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자 배제'한 의대 정원 논의…"사회적 공론화 필요"
정부, 의협과만 논의…의대 정원 논의 한계
인력정책 논의 '보정심'은 '개점휴업'
"밀실 합의…시민참여 기구서 논의해야"
2023-06-13 16:32:40 2023-06-13 18:01:23
 
 
[뉴스토마토 주혜린 기자] 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가 18년째 끌어온 의과대학 정원 논의에 합의했지만 밀실 합의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정부와 의협 간 밀실 합의가 아닌 사회구성원이 참여하는 공론화 기구를 통해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에 나서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13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복지부는 이달 중 의협과의 ‘의사 인력 수급 추계 전문가 포럼’을 통해 구체적인 의대 증원 규모를 조율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형훈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정부는 6월 중 의료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의료인력 수급 추계 전문가포럼을 구성해 과학적이고 근거에 기반한 의사인력 증원 논의를 추진해나갈 것을 약속드린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복지부와 의협은 지난 8일 제10차 의료현안협의체를 열고 2025년도 입시 모집 요강에 의대 정원 증원을 반영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지난 1월부터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논의한 지 열 번째 회의 만입니다.
 
하지만 의료계 내에선 여전히 반발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국의사총연합는 ‘복지부와 의협의 의대정원 확충에 대한 주먹구구식 합의를 규탄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통해 “의대정원 확충은 의료계뿐만 아니라 교육계 전반에 재앙의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서울시내과의사회 또한 “의대정원 확대와 비대면 진료는 향후 의료계의 명운이 걸린 중차대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의협의 행보는 전체 의사회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며 “공개질의에 성의있는 답변을 요구하며 의협은 전체 회원들의 민의에 귀 기울여달라”고 공개질의서를 의협으로 보냈습니다.
 
정부는 수백명까지 의사를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의협은 필수의료인력 지원과 재배치가 우선이란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증원 규모는 추후 논의를 통해 정하기로 했지만 의협이 협상 주도권을 갖고 있어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지 의문입니다.
 
대학 입학 정원은 직전년 4월 결정되는데, 그동안 협의가 지지부진하면서 정부는 2024년도 입시에 의대 정원 확대를 반영할 기회도 놓쳤습니다.
 
시민단체와 일부 지자체에서 요구하는 공공의대 설립도 당장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됩니다. 의료현안협의체의 4대 안건 중 하나인 '공공의대 설립'은 의협 요구대로 백지화됐습니다.
 
사회구성원이 참여하는 공론화 기구에서 의대 정원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진은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는 전공의 모습. (사진=뉴시스)
 
의대 정원 논의는 현재 의료현안협의체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정부 내에는 의대 정원 관련 내용을 심의할 보건의료인력정책심의위원회라는 조직이 따로 있습니다.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은 이 위원회가 심의할 내용 중 하나로 '보건의료인력 양성 및 수급관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위원회는 복지부 차관인 위원장을 비롯해 노동자단체, 시민단체, 의료인단체, 의료인력단체, 의료기관단체, 전문가 등 25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2021년 1월 꾸려진 보건의료인력정책심의위원회의 회의가 개최된 것은 단 2회뿐,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입니다. 특히 의대 정원 확충을 의료이용자는 배제한 채, 의협과만 논의하는 것이 '모순'이란 지적도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장은 “의료 정책은 의협과 정부의 문제 만은 아니다. 법정기구가 아닌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협과 정부가 양자간 논의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는 "현재 논의 상황에서 건강보험 가입자는 배제돼있다. (소비자단체, 환자단체 등이 참여하는) 이용자협의체가 있기는 하지만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남 국장은 "복지부가 폭넓게 논의 테이블을 구성해 시민사회, 지자체, 전문가 등 다양한 주체가 토론하면서 의대 정원 확대 규모와 방식을 논의를 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방안이 도출되면 복지부가 결정을 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피력했습니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정부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의사들과 병원들이 원하는 정책 위주로 정책을 하다 보니까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대단히 기형적인 상황이 되어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의사 단체가 동의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는데 (이렇게) 진행하는 건 밀실 합의다”며 "의료현안협의체를 중단하고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나 보건의료인력정책심의위원회 같은 공론화기구에서 논의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복지부는 의협이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전문가 단체로서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없다며, 의협이 더 이상 논의를 회피해서는 안된다고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형훈 정책관은 "의대정원 증원 논의는 여전히 의료계 내부에서 금기시돼 의협은 내부의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지 못하고 있다"며 "의료현장에서 의사 역할과 전문성이 보건의료정책의 혁신에 반영되지 못한다면 국민들은 의협이 의사의 권익보호만을 최우선으로 하는 직능단체로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회구성원이 참여하는 공론화 기구에서 의대 정원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진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공공의대 신설 및 의대정원 확충 촉구 기자회견 모습. (사진=뉴시스)
 
세종=주혜린 기자 joojoosk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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