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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W 첫 선고)재판에서 드러난 감독당국의 '꼼수'
검찰수사와 재판중 관련규정 개정 등으로 혼란야기
2011-11-28 15:57:03 2011-11-28 16:28:12
[뉴스토마토 권순욱기자] ELW 부당거래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이 내려졌지만, 이번 사건을 초래한 금융감독당국과 증권거래소 등의 책임은 앞으로도 계속 남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증권거래소, 증권예탁원 등이 애당초 검찰이 자신감을 갖고 수사를 개시하게 된 단초를 제공한 장본인들이다.
 
비록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검찰로서는 최선을 다한 수사였고, 금융감독당국과 증권거래소 관계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한다면 충분히 범죄혐의를 의심할만한 사건이었다.
 
특히 ELW 거래시스템에 대한 언론의 비판적인 보도와 검찰의 압수수색 등으로 위축되어 있는 상황에서 검찰 수사에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던 해당 기관들은, 막상 검찰이 오랜 시간 수사 끝에 기소를 하자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것은 증권업계와 학계 등 관련 전문가들이 검찰 수사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일제히 쏟아내면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해당 기관들은 문제가 된 쟁점 법률과 규정들을 슬그머니 바꾸기도 했다.
 
◇검찰·변호인·법원 모두 헷갈리게 만든 금융위
 
올해 4월 검찰은 스캘퍼 손모씨와 현대증권사 직원 백모씨 등을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이에 앞서 올해 초부터 각 증권사를 압수수색했다.
 
ELW 거래와 관련해 12개 증권사가 줄줄이 압수수색을 당하고, 관련 기관 임직원들이 검찰에 불려나가 소환조사를 받았다.
 
검찰의 기세가 무섭던 시점이었다. 
 
그러자 5월19일 금융감독위원회는 ELW시장 추가건전화 방안을 발표했다. 검찰의 기세에 눌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금융위가 내놓은 추가건전화 방안은 재판 내내 쟁점이 되었다. 해석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증권사의 방화벽을 거치지 않고 스캘퍼의 주문처리시스템을 호가제출단계(FEP) 등에 탑재해주는 경우는 금지'한다고 선언했다. 동시에 '원칙적으로 증권사에 접수되어 주문처리된 순서대로 KRX에 호가가 제출될 수 있도록 제도보완'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가 검찰 수사 도중에 발표한 추가건전화 방안은 재판 내내 골치덩어리였다.
 
문맥상으로는 검찰의 문제제기를 수용해 제도를 개선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금융위는 이미 이전부터 '주문접수 순서대로 처리'라는 원칙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해석됐다. 검찰도 이 지점을 계속 물고 늘어졌다.
 
증권사들을 변호하는 대리인들은 해석이 달랐다. 추가건전화 방안에 의하면 이전에는 그런 원칙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도 해석이 되기 때문이다.
 
해당 보도자료를 작성한 사무관이 법정에 증인으로 나왔지만 공방은 허공을 맴돌기도 했다.
 
재판 내내 논란이 된 추가건전화 방안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하지 않고 원칙만 언급했기 때문이다. 검찰 주장이 맞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검찰 주장이 명백하게 틀렸다는 것도 아니었다.
 
"금융감독 당국자로서 언급하기에 부적절하다"는 식의 답변을 반복하자 재판장은 몇 번이나 "기관 입장 생각하지 말고 보고 들은대로 말하면 된다"고 주의를 주기도 했다.
 
그런데도 "추가 건전화 방안을 만들 당시에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는지 말해달라"는 재판장의 질문에도 금융위 당국자가 답변을 회피하자 결국 재판장은 "만든사람이 모르겠다고 하면 누가 압니까? 그럼 대한민국에서 누가 알아요?"라며 "이런 식이면 재판을 뭐하러 합니까?"라고 질타하기도 했다.
 
더구나 추가건전화 방안을 실제로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금융투자업법을 개정해야 하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도 없는 상황인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소리 소문없이 재판에 쟁점이 된 규정을 바꾼 증권거래소 
 
금융위가 검찰이 대대적으로 기소를 하기 한 달 전에 추가건전화 방안을 발표하며 재판 내내 논쟁거리를 만들어서 재판을 복잡하게 했다면, 증권거래소는 소리 소문없이 쟁점이 된 해당 규정을 슬그머니 개정하기도 했다.
 
평소 같으면 보도자료도 배포하고 출입기자들에게 설명을 했을 법한 내용이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보도자료는 고사하고, 홈페이지를 뒤져도 그같은 일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논란이 된 규정은 '유가증권시장 업무규정 시행세칙(시행세칙)'과 '파생상품시장 업무규정(이하 업무규정)'이었다.
 
ELW가 파생상품과 거의 비슷한 상품구조와 성격을 갖고 있지만, 법률적으로는 유가증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용 규정을 놓고도 실랑이가 오갔다.
 
더구나 검찰은 해당 규정들을 근거로 증권사의 유죄를 추궁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특히 파생상품 거래에 관한 '업무규정'은 재판이 진행되던 올해 7월6일에 개정됐다.
 
증권거래소는 '업무규정' 제122조 ②항을 '회원이 위탁자로부터 문서에 의한 방법 또는 전화등 방법으로 거래의 위탁을 받는 경우에는 주문내용을 접수한 시간의 순서에 따라 회원파생상품시스템 또는 회원파생상품단말기에 입력하여야 한다'는 내용으로 개정했다.
 
기존의 규정에서는 <시간의 순서>라는 표현이 없었지만 새로 집어넣은 것이다. 검찰이 문제삼고 있는 부분을 보완한 것이다.
 
문제는 ELW 거래시스템에 있어서 '시간의 순서'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리도 안되어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사건이 불거진 이후에 검찰의 문제제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듯한 표현을 삽입했지만, 정작 법정에서의 증인진술에서는 변호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으로 진술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재판 내내 '시간의 순서에 따라 처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융위가 추가 건전화 방안에서 밝힌 것처럼 '방화벽을 통과하는 시간'을 의미할 경우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지를 놓고 검찰과 변호인이 치열한 공방을 벌여야 했다.
 
향후 2심과 최종심까지 남은 재판에서도 금융위와 금감원, 증권거래소의 무책임하고 안이한 처신은 두고 두고 논쟁꺼리로 남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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