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하늬 기자] 강변북로 진입로를 빠져나오자마자 앞이 막혔습니다. 차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었고, 앞차의 붉은 브레이크등은 숨을 쉬듯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운전대를 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습니다. ‘정말 여기서 손을 떼라고?’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IQL’ (사진=캐딜락)
크루즈컨트롤도 좀처럼 켜지 않았습니다. 속도 조절 하나를 기계에 맡기는 것조차 미덥지 않은데, 이번에는 운전대에서 아예 손을 놓아보라는 겁니다. 게다가 이 차는 무게 4.2톤의 대형차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IQL’였습니다. 평소 타던 승용차와 덩치부터 차원이 다른 이 거구에게 운전을 맡겨도 되는 걸까. 의심이 먼저 고개를 들었습니다.
운전대 위 초록색 불빛은 핸즈프리 운전자 보조 시스템 ‘슈퍼크루즈’가 준비됐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망설임 끝에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두 손을 운전대에서 뗐습니다. 순간 등줄기에 긴장이 스쳤습니다. 손은 무릎 위에 올려두었지만 언제든 운전대를 낚아챌 수 있도록 손끝은 여전히 반쯤 들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대한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차선을 따라 미끄러지듯 나아갔습니다. 앞차가 속도를 줄이면 함께 줄였고, 다시 움직이면 일정한 간격을 지키며 뒤를 따랐습니다. 1분, 2분… 시간이 흐를수록 손끝의 긴장이 조금씩 풀렸습니다. 의심이 있던 자리에 신기함이, 그다음에는 편안함이 들어섰습니다.
지난 20일 캐딜락의 대형 전기 SUV ‘에스컬레이드 IQL’과 내연기관 모델 ‘더 뉴 에스컬레이드’를 시승했습니다. 750마력의 출력도, 압도적인 차체도 인상적이었지만 이날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따로 있었습니다. 평소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선택, 운전대에서 두 손을 떼고 자동차에 주행을 맡긴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주요도로 핸즈프리 기능 지원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주행 중 핸즈프리 운전자 보조 시스템 '슈퍼크루즈'가 작동하며 운전대 상단에 초록색 표시등이 켜져 있다. (사진=김하늬 기자)
슈퍼크루즈는 운전자가 전방을 주시한다는 조건 아래, 운전대에 손을 올리지 않고도 달릴 수 있도록 돕는 운전자 보조 시스템입니다. 카메라와 레이더, GPS 등 센서가 읽어낸 정보를 미리 구축해둔 도로지도와 겹쳐 차선을 유지하고 앞차와의 간격을 조절합니다.
국내에서 이용할 수 있는 주행보조 기술 중에는 테슬라의 감독형 완전자율주행(FSD)도 있습니다. 테슬라가 도심 교차로와 좌우회전까지 주행보조 범위를 넓혔다면, 슈퍼크루즈는 정밀지도를 구축한 고속도로와 주요 간선도로에서 핸즈프리 주행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두 시스템 모두 운전자가 전방을 주시하며 주행 상황을 감독해야 하는 레벨2 기술입니다.
이 기술의 진가는 역설적으로 가장 답답한 순간에 드러났습니다. 정체 구간에서 운전자를 가장 지치게 하는 건 브레이크를 밟았다가 가속페달로 발을 옮기고, 다시 브레이크로 돌아오는 끝없는 반복입니다. 슈퍼크루즈는 그 반복을 대신 떠맡았습니다. 앞차가 늦추면 자연스럽게 감속했고, 흐름이 풀리면 부드럽게 따라붙었습니다. 정체가 완전히 풀리지 않은 구간에서도 차는 교통 흐름에 몸을 맡긴 채 담담하게 주행을 이어갔습니다. 강변북로를 빠져나올 즈음, 평소 같으면 뻐근했을 종아리가 한결 가벼웠습니다.
이 담담함 뒤에는 방대한 데이터가 있습니다. GM에 따르면 슈퍼크루즈는 북미에서 약 8억7700만km의 누적 주행거리를 쌓았습니다. 국내에서는 고속도로와 주요 간선도로 등 2만3000km 이상의 도로에서 쓸 수 있도록 현지화했고, 도로의 곡률과 버스전용차로, 공사 구간 같은 한국 도로만의 특성도 반영했습니다.
물론 손을 뗐다고 운전에서 해방되는 것은 아닙니다. 운전자 모니터링 시스템(DMS)은 쉬지 않고 제 시선을 지켜봤습니다. 전방 주시가 흐트러지면 단계적으로 경고하고,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핸즈프리 주행을 종료합니다. 손은 쉬어도 눈은 쉴 수 없는 셈입니다.
그 경계가 가장 분명해진 건 요금소와 고속도로 출구가 다가왔을 때였습니다. 계기판에 운전대를 다시 잡으라는 안내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다시 운전대를 쥐었고, 그 순간 이 차가 모든 걸 알아서 해주는 완전자율주행차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그런데도 묘하게 서운하지 않았습니다. 기계가 할 수 있는 일과 사람이 해야 할 일의 경계를 스스로 알려주는 방식이 오히려 신뢰를 더해줬기 때문입니다.
4.2톤 거구지만, 움직임은 경쾌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의 2열 실내. 대형 럭셔리 카답게 독립형 좌석과 넉넉한 레그룸을 자랑한다. (사진=김하늬 기자)
슈퍼크루즈가 첫 번째 반전이었다면, 에스컬레이드 IQ L의 주행 감각은 두 번째 반전이었습니다. 처음 운전석에 올랐을 때만 해도 부담이 컸습니다. 시트에 앉는 순간부터 거대한 차체의 존재감이 온몸으로 전해졌고, 도로에 나서자 마을버스를 모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이 무게라면 출발도, 가속도 굼뜰 것이라고 각오했습니다.
가속페달을 밟자 그 각오는 단숨에 무너졌습니다. 묵직한 차체가 주저 없이 앞으로 튀어 나갔습니다. 전기모터 특유의 즉각적인 반응 덕분에 4.2톤이라는 숫자가 무색할 만큼 속도가 경쾌하게 붙었습니다. 속도를 줄일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무게를 의식하게 될 만큼 제동이 불안하거나 둔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거의 없었습니다.
에스컬레이드 IQ는 캐딜락이 전동화 시대를 겨냥해 내놓은 대형 전기 SUV입니다. 국내 출시 자료 기준으로 205kWh 용량의 배터리를 탑재했고, 벨로시티 맥스 모드에서는 최고출력 750마력을 발휘합니다. 방금 전 느낀 그 경쾌함의 정체였습니다.
하지만 이 차의 크기가 언제나 미덕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로 위에서 넉넉한 공간과 높은 시야로 든든함을 주던 차체는 주차장에 들어서자 전혀 다른 얼굴을 보였습니다. 주차 칸에 차를 맞춰 넣는 동안 차체의 길이와 폭이 고스란히 부담으로 돌아왔습니다. 달리는 내내 예상보다 가볍게 느껴졌던 거구가 좁은 공간에 들어서자 그제야 본래의 존재감을 드러낸 것입니다. 달릴 때는 크기를 잊게 하지만, 주차할 때는 결코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차였습니다.
내연기관 특유의 묵직함 여전
캐딜락의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에스컬레이드 IQ'가 주차장에 세워져 있다. 차체 크기가 주변 주차 공간과 대비된다. (사진=김하늬 기자)
전기차에서 내려 더 뉴 에스컬레이드로 옮겨 탔습니다. 같은 이름을 달고 있지만 성격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6.2L V8 가솔린 엔진과 10단 자동변속기를 품은, 정통 대형 SUV입니다. 최고출력은 426마력. 전기차가 즉각적인 반응으로 운전자를 놀라게 한다면, 내연기관 모델은 대배기량 엔진이 빚어내는 묵직한 주행 감각으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이 차에도 슈퍼크루즈가 들어갔습니다. 과거 대형 SUV의 경쟁력이 넉넉한 실내와 엔진 성능, 고급스러운 승차감에 있었다면, 이제는 운전자의 부담을 얼마나 덜어줄 수 있느냐가 새로운 경쟁의 축이 된 셈입니다.
현실적인 장벽도 분명합니다. 국내 판매가격은 더 뉴 에스컬레이드가 1억6807만원부터, 에스컬레이드 IQ가 2억7757만원입니다. 차체 크기와 가격 모두 누구에게나 쉽게 권하기는 어려운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시승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머릿속에 남은 건 750마력이라는 숫자도, 압도적인 차체도 아니었습니다. 막히는 강변북로 위에서 초록색 불빛을 확인하고, 반신반의하며 운전대에서 두 손을 떼던 그 몇 초였습니다. 눈은 여전히 도로를 향했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웠던, 크루즈컨트롤조차 믿지 못하던 운전자에게 자동차를 믿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스며든 순간이었습니다.
김하늬 기자 hani4879@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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