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발목 잡은 '알선수재'..'전직 권력들'의 무덤
역대 정부 및 청와대 핵심인사 '알선수재'로 줄줄이 법정행
2013-07-11 18:13:28 2013-07-11 18:20:31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개인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던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10일 결국 구속됐다.
 
앞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 때도 구속수사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됐지만, 여러 진통 끝에 검찰은 원 전 원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검찰은 황보건설 전 대표 황모씨의 ‘억대의 돈을 현금으로 건넸다’는 진술을 받은 직후 원 전 원장을 소환조사하더니 집으로 돌려보낸 당일인 지난 5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일사천리, 전광석화였다.
 
전직 국정원장이지만, 법무부에서도 ‘대선개입 의혹’ 수사 때 제시했던 ‘이견(異見)’ 등의 움직임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원 전 원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에 규정한 ‘알선수재’다. 공직선거법 위반 및 국정원법 위반에 따른 구속수감을 뛰어 넘은 그였지만 결국 ‘알선수재’에 발목을 잡힌 것이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사진=뉴스토마토DB)
 
형사 특별법은 대부분 그 뿌리를 형법에 두고 있다. 형법에 기본범죄를 두고 가중처벌 해야하는 범죄를 따로 모아놓은 형태다.
 
알선수재는 형법에는 없고 특가법에만 있는 독특한 범죄다. 형법에는 알선수뢰죄만 두고 있는데, 범죄행위자가 반드시 공무원이어야 한다는 것과 그의 지위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다른 공무원에 직무에 관한 사항을 알선 할 것을 정하고 있다.
 
그러나 알선수재는 이런 제한이 없다. 특가법상 알선수재는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의 알선에 관하여 금품이나 이익을 수수·요구 또는 약속한 사람’이라고 정하고 있다.
 
때문에 공무원이 아닌 일반인도 공무원처럼 공무에 관해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공무원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청탁 등을 알선한 경우 이 죄로 처벌된다.
 
이런 특성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가 1997년 공무원처럼 이권에 개입해 알선수재혐의로 구속기소돼 처벌됐다. 또 1998년에는 사상 최대 병역비리로 불리는 '박노항 원사 병역비리 사건'의 주범 박노항 원사가 알선수재로 구속 기소돼 처벌 받았다.
 
이 뿐 만이 아니다. 역대 정권의 ‘나는 새도 떨어 뜨린다’는 권력가들이 수도 없이 알선수재로 법정에 섰다.
 
참여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넘어간 2008년 12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가 세종비리에 연루돼 알선수재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박연차 게이트’의 핵심인물이었던 박연차 전 태광실업회장,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 등도 모두 알선수재 혐의로 법정에 섰다.
 
이명박 정부 말기에는 파이시티 등 대형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권력가들의 검찰소환과 구속기소가 이어졌다. 이 때도 공통적으로 적용된 혐의가 ‘알선수재’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사진=뉴스토마토DB)
 
이 전 대통령의 레임덕이 시작되던 2011년 6월에는 청와대 정무비서관 출신인 김해수 한국건설관리공사 사장이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 윤여성씨로부터 돈을 받아 알선수재와 정치자금법 위반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해 10월에는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부산저축은행측으로부터 퇴출위기를 모면하게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돈을 받아 ‘알선수재’혐의로 구속기소됐고, 그 다음 달에는 SLS그룹 구명로비 명목으로 10억을 받은 이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의 보좌관 박모씨가 역시 알선수재로 구속기소됐다.
 
비슷한 시기 유동천 제일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로비 청탁과 함께 수억원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이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오빠 김재홍 KT&G복지재단 이사장이 ‘알선수재’로 구속기소됐으며, 2012년 1월에는 파랑새저축은행에서 1억원대의 금품과 함께 청탁을 받은 혐의(알선수재)로 정윤재 전 청와대 비서관이 법정에 섰다.
 
이 전 대통령의 핵심 인사들의 ‘무덤’인 ‘파이시티 사건’이 터진 2012년 4월에는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와 관련해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이 전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이자 ‘6인회’ 멤버였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역시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당시 최 전 위원장에게는 형량이 더 중한 공직선거법 위반혐의 적용이 관측됐었으나 공소시효 문제로 알선수재로만 기소됐다.
 
2012년 5월에는 ‘왕차관’으로 불리우며 권력을 만끽했던 박영준 전 차관이 파이시티 비리와 관련해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당시 박 전 차관에 대해서는 뇌물죄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으나 그보다 한 단계 낮은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기소하는 바람에 검찰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박 전 차관과 같은 혐의로 함께 수사를 받은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조정실장도 알선수재 혐의로 불구속기소됐다.
 
◇이상득 전 의원(사진=뉴스토마토DB)
 
‘알선수재’의 그물망은 '상왕'도 피해가지 못했다. 저축은행으로부터 청탁과 함께 억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 등을 받은 이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이 2012년 7월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항소심 재판 중이다. 이 전 의원과 같은 혐의로 기소된 정두언 의원은 구속수사는 면했으나 지난 1월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솔로몬저축은행측으로부터 금감원 검사 무마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은 ‘문고리 권력자’ 김희중 전 청와대 부속실장 역시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기소돼 지난 1월 징역 1년3개월을 선고받고 항소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다.
 
청와대 외의 권력자들로는 박지원 민주당 의원, ‘뇌물검사’ 김광준, 대통령학 권위자 함성득 교수 등도 최근까지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됐다.
 
알선수재는 1966년 2월 제정 특가법에 규정된 이후 법정형 외에 한번도 본문이 개정된 적 없이 유지되고 있다. 제정 특가법에 정해진 알선수재 혐의에 대한 법정형은 5년이하의 징역 또는 5만원 이하의 벌금이었다. 현행 특가법상 법정형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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