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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 주인공, 부당한 권력에 맞선 의인?
판결에서 나타난 석궁테러사건의 전모
2012-01-16 13:16:00 2012-01-16 13:35:18
[뉴스토마토 최현진기자] 실제 사건인 일명 '석궁테러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 '부러진 화살'이 오는 18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석궁테러사건'의 실제 주인공인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가 사법 권력에 맞서 싸우는 모습을 그린 '부러진 화살'은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입소문을 타고 흥행을 예고하고 있다.
 
대법원은 영화 개봉을 앞두고 각급법원 공보판사에게 사건과 관련된 사실관계를 정리한 자료를 발송하는 등 영화가 불러올 파장에 대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모습이다.
 
영화 속에서 부당한 사법 권력에 맞서 조소를 날리고 신랄한 비판을 날리는 김 교수.
 
과연 실제 사건 속 김 교수도 영화와 같은 '의인'인지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을 통해 알아보기로 했다.
 
◇김 교수의 재임용 탈락은 부당?
 
영화에서 김 교수는 학교의 신입생 선발을 위한 대학별고사 채점과정에서 출제된 문제의 오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다가 재임용에 탈락한 것으로 그려진다.
 
김 교수는 홀로 실제로 출제된 문제의 오류를 지적했고, 이를 계기로 동료 수학과 교수들이 학교에 징계를 청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재판결과를 보면 김 교수가 단순히 문제의 오류를 지적해 재임용에 탈락한 것은 아니었다.
 
김 교수는 동료 교수들이 자신에 대한 징계를 청원하자 "수학과는 망했다. 학과를 파괴하겠다"고 호언하는 한편 "성대 수학과 대학원생들은 쭉정이들이다"라는 말을 하고, 동료인 서울대 교수에게 이 문제를 외부에 유출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김 교수는 자신이 지도하기로 한 대학원생을 방치하는 한편, 오후 수업만을 맡겠다고 요구한 적도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학사 관리에서도 문제점을 드러냈다.
 
김 교수는 수학과에 개설된 필수이수과목을 수강한 학생들에 대한 성적을 평가하면서 수강생 대부분에게 일률적으로 동일한 점수(B+)를 부과하거나 과반수이상의 수강생들에게 낙제점수(F)를 부과하기도 했다.
 
김 교수의 성적평가로 당시 학생들의 수강기피는 극에 달해 김 교수가 맡은 과목의 수강생 55명 중 32명이 수강을 철회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실제로 성대 교원 인사위원회는 재임용심사 과정에서 김 교수에게 '학문연구 능력과 실적' 부문 등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었지만, '교수능력과 실적', '학생지도능력과 실적' 부문 등에서는 낙제점에 가까운 점수를 준 것으로 나타났다.
 
◇'부러진 화살' 명확치 않지만, '흉기를 휴대한 상해'는 변함없어
 
판결에 불만을 품은 김 교수는 2심 재판을 맡은 박홍우 판사에게 보복을 결심한다.
 
김 교수는 석궁과 석궁화살을 40만원에 구입한 뒤 박 판사의 집 근처에서 석궁 쏘는 법을 연습하고, 박 판사의 집 위치와 귀가하는 시각을 확인하는 등 계획적인 모습을 보였다. 김 교수는 일식집 요리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횟칼도 구입해 소지하고 있었다.
 
박 판사를 찾아간 김 교수는 "그게 판결이야"라고 외치며 박 판사에게 다가갔고, 동시에 석궁을 발사했다.
 
박 판사는 화살이 자신의 복부에 꽂혀있는 모습을 본 뒤 곧바로 화살을 뽑아 바닥에 내던졌다.
 
이 때 박 판사가 내던진 화살이 바로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문제의 '부러진 화살'이다. 당시 사건을 목격하고 김 교수를 제지한 아파트 경비원은 박 판사가 내던진 화살이 끝이 뭉툭하고 부러져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재판과정에서 제출된 화살은 모두 9개. 이 중 부러진 화살은 존재하지 않았고, 9개의 화살에서는 혈흔 반응이 검출되지 않았다.
 
김 교수의 변호인측은 이를 두고 "부러진 화살은 그 화살촉 끝이 뭉툭하고 뒷부분이 부러져 있어서 피해자의 옷가지를 뚫고 복부에 박힐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부러진 화살을 은폐하고 그 대신 정상적인 화살을 증거로 조작해 제출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당시 김 교수의 재판을 맡은 재판부는 "증거로 제출된 9개의 화살 중 부러진 화살이 없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이 점만으로는 증거를 조작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범행현장에서 증거물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였다고 볼 여지는 있지만 이를 증거조작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제출된 나머지 증거를 조사해 범죄의 증명을 판단한 것이다.
 
즉, 김 교수의 범죄사실인 '흉기를 휴대한 상해'를 입증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부러진 화살'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화살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고, 복부에 상해를 입힌 것 역시 분명하기 때문에 죄를 인정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복부 상해 여부', 담당 의사는 2cm 창상 있었다고 진단서 발급
 
재판부는 박 판사의 와이셔츠에 피가 묻지 않아 있어 박 판사가 실제로 상처를 입지 않았다는 김 교수 측의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다.
 
박 판사를 진료한 의사는 박 판사가 복부 배꼽 부근 좌측 부근에 길이 2cm정도의 창상이 발견됐다고 증언하며 당시 이를 입증하는 진단서를 제출했다.
 
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결과에 따르면 당시 박 판사의 속옷, 내의, 와이셔츠, 조끼에는 모두 혈흔 반응이 발견됐고 이 혈흔은 모두 동일한 남성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김 교수는 박 판사에게 석궁을 쏜 후 범행을 목격한 사람들에게 "국민의 이름으로 판사를 처단하려했다"라고 말하고, 언론사에 재직 중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국민의 이름으로 담당판사를 상대로 일을 저질렀으니 이를 보도해달라"고 통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정에서 김 교수는 사건이 일어난 직후 말했던 것과는 달리 "박 판사를 상해할 의도는 없었고 단지 겁을 주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 '부러진 화살' 담당 판사는?
 
김 교수가 석궁을 쏜 박홍우 부장판사는 김 교수의 재임용 탈락 사건을 담당한 2심 재판의 재판장이었다.
 
박 판사가 2심 재판에서 'BBK의혹'을 제기한 정봉주 전 의원에게 징역 1년형을 선고한 '전력'이 밝혀지면서 현재 네티즌들은 박 판사를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박 판사와 함께 배석해 사건을 주도적으로 심리하고 판단했던 주심판사는 한미FTA를 비판하고 이명박 정부를 풍자의 대상으로 삼아 네티즌들에게 '개념판사'로 알려진 이정렬 창원지법 부장판사였다.
 
김 교수의 대법원 재판을 맡은 주심은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 전향적이고 진보적인 판결로 법해석의 폭을 넓히고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는 평을 받아온 '독수리 5형제' 대법관들이 맡았다.
 
김 교수의 교수 재임용 탈락 판결을 확정한 대법관은 박시환 전 대법관이며, 김 교수에게 징역 4년형을 확정한 대법관은 이홍훈 전 대법관이었다.
 
한편,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김 교수는 지난해 1월 출소했다.
 
김 교수는 "사법부의 잘못을 파헤치겠다"며 이용훈 전 대법원장부터 판사, 교도관,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 등을 고소, 고발했으며 현재도 4건의 재판이 계류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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