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고도성장기 한국 사회 역동성의 상징인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옛말이 됐습니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소득과 자산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세대 간 경제력 대물림' 현상이 더욱 공고해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역 간 경제적 격차가 거주지 대물림과 맞물리면서 수도권과 달리 비수도권 출생 자녀들의 계층 성장 사다리는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사거리에 시민들이 길을 걷고 있다. (사진=뉴시스)
'금수저' 유리한 사회…'고착화'
11일 한국은행의 BOK 이슈노트 분석을 보면, 우리나라의 세대(1970년~1990년생 등 전체) 간 대물림 정도를 측정하는 '소득 백분위 기울기(RRS)'는 0.25로 추정됩니다. 이는 부모의 소득 순위가 100계단 중 10계단 오르면 자녀의 소득 순위도 2.5계단 오른다는 의미입니다.
수치가 1에 가까울수록 대물림이 심한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수준의 상관관계가 종속된다는 방증입니다. 문제는 최근 세대로 올수록 해당 수치가 크게 상승한다는 점입니다.
1970년대생 자녀의 소득 RRS를 보면, 0.11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1980년대생의 경우는 0.32로 세 배 가까이 급등했습니다. 자산 기준으로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합니다.
70년대생(0.28)에서 80년대생은 0.42에 달하는 등 부모의 재력이 자녀의 경제적 지위를 결정짓는 경향이 갈수록 짙어졌습니다. 특히 세대 간 대물림을 완화하는 중요 통로는 '지역 간 이동'이었습니다. 타지역으로 이주한 자녀의 소득 백분위는 부모보다 평균 6.5%포인트 상승한 반면, 출생지에 머문 자녀는 오히려 2.6%포인트 하락했습니다.
이주 집단의 소득 RRS(0.13)는 비이주 집단(0.33)보다 현저히 낮아 이동이 계층 상승의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단, 이주 효과는 출생 지역에 따라 크게 달랐습니다.
비수도권 출생 자녀가 수도권으로 이동할 경우 소득 개선 폭이 컸지만 같은 광역권 내에서의 이동은 과거보다 효과가 크게 줄었습니다. 예컨대 과거에는 비수도권 거점도시 대학 졸업자와 수도권 대학 졸업자의 평균 소득 수준이 비슷했으나 최근에는 수도권 대학 졸업자가 거점도시 대학 졸업자보다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1일 한국은행의 BOK 이슈노트 분석을 보면, 우리나라의 세대(1970년~1990년생 등 전체) 간 대물림 정도를 측정하는 '소득 백분위 기울기(RRS)'는 0.25로 추정됐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계층 사다리 '이주'…저소득층엔 '장벽'
더 큰 문제는 수도권 이주 자체가 부모의 경제력에 좌우된다는 점입니다. 부모 자산이 상위 25%인 자녀는 하위 25% 자녀보다 수도권으로 이동할 확률이 43%포인트 높았습니다. 결국 수도권을 통한 계층 상승 기회는 경제적 여력이 크게 작용하는 셈입니다.
비수도권에서 태어나 고향에 남은 저소득층 자녀의 경우 '가난의 대물림' 현상이 심화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부모 소득이 하위 50%인 자녀가 성인 후에도 하위 50%에 머무는 비율은 과거 50%대 후반에서 최근 80%를 넘어섰습니다. 이에 반해 상위 25%로 올라설 확률은 13%에서 4%로 급감했습니다.
즉, 지역에 남는 것이 곧 '가난의 대물림'으로 이어지는 구조로 고착화된다는 얘기입니다. 결국 비수도권 출생 청년이 수도권으로 떠날 유인은 커지고 수도권 출생 청년이 수도권에 잔류하려는 경향은 강화되는 셈입니다. 이는 청년층의 수도권 집중을 심화시키고 지역 소멸과 양극화를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지난해 12월10일 서울 시내 대학의 취업 정보 게시판에 기업들의 모집 관련 공고가 붙어 있다. (사진=뉴시스)
비수도권 도시 경쟁력↓…'가난 대물림'
정민수 한은 조사국 지역경제조사팀장은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은 과거 우리나라의 고도성장기에 빈번하던 자식 세대의 지위가 부모보다 월등히 나아지는 극적인 계층 이동을 상징적으로 표현해왔다"며 "최근에는 세대 간 계층 이동의 역동성이 이전에 비해 약화되고 있다는 경고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에 더해 최근 확대되고 있는 지역 간 격차는 거주 지역의 대물림과 맞물려 세대 간 경제력의 대물림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인구의 절반가량이 출생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 것을 고려하면 지역별 부익부 빈익빈이 개인에게 그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며 "소득이 높은 지역으로 이주해 계층 상승을 이루려 해도 상당한 비용 탓에 그러한 기회조차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된 자녀들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습니다.
이러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동성 강화', '지역 경쟁력 제고' 등의 전략 마련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비수도권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해서는 '지역별 비례선발제' 등을 도입해 상위권 대학 진학 기회를 넓히고 비수도권 거점대학과 거점도시에 대한 과감한 '선택과 집중' 투자가 시급하다고 봤습니다.
근본적으로는 비수도권 계층 상승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거점도 시 중심 발전'과 같은 실효적인 균형발전 전략을 구체적으로 실행해야 한다는 점도 꼽았습니다.
정민수 지역경제조사팀장은 "저소득층 자녀들이 광역권 내에서 계층 상승의 기회를 얻을 수 있으려면 결국 비수도권의 산업과 일자리의 경쟁력이 높아져야 한다"며 "그러나 향후 인구 감소 추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모든 지역의 균일한 성장을 도모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 따라서 비수도권에서 그나마 집적과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는 거점도시의 위상을 강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정 팀장은 "이를 위해 지자체 간 유사한 전략과 경쟁으로 역량을 낭비하기보다 광역 차원에서 지역별 특화와 효율적 분업을 도모할 필요가 있으며 최근 논의되고 있는 행정구역 통합 및 광역권 거버넌스 개편 등도 거점도시의 위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지난 2일 광주 북구 용봉동에서 시민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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