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글로벌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에 기댄 한계기업들이 무더기로 증시 퇴출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실질적인 기술력이나 연구개발(R&D) 성과 없이 사명 변경과 장밋빛 공시만으로 주가를 부양하는 이른바 ‘AI 워싱(AI Washing)’이 자본시장 교란 요인으로 부상하면서 투자자들의 주의가 요구됩니다.
8일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펀더멘털 악화로 감사의견 거절을 받아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거나 상장폐지 순서를 밟은 기업 중 다수가 AI 관련 신사업을 내세웠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지난 4월8일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알파AI는 본래 외과용 수술 기구 및 척추 질환 임플란트 등을 취급하던 1세대 헬스케어 기업 ‘솔고바이오메디칼’이었습니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회사는 2024년 8월 ‘알파녹스’로, 2025년 7월에는 지금의 ‘알파AI’로 연이어 사명을 변경하며 분위기 반전을 모색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했습니다. 2025년 1분기 기준 회사의 총매출액 67억원 중 메디칼 부문이 66.4%, 헬스케어 부문이 33.6%를 차지했을 뿐, AI 관련 매출은 없습니다. 알파AI는 지난 4월7일 감사 범위 제한 및 계속기업 존속 능력 불확실성을 이유로 감사의견 ‘의견거절’을 받았습니다. 회사가 이의신청서를 제출함에 따라 거래소는 차기 사업보고서 법정 제출 기한의 다음날부터 10일인 2027년 4월10일까지 개선 기간을 부여했으며, 이 기간까지 주권 매매거래정지는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2002년 설립된 확장현실(XR) 전문 기업 스코넥은 기존 가상현실 콘텐츠 사업에 생성형 AI와 블록체인 등 융복합 기술을 접목하는 청사진을 제시했습니다. 수배전반 등 중전기기를 제조하는 광명전기는 자사 핵심 설비에 인공 신경망을 이용한 AI 이상 진단 기술을 탑재하고자 2023년 관련 특허를 출원하고 시스템 개발 투자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본업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스코넥은 4월7일 감사의견 거절로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해 관리종목에 편입됐습니다. 광명전기 역시 심각한 재무 리스크를 극복하지 못하고 관리종목에 지정되는 등 AI 접목 신사업 모멘텀은 재무제표의 벽에 막혔습니다.
비유테크놀러지와 BF랩스는 상장폐지 결정을 막기 위해 법정 공방까지 벌였으나 최근 나란히 정리매매를 마쳤습니다. 비유테크놀러지는 정관상 사업 목적에 ‘AI 관련 소프트웨어의 개발, 자문, 판매 및 공급업’을 추가하고, XR 및 음성인식 AI 기술을 적용한 실감형 가상현실 시뮬레이터 구축을 신사업으로 장착했습니다. 그러나 실적 악화로 지난해 7월 상장폐지가 한 차례 결정됐고,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으나 지난 3월31일 재차 ‘의견거절’ 공시를 냈습니다. 지난달 20일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4일까지 정리매매 절차가 강행됐습니다.
2011년 코스닥에 입성한 BF랩스(구 시티랩스)도 비슷한 처지입니다. 주력인 ITS(지능형교통체계) 통합솔루션 사업 외에 블록체인,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자본시장의 인기 요소를 모두 담았습니다. 2020년에는 정부의 AI 학습용 데이터 구축 사업에 참여해 환경오염 AI 데이터를 구축했다며 4차 산업 관련 기술 도메인을 내걸었습니다.
하지만 BF랩스 역시 지난해 6월 상장폐지 결정 이후 가처분 신청으로 버티다 지난 3월23일 또다시 ‘의견거절’ 통보받았습니다. 법원이 지난 4월23일 가처분 기각 판결을 내리면서 4월27일부터 5월7일까지 정리매매가 진행, 코스닥 시장에서 퇴장했습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사명에 AI를 넣거나 사업 목적에 관련 키워드를 추가하는 것은 한계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쓰는 흔한 수법일 수 있다”며 “투자자들은 한계기업일 경우 미래 청사진보다 사업보고서상의 실질 재무 흐름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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