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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내가 80대 돼보니..할머니 생각에 눈물만 `글썽`
노인생애 체험..신발 신고 벗기부터 "아이고, 아이고" 연발
고령 사회 행복의 조건은? 세대간 배려, 이해, 소통
2013-04-06 09:00:00 2013-04-06 09:00:00
[뉴스토마토 양예빈기자] "아이고, 아이고"
곳곳에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떼는 것이 꽤 힘들었다. 눈앞은 뿌옇고 무릎은 자동으로 굽혀졌다. 그냥 서 있는 것조차 너무 힘들었다.
 
올해로 26세인 기자는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노인생애체험센터에서 간접적으로나마 80세 노인의 몸 상태를 체험해보기로 했다. 한화생명 은퇴연구소 연구원 4명,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학생 5명과 함께 였다.
 
◇소파에 앉았다 일어서는 것도 고역
 
안내자의 설명에 따라 모두 80대 노인의 신체를 만들기 위해 장비를 하나 둘씩 착용했다. 관절이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방해하는 패드를 팔과 다리에 각각 착용하고, 구부정한 자세를 만들기 위해 등에도 받침대를 착용했다.
 
팔목과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하나씩 차고, 백내장과 황달증상을 재현하는 안경도 썼다. 손에도 장갑과 보호대를 찼다. 장비를 하나, 둘 착용할수록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힘이 빠졌다.
  
10명의 조원들은 가정집을 재현한 세트에 함께 들어갔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하는 평범한 일상생활이 노인의 신체를 가졌을 때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기 위함이었다.
 
노인체험의 첫 시작은 '신발 신고 벗기'. 평소같았으면 1분도 걸리지 않았을 동작이었지만, 발을 넣었다 빼는 것 자체가 버거웠다. 무릎 관절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벽면에 있는 손잡이를 잡아야했다.
 
허리가 불편하니 소파에 앉았다 일어나는 것도 큰 일이었다. 특히, 통돌이 세탁기를 쓴다고 가정하고 다함께 빨래 꺼내는 시늉을 해보았을 때는 곳곳에서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가 튀어나왔다. 설거지를 하는 것, 밥을 먹는 것,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색맹인 듯 색깔 구분도 어려워 
 
이날 체험관에는 노인들이 좀 더 편안하게 요리를 할 수 있는 인덱스 장비, 움직이는 싱크대 등이 설치돼 있었다. 평소같으면 귀찮고 번거롭게 뭘 저런 것 까지 설치하나 했을 텐데, 노인의 신체가 되어보니 그런 장비 하나 하나가 필수품이었다. 
 
백내장과 황달증상을 재현하는 안경을 썼더니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눈앞이 뿌옇게 되니 냉장고에 있는 음료수의 유통기한 하나 제대로 확인할 수 가 없었다. 색이 제대로 구별되지 않는 점도 너무 불편했다.
 
안내자는 "어르신들이 길을 알려드려도 자꾸 헤메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청력 체험에서는 일반인이 듣는 지하철 진입 소리와 노인들이 듣는 소리를 각각 비교할 수 있었다. 노인들이 듣는 지하철 들어오는 소리는 확연히 작고 흐릿했다. 청력이 손상됐기 때문에 노인들이 소리만으로 지하철이 역에 도착하는 지를 확인하는 것은 무리 인듯 했다.
 
거실과 침실 체험에서는 침대에 앉았다 일어나기, 옷장 문 열고 닫기 등을 해봤다.
평소같았으면 인식조차 하지 못했을 옷장 손잡이 모양의 차이가 크게 와 닿았다. 동그랗게 되어있는 손잡이는 힘을 많이 써야해서 문을 열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네모나고 평평한 손잡이는 손바닥 전체로 잡을 수가 있어서 훨씬 수월하게 문을 열수 있었다.
 
침실과 욕실에도 노인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실버 기기가 놓여있었다. 가운데가 뚫려 있어 누워서 바로 배변을 할 수 있는 침대, 욕조에서 목욕을 끝내고 난 뒤 잠시 쉴 수 있는 벤치, 스프링이 있어 앉았다가 쉽게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해주는 방석 등이 눈에 띄었다.
 
◇행복사회로 가는 길..세대간 배려, 이해, 소통 절실
 
고향에 계신 할머니가 매일 "아프다, 아프다" 하시는 소리를 흘려 듣고, 할머니 친구들 실버 기기 산 이야기를 부러운 듯 말씀하시는 것도 그냥 지나쳤는데 막상 노인체험을 해보니 왜 매일 할머니들이 아프다고 하시는지, 평소 쓸데없어 보이는 물건들을 왜 자꾸 갖고 싶다고 하셨는지 단박에 이해가 됐다.
 
이번 체험을 함께한 김치완 한화생명 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급속한 고령화사회로 접어들면서 앞으로 실버산업에 대한 수요가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음료의 유통기한 표시 글씨를 크게 만드는 등 노인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는 접근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배려와 이해, 소통이다. 수명연장으로 세대 단층은 앞으로 더 켜켜이 쌓여갈 게다. 그럴수록 세대간 이해와 공감이 필요하다. 노인 체험은 고령시대의 행복이 결코 돈과 정책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노인체험 참가자들이 지난 4일 용산구 노인생애체험센터에서 체험을 마치고 수료식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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