일 외교부에 따르면 이번 일본과의 기업인 특별입국절차 합의로 한국의 제3위 교역대상국이자 제2위 인적교류 대상국인 일본과 기업인을 시작으로 인적교류가 본격 재개될 예정이다.
경제활동 보장을 위한 특별입국은 국가 간 방역의 필수 절차인 14일간 격리를 면제하는 대신 초청 기업이 방역을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에 신뢰관계 없이 이뤄지기 힘들다. 통상 경제에 필수적인 한국도 입국절차 간소화에 합의한 나라가 5개국에 불과하고, 일본이 신속입국을 허용한 건 싱가포르와 한국 뿐이다. 그런 점에서 한일 외교당국과 재계 간 신뢰에 기초한 협의가 잘 진행돼 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제적 긴요성도 컸다. 외교부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해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도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았기 때문에 그 영향을 최소화시킨다는 것"이라고 이번 합의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한일간 경제교류가 단순히 물건이 아닌 투자도 있고 기업인 교류도 있다"며 "상호 간에 공감하는 가운데 서로 수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협의해왔다"고 덧붙였다.
스가 내각 출범 후 이뤄진 첫 합의라는 데서 양국 관계 개선 기대도 높다. 지난달 24일 문 대통령과 스가 총리가 가진 통화에서도 이번 합의가 양국 간 인적교류 재개의 물꼬를 트는 계기로서 관계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데 공감했다고 외교부는 전한 바 있다.
한국과 일본 간 하늘 길이 반년만에 다시 열렸다. 역사문제에서 해결이 요원한 양국관계 개선이 경제분야에서는 회복할지 주목된다. 사진은 양국이 90일 무비자 입국 제도를 중단한 지난 3월9일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 출국장 모습. 사진/뉴시스
다만 강제징용 문제를 두고 입장차가 여전해 전면적인 관계 회복으로 이뤄지긴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스가 총리는 취임 전후로 "한일관계는 1965년 청구권 협정이 기본"이라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유효하다고 본 한국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30일 교도통신 보도에 따르면 외무성은 한국이 올해 주빈국인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 문제에 대해 "일본 가해 기업 자산 현금화를 하지 않는 데 확약하지 않으면 스가 총리의 방한은 없을 것"이란 취지의 방침을 세웠다. 이에 코로나19 확산으로 가뜩이나 어두운 3국 정상회의 연내 대면 개최 가능성은 더욱 낮아질 전망이다.
결국 현재로서 한일관계 개선은 역사문제와 경제를 분리하는 '투트랙' 외교의 순항 가능성에 달려 있다는 관측이다. 강경화 외교장관은 7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일관계에 대해 "급격한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면서도 "새 내각이 들어서면서 소통과 대화에 대한 의지를 다지면서 어려운 가운데서도 적극 소통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사 문제는 어렵지만 우리는 투트랙을 분명히 걷고 있다"며 "수출규제는 수출규제문제대로 적극 협의했다"고 강조했다.
관건은 역사문제를 경제와 결부시킨 수출규제 철회 여부다. 강 장관은 "한일 간 국장급 대화는 더 이상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하에 일단 중단을 시켰다"며 "WTO 제소를 재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로서는 일본 측의 요구 조건을 충족시켰는데 우리가 요구하는 규제조치 철회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WTO 차원에서 일본의 조치가 부당하고 일방적이고 차별적이라고 하는 것을 입증하려고 수출 당국 쪽에서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지금도 사실상 수출허가를 해주고는 있다"면서 "일본이 화이트리스트를 다 바꿔야 법적으로, 형식적으로 원상복구가 되는데 거기까진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일본이 사실상 수출규제 이전의 상황을 취하고 있는 부분을 어떻게 의미 부여하고 판단하느냐의 문제"라고 봤다. 경제관계 회복의 기미는 이미 어느 정도 보여 왔다는 분석이다.
다만 조 교수는 투트랙 외교의 순항 가능성에 대해서는 "유보적"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번 협의는 일본 경제가 코로나로 어려운 상황에서 인적교류를 확대하는 가운데 이뤄진 것뿐 특별히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제스처를 취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걸 계기로 환경을 정비한 정도"라고 평가했다. 그는 "더 상화을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양측 정부가 무엇을 할지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결국은 역사 문제와 관련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취지다.
한편 최근 경제 분야에서 화해 무드를 보였던 한일관계는 지난 7일 독일 베를린시 미테구에서 일본 측의 항의를 받은 뒤 한인 시민단체에 평화의 소녀상 철거 명령을 내리면서 다시 역사 문제로 인한 갈등을 예고했다. 외교부는 "정부가 민간의 자발적 움직임에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일본 정부의 소녀상 철거 요구는 일본도 인정한 위안부 관련 사죄 반성의 정신에 역행하는 행보"라고 비판했다.
올해 한국이 주빈국인 한중일 정상회의의 연내 개최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사진은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지난해 12월24일 중국 청두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 계기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 외교장관회담에 앞서 악수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