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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수의 부동산퍼즐)황희와 한명회 그리고 부동산
2015-06-14 11:35:25 2015-06-14 11:48:54
압구정동의 아파트 3.3㎡당 가격은 3758만원, 문산읍은 554만원. 압구정동 아파트 1채 가격이면 문산읍에서 6채를 사고도 돈이 남습니다. 조선 최고 탐욕스런 인물과 청렴한 인물의 모습이 두 도시에 묘하게 투영돼 있습니다. 무슨 사연일까요?
 
황희. 조선 건국 초기 조선의 안정에 기여한 최장수 재상입니다. 무려 24년간 재상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우리 역사상 최고의 명재상을 뽑을 때 항상 첫 손에 꼽히는 인물이죠. 나이가 들어 더 이상 관직에 머물기 힘들다는 황희정승에게 세종대왕은 궤장(의자와 지팡이)를 주며 곁에 더 있어주길 원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죠.
 
또 그를 평가할 때 항상 따라붙는 것이 청백리라는 말입니다. 자신의 맏아들 낙성식에서 "선비는 청렴해 비가 새는 집안에서 정사를 살펴도 나라 일이 잘 될는지 의문인데 이렇게 호화로운 집은 뇌물이 성행치 않았다고 할 수 없다. 이런 궁궐 같은 집에는 조금도 않아 있기 송구하구나"라며 자리를 떴을 정도입니다.
 
한명회. 조선 최고의 세도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양대군이 단종의 최측근인 황보인과 김종서 등 수십명을 죽이고 정권을 잡은 계유정난의 설계자이기도 하죠. 당대 최고의 지략가였으며, 예종과 성종의 장인으로 당시 권력의 정점에 섰던 인물입니다.
 
사관들이 기록한 졸기(卒記)에는 '성격이 번잡한 것을 좋아하고 과시하기를 기뻐하며, 재물을 탐하고 색을 즐겨 뇌물이 잇달았고, 호사스럽고 부유함이 한 때에 떨쳤다'고 돼 있다는데요. 그가 얼마나 큰 부와 권력을 누렸는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조선 역사상 최고의 명재상과 세도가. 너무나도 다른 이 둘은 은퇴 후 갈매기를 벗삼아 만년의 여생을 보내는 같은 꿈을 꿉니다.
 
반구정은 ‘갈매기와 여생을 보내려고 만든 정자’라는 뜻입니다. 1449년 황희가 관직에서 물러나며 경기 파주시 문산에 지었습니다. 압구정은 갈매기와 친하게 지내는 정자라는 뜻입니다. 한명회가 여생을 보내기 위해 자신의 호를 이름 붙여 만들었습니다. 1963년까지 경기 광주시 언주면에 속해 있었으나 서울 성동구 신사동으로 편입, 1975년부터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으로 불리게 됐죠.
 
갈매기와 함께 하려했던 공통점을 빼면 두 정자는 서로 너무 다른 각각의 주인과 닮아있습니다.
 
한명회로부터 시작된 압구정동.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도시죠. 부와 권력의 정점이었습니다. 지금은 조금 약해졌지만 여전히 사치와 명품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곳입니다. 1970년대 영동(강남) 개발의 시발점이었으며, 한 나라의 유행이 이곳에서 시작됐습니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대한민국의 주거 트렌드를 바꿨다고 평가받습니다. 지금의 압구정동에 한명회의 흔적은 조그마한 비석과 안내판으로만 남아있습니다.
 
반면, 반구정은 황희를 빼고는 얘기할 수 없는 곳입니다. 조선 명재상 황희의 기운을 얻기 위한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죠. 반구정 옆에는 황희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영당이 있죠. 경기도기념물 제29호로 담백하고 청아한 분위기가 황희를 닮아있습니다. 반구정을 안고 있는 문산은 부와는 거리가 조금 있습니다. 파주 내에서도 집값이 가장 싼 곳 중 하나입니다.
 
한명회와 황희. 압구정(서울 강남)과 반구정(경기 문산). 이미지가 오버랩됩니다. 
  
한승수 기자 hans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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