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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정치의 과학적 조율
2021-07-29 06:00:00 2021-07-29 06:00:00
프랑스 전역에서 16만명이 모였다. 자유를 위해서다.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은 마크롱 대통령을 폭군이라 외치며, 끊임 없이 자유를 외쳤다. 마치 박근혜 탄핵을 위해 매주 토요일 광화문 광장에 모였던 촛불처럼, 프랑스에서도 매주 10만명이 넘는 인파가 ‘폭군’ 마크롱을 몰아내기 위해 모이고 있다. 프랑스는 대혁명의 나라다. 18세기 계몽주의의 불꽃이 시민혁명으로 점화된 역사적 장소는 프랑스 파리였다. 군주를 몰아내고 국민의 자유를 원하던 이들의 혁명으로 전세계는 정치적 대각성의 길에 들어섰다. 물론 프랑스 대혁명은 폭력으로 얼룩지고 결국 다시 독재자를 소환했지만, 여전히 프랑스인에게 대혁명은 자랑스런 역사다.
 
한국엔 대혁명의 역사가 없다. 동학혁명도, 3.1운동도, 4.19혁명도, 5.18 민주화운동도, 87년 6월항쟁도, 탄핵반대촛불집회도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곤 하지만,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기준에 빗대면 거대한 격변에 이르지 못한 미완의 민중봉기였다. 이 땅에서 보이는 혁명의 불씨들은 프랑스대혁명처럼 때로는 죽창을 들고, 때로는 화염병과 총을 들고 권력에 맞섰다. 하지만 세계 민주주의의 모범으로 불리던 평화로운 촛불집회 또한 대통령을 탄핵하고 그 반대편의 권력자를 세웠을 뿐, 한국이라는 국가의 새로운 체제를 혁명적으로 전환시키지 못했다. 코로나로 거의 2년간 사생활을 침해당했던 이 땅의 시민들은 자유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오지 않는다. 프랑스, 이탈리아, 호주, 그리고 미국에서도 코로나19 방역이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시민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시민들이 분노하는 지금, 대부분의 한국 시민들은 여전히 국가를 존중하고 있다.
 
미국은 신규확진자가 다시 10만명을 넘어섰다. 7월4일 독립기념일을 맞아 바이든 행정부는 코로나19로부터의 독립을 공언했고, 시민들은 마스크를 벗고 불꽃놀이를 즐겼다. 하지만 그 날을 기점으로 미국의 확진자는 가파르게 증가했다. 가장 많은 백신을 확보하고, 언제 어디서든 백신을 맞을 수 있는 미국의 접종률은 아직 성인의 절반이 채 되지 못한다. 델타 변이의 확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미국의 접종률 저조를 설명할 수 없다. 현재 미국은 주류 정치세력이 공공연하게 백신음모론과 백신반대운동을 지원하는 거의 유일한 국가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공화당의 주류들은 미국 내에 소수자로 존재하던 반백신주의세력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가장 부유하고 가장 많은 백신을 보유한 자유와 기회의 나라 미국은, 정치와 영합한 반과학주의자들의 선동에 코로나19 사태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1월 취임하면서 ‘과학의 귀환’을 선언했다. 하지만 그가 언급한 ‘과학’은 최첨단과학기술의 맥락에 머물러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혁명적이고 효능이 탁월한 백신을 최단기간에 만들어낼 정도의 과학기술력을 지닌 미국이지만, 미국 시민의 절반 이상은 그 뛰어난 백신을 맞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들은 코로나19가 감기와 같은 질병일 뿐이며, 국가가 방역을 빌미로 그들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믿는다.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한 각국의 통계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사망률을 매일 보여주고, 백신접종률과 사망률 사이의 인과관계를 보여주고 있지만, 반과학주의자들은 언제나 음모론이라는 골목길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한다. 그들에게 과학적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정치적 신념과 자유일 뿐이다.
 
최근 워싱턴포스트는 칼럼에서 “과학이 허락한 것을 정치가 앗아가는 듯하다”고 논평했다. 분명 과학은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에서 과학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을 인류에게 내놓았고, 계속해서 답을 찾고 있다. 문제는 정치다. 유럽과 미국의 지도자들은 분명 과학적 사실로부터 대중을 설득하는 복안을 찾으려 고민 중이지만, 반과학적 음모론으로 무장한 신념과 광기에 휩싸인 대중에게 정치적 수사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과학은 결과가 아니라 답을 찾는 과정으로부터 우리에게 더 많은 의미를 줄 수 있는 학문이다. 하지만 근대과학이 시작된 서구문명은, 과학의 진정한 자리를 찾는 데 실패했다. 과학이 결과를 넘어 방법으로, 도구를 넘어 태도와 삶의 양식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과학의 진정한 힘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아가 정치적 의사결정의 모든 과정에 과학적 태도가 스며들어야 한다. 정치가 과학적으로 조율되지 않는 한, 코로나19와 같은 사태는 인류에게 반복해서 나타날 것이다. 과학이 정치를 조율해야 한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heterosis.kim@gmail.com)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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