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안 된다?…‘자녀산재법’ 사각지대
삼전·디스플레이 노동자 산재 불승인
신청기한 제한에 어머니만 대상 ‘한계’
2026-02-26 17:06:51 2026-02-26 17:07:36
[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임신 중인 여성 노동자들만 대상인 자녀산재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됐습니다. 현행 산재보험법은 어머니의 자녀산재만을 인정하고 있는데, 이 또한 과거 피해자의 산재 신청 기간을 제한한 상태라는 점에서 ‘반쪽 제도’에 그친다는 지적입니다. 
 
반도체산업 자녀산재 피해자가 이른바 자녀산재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백아란기자)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이하 반올림)은 26일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녀산재법이 많은 피해자를 부당하게 배제하고 있다”며 “국회와 고용노동부는 아버지 자녀산재를 적용 대상에 포함하고, 과거 자녀산재 피해자들의 신청권을 온전히 보장하는 법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지난 2021년 국회 산재보험법 개정으로 도입된 자녀산재법은 임신 중 유해물질 노출 등 어머니의 산업영향에 따라 자녀에게 질병이 발현했을 때 자녀와 어머니를 모두 산재 피해자로 보는 법률입니다. 이는 태아의 건강 손상을 업무상 재해에 포함시킨다는 점에서 유의미하지만, 자녀질병에 영향을 미치는 아버지 쪽 산업영향은 배제돼 있고, 법률 소급 기간이 제한된 탓에 한계가 있는 까닭입니다.
 
자녀산재법은 법 시행일인 2023년 1월12일 이후 출생한 자녀부터 적용이 됩니다. 단 2020년 1월12일 이후 출생한 자녀(법 시행 전 3년 이내 출생)의 경우 예외로 청구를 받아주지만, 이 또한 지난 1월11일(법 시행 후 3년 이내 청구)로 끝이 난 상태입니다. 결국 뱝의 한계로 인해 아버지가 반도체 노동자인 자녀는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고 행정소송을 진행해야 합니다.
 
실제 삼성디스플레이 LCD 공정에서 근무한 최현철(가명) 씨의 경우 아들이 차지증후군으로 눈·심장·귀 등 다발 장애를 앓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는 2021년 산재 신청 후 공단은 업무상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했으나, 2024년 불승인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현행 ‘자녀산재법’이 임신 중 여성 노동자만 대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2020년 이전 출생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성전자 기흥, 화성 공장에서 18년 근무간 김지은(가명)씨의 경우 대장암 투병 중 자녀의 자폐를 산재 신청했으나 ‘신청기간 경과’로 2024년 불승인, 재심사도 기각됐습니다. 김씨의 경우 2010년 자녀를 출생했으며 자녀는 2016년 자폐성장애 2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18년 간 반도체 공장에서 일을 했지만, 자녀에 대한 산재는 기간 상 문제로 인정받지 못한 것입니다.
 
고광민 변호사(서울대학교 공익법률센터)는 “근로복지공단이 최 씨의 업무상 유해요인 노출과 자녀의 차지증후군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임신 중 여성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요양급여를 불승인하는 것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목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보호의 핵심은 ‘산업위험으로 인한 자녀의 건강손상’이라는 결과이지, 노출 주체의 성별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고 변호사는 또 “설령 건강손상자녀 규정의 직접 적용 여부에 논란이 있다고 하더라도, 근로복지공단은 법의 문언에만 매몰돼 기계적으로 불승인할 것이 아니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체계와 목적, 그리고 기존 판례가 확립한 법리를 종합해 합헌적·목적론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조승규 반올림 노무사는 “일반적인 산재 노동자는 치료 종결 후 3년 또는 5년 이내에 신청하면 되는데, 자녀산재 피해자는 극히 일부만이 인정될 뿐, 나머지 대다수는 산재보험의 보호 밖에 놓여 있다”며 “과거 자녀산재 피해자들에게는 신청 기간을 제한당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잘못도 없다”고 했습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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