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규의 피지컬 AI)AI가 '입'을 닫고 '손'을 뻗기 시작했다
제1회 / 최홍규 연구위원·AI교육팀장(EBS)
2026-04-02 15:59:50 2026-04-02 16:03:28
최홍규 연구위원·AI교육팀장(EBS) / 미디어학 박사
 
#.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내 프라이를 해줘."
 
이제 이 문장은 단순한 설명을 넘어 실질적인 '실행 명령'이 된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은 바로 이 변화가 더 이상 먼 미래의 상상이 아님을 증명한 자리였다. 현대자동차그룹의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선보인 아틀라스(Atlas)와 중국의 유니트리 로보틱스(Unitree Robotics)가 내놓은 인간형 로봇들은 이제 전시장 유리벽을 넘어 우리 삶의 현장으로 성큼 걸어오고 있다. 테슬라의 옵티머스(Optimus) 역시 시연 영상 속에서 빨래를 개고 물건을 옮기며, 로봇이 실험실의 장난감이 아니라 우리의 거실과 작업장을 함께 공유할 '물리적 실체'임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화면 속에 갇혀 정보를 큐레이션하던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 드디어 물리적 신체를 얻어 우리 곁으로 나오고 있다. 바로 '피지컬 AI(Physical AI)'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생성형 AI가 인간과 기계가 언어로 자유롭게 소통하는 시대를 열었다면, 피지컬 AI는 그 언어를 물리적 행동으로 번역하여 우리를 실질적으로 이롭게 하는 시대를 연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AI와 정보를 주고받는 수준을 넘어, AI라는 거대한 팔다리를 부리며 현실의 물리적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새로운 국면에 직면해 있다.
 
피지컬 AI라는 기술의 화려한 외형에 압도되기 쉽지만 본질은 명확하다. 피지컬 AI는 결코 인격적 숭배의 대상이 아니며, 인류 역사상 가장 진화된 형태의 도구일 뿐이다. 기존의 AI가 데이터의 바다에서 정답을 찾아 제시하는 입과 귀였다면, 피지컬 AI는 그 정답을 현실에서 직접 완수하는 손과 발이다. 챗GPT에게 요리법을 물으면 완벽한 레시피를 출력하지만, 피지컬 AI는 직접 냉장고 문을 열고 계란을 꺼내 뜨거운 프라이팬 위에 깨뜨려 넣는다. 정보의 조합에 머물지 않고 물질을 직접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것, 이것이 기존 AI와 피지컬 AI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다.
 
정보사회이론의 석학 프랭크 웹스터(Frank Webster)는 1995년 저서인 <정보사회이론(Theories of the Information Society)>을 통해, 정보화가 단순한 정보의 양적 확대라기보다 우리의 삶을 새로 짜는 과정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그의 논지를 살펴보면, 정보화란 삶의 질적 재구성에 가깝다는 쪽에 무게를 둔다. 피지컬 AI는 이러한 질적 재구성이 스크린을 넘어 물리적 실재로 전이되는 결정적 지점이다. 과거의 정보가 모니터 안에서 머무는 지적 자산이었다면, 이제 정보는 물리적 세계를 움직이고 구조화하는 실제적인 동력원으로 기능한다. 이 강력한 동력을 오차 없이 제어하기 위해 우리가 쥐어야 할 조종간은 단 하나, 바로 우리의 언어다.
 
하지만 이 새로운 도구는 기회만큼이나 실존적 위험을 내포한다. 국제로봇연맹(IFR: International Federation of Robotics)이 발표한 <TOP 5 Global Robotics Trends 2025>에 따르면, 로봇은 이제 인간의 의도를 해석하고 물리적 환경에 적응하는 단계로 진입했다. 여기서 중대한 차이가 발생한다. 화면 속 챗봇의 오답은 수정하면 그만이지만, 피지컬 AI의 오작동은 화재나 인명 피해 같은 물리적 사고로 직결된다. 즉, 잘못된 명령은 단순한 오류를 넘어 실제적인 사고가 된다.
 
따라서 필자는 이 지점에서 '커맨드 리터러시(Command Literacy)'를 정교하게 개념화하고 주목할 것을 제안한다. 커맨드 리터러시란 우리의 추상적인 생각을 물리적으로 실행 가능한 정교한 명령 설계로 변환하는 능력을 뜻한다. "적당히 해줘" 혹은 "거기 좀 치워"와 같은 모호한 말은 피지컬 AI에게 아무런 이정표가 되지 못한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행동의 설계도로 치환하고, 기계가 실수의 위험 없이 물리적 과업을 완수할 수 있도록 단계별 명령을 내리는 법을 새롭게 익혀야 한다.
 
결국 피지컬 AI 시대를 관통하는 핵심은 기술의 사양 그 자체보다, 이를 올바르게 부릴 줄 아는 인간의 정신적 근력에 있다. 기계가 인간의 근육을 대신하고 알고리즘이 판단의 초안을 작성하는 세상에서, 인간에게 남겨진 최후의 영토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움직이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가치 지향적 설계 능력이다. 커맨드 리터러시는 단순한 코딩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를 물리적 실재로 번역해 내는 고도의 인문학적 사유 과정이다. 우리가 내리는 명령 한 문장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 공동체의 안전, 그리고 삶에 대한 철학이 담겨야 하며, 그것이 결여된 명령은 그저 통제 불능의 물리적 폭주를 낳을 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리터러시 교육은 이제 지식의 습득을 넘어 AI라는 거대한 물리적 신체를 지휘하는 마에스트로를 길러내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다음 세대에게는 AI라는 팔다리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조화로운 선율을 만들어내는 지휘자의 자질을, 시니어 세대에게는 기술이라는 외골격을 통해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효능감을 제공해야 한다. 화면 속 데이터에 함몰되는 수동적 소비자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언어라는 조종간을 쥐고 피지컬 AI를 현실에서 구동시키는 주체적 지휘자가 될 것인가. 이 갈림길에서 커맨드 리터러시는 우리가 인간다움을 유지하며 기술의 파도를 타고 나아갈 수 있게 돕는 유일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텍스트와 이미지 속에 머무는 관찰자가 아니다. 우리의 언어가 현실의 물리적 에너지로 변환돼 세상을 직접 바꾸는 흥미진진한 시대의 출발선에 서 있다.
 
기술이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는 어떤 명령으로 세상을 더 즐겁고 이롭게 만들 것인가. 우리의 대화 기술은 곧 우리의 새로운 신체 능력이자 물리적 영향력이 될 것이다.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마주할 질문들을 앞으로 긴 호흡으로 함께 탐구해 보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도 이 새로운 항해에 기꺼이 동참해 주길 바란다.
 
최홍규 연구위원·AI교육팀장(EBS) / 미디어학 박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충범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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