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의 고민 ‘디젤의 몰락’
전기차·하이브리드 질주 뒤로 디젤차 명암
차량 등록대수 성장흐름, LPG차와도 역전
정유설비서 경유만 따로 못 줄여…수출로 풀어야
대호주 수출 증가세…“신규 경유수요 발굴 절실”
2024-08-09 13:50:54 2024-08-09 17:09:51
 
[뉴스토마토 이재영 선임기자] 전기차, 하이브리드차의 성장과 반비례해 디젤차와의 명암이 갈리고 있습니다. 자동차 제조사는 생산라인을 바꾸면 되지만 주력 제품 수요가 줄게 된 정유사는 뾰족한 대책이 없습니다. 국내 디젤차에 대한 환경규제도 시행돼 내수 타격부터 커질 전망입니다. 수출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하지만, 내연기관차로 회귀를 공약한 트럼프조차 휘발유차를 강조합니다. 제조사별 품질 변별력이 부족한 산업 특성을 고려하면 경유 수출에서 가격경쟁도 피할 수 없습니다.
 
 
 
경유차 감소세 갈수록 가팔라
 
9일 정부 및 업계에 따르면 경유차의 감소세가 가팔라지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 2021년에 12만대, 2022년 11만3000대, 2023년 25만8000대씩 감소했습니다. 올 상반기엔 벌써 20만대가 줄었습니다. 경유차 누적 등록대수는 지난해 말 950만대에서 올 상반기 말 929만9000대로 기울었습니다.
 
경유차와 액화석유가스(LPG)차량의 상황도 역전됐습니다. 매년 줄던 LPG차량이 작년 말 183만2000대에서 올 상반기말 184만9000대로 증가했습니다. 지난 1월1일부터 시행된 환경규제가 주된 배경으로 지목됩니다. 대기관리권역의 대기환경개선에 관한 특별법은 신규 구매하는 어린이 통학버스, 택배 화물차량, 여객운송플랫폼 사업용 차량에 대해 경유차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이들 시장을 LPG차량이 대체하고 나섰습니다. 현대차 등 완성차들도 LPG차를 재출시하고 디젤차는 단종하거나 출시보류하는 추세입니다.
 
대신 휘발유 소비가 반사적으로 늘고 있는 것은 정유사에게 그나마 위안입니다. 그럼에도 생산설비 구조상 휘발유 비중을 늘려 경유를 메꿀 수 없습니다. 경유 문제는 별개로 풀어야 합니다. 한국석유공사 조사 결과, 국내 석유제품 소비는 휘발유가 2020년 8096만배럴에서 2023년 9036만배럴까지 늘었습니다. 반면 경유는 같은 기간 1억6373만배럴에서 1억6049만배럴로 줄었습니다. 2021년 1억6612만배럴까지 늘기도 했지만 이후 줄곧 내리막입니다. 두 유종 합산치에서 2020년 휘발유는 33.09%, 경유는 66.91%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2023년엔 각각 36.02%, 63.98%로 중심이동이 뚜렷합니다. 올 들어서도 경유 감소세는 이어집니다.
 
경유 생산량만 별도로 줄이기 어려운 정유사는 팔지 못한 내수분을 수출로 밀어내야 합니다. 하지만 2020년 이후 경유 수출은 코로나19 탓에 들쭉날쭉했습니다. 작년엔 코로나19 타격이 걷혔지만 경유는 1억9650만 배럴을 수출해 전년 2억353만배럴보다 줄었습니다. 유가하락까지 겹쳐 정유사들 실적은 부진했습니다. 정유사업 비중이 높은 에쓰오일의 경우 영업이익이 1조3546억원으로, 전년 3조4052억원보다 60.2% 감소했습니다.
  
디젤게이트가 만든 벼랑
 
디젤의 몰락은 디젤게이트가 발단입니다. 본래 유럽은 휘발유차보다 연비가 좋은 디젤차를 친환경적이라고 판단해 자동차세를 덜 걷었습니다. 자동차 배기량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적용합니다. 세금이 낮은 디젤차가 택시 등 폭넓게 쓰였습니다. 
 
그랬던 게 독일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 스캔들 이후 바뀌었습니다. 내연기관차에 대한 이미지가 전반적으로 나빠졌습니다. 더 이상 내연기관차로 환경 규제를 준수하기 어려울 것이란 인식이 퍼졌고 전기차 등이 주목받게 됐습니다. 유럽 대부분 국가들은 2025년~2030년 이후 내연기관차의 신규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도 만들었습니다. 트럼프 재선이란 변수가 있지만 이를 감안해도 디젤차 전망은 어둡습니다.
 
업계로서는 대체하기 어려운 경유 수요처를 공략하는 게 관건입니다. 1톤트럭이나 봉고차에선 전기차가 출시되고 있지만 대형트럭과 군용장비, 건설장비 등 산업용 수요는 여전히 디젤엔진의 높은 출력을 요구합니다. 이들 시장의 국내 수요는 한정돼 있지만 해외에선 개발도상국가 등 수요 증가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OECD와 비OECD간 내연기관차 수요가 교체되면서 전반적인 수요는 완만한 흐름일 것으로 국제기구(IEA 등)는 내다본다”며 “OECD 국가 중에서도 정유설비를 폐쇄하는 등 신규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호주”라고 지목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호주 경유 수출은 2020년 1761만배럴에서 2023년 6293만배럴까지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대유럽 경유 수출이 2023년 기준 벨기에를 제외하곤 전무한 상황과 비교됩니다. 정유사들마다 제품을 환경적으로 바꾸는 노력도 경주하고 있습니다. HD현대오일뱅크의 경우 팜폐유, 폐식용유 등을 처리해 바이오디젤을 만드는 초임계 공정을 세계 최초 도입했습니다. 다만 바이오디젤은 기존 경유에 일정량을 섞는 형태라 한계가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수출시장에서 신규 수요를 발굴하는 게 정유사들로선 최선인 것 같다”며 “자유무역협정(FTA)을 확대해 수출 대상지역을 늘려주거나 수출거래 협상력을 높여줄 금융이나 물류지원 등 정책적 도움도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재영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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