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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세상의 끝까지 21일>
2015-11-11 18:13:37 2015-11-11 18:13:37
부모님 모두 환갑을 바라보고 계신다. 나이에 숫자만 더해지는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두 분을 보니 꽤나 주름이 많아지셨다. 부모님의 노화에 이런저런 고민에 빠지는데 그러다보면 죽음에까지 생각이 이어진다. 부모님의 죽음하면 으레 장례를 어떻게 치러야 할지를 떠오르겠지만, 그보다 ‘우리 부모님은 어떻게 떠나실까’라는 궁금증이 먼저 든다. 이렇게 적으니 좀 격하다. 하지만 내가 알고 싶은 ‘어떻게’는 원인이 아닌 인생을 매듭짓는 각자의 방법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죽을까. 언제 죽음이 다가올지 모르는데 어떻게 죽을까 라니, 전혀 예측이 가질 않는다. 대신에 죽음과 관련해 흔히 듣던 질문 하나를 떠올려본다. 바로 ‘지구 멸망을 앞두고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예전이었으면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죽을 거야” 라고 곧잘 말했겠지만,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대답하기가 망설여진다.
 
 
사진/바람아시아
 
해가 진 저녁, 도지와 도지의 아내는 차 안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라디오 뉴스를 듣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구를 향해 달려오는 소행성을 막기 위해 발사한 우주선이 출발 도중 폭발했다는 내용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어 앵커는 소행성과의 충돌까지 정확히 21일 남았다는 말로 인류의 마지막을 예고한다. 도지의 아내는 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차문을 열고 뛰쳐나간다. 떠나는 그녀를 도지는 바라만 볼 뿐이다.
 
 
잠깐의 가출이라 여겼지만 아내는 돌아오지 않는다. 금세 소문이 퍼졌는지 어느 날 찾아간 친구의 파티에서 친구의 아내가 그를 위로한다. 그러면서 혼자 외롭게 죽을 순 없다며 도지에게 새로운 여자를 소개시켜 주려 하지만, 도지는 그녀의 제안에 불편해한다. 떠난 아내 대신 자신과 함께 세상의 끝을 맞이할 사람을 찾기 위해 의미 없는 만남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친구의 아내는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되묻는다. 대부분의 사람들 또한 그녀와 같은 생각인가보다. 세상의 끝까지 21일이라는 예고에 사람들은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고, 더 이상 누리지 못할 것들을 챙기기 바쁘다. 그러는 한편 일찍이 자살을 택한 사람도 있는데, 그중 몇몇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두려워 자신을 대신 죽일 암살자를 고용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보니 도지만 빼고 다들 삶을 정리하는 방법을 정한 듯하다. 우연히 마주친 이웃 페니에게 ‘앞으로 무엇을 하며 보낼 것이냐’라는 질문을 받자 도지는 머뭇거린다. 다른 사람들처럼 내일이 없이 남은 시간을 보내다가 죽고 싶진 않고, 그렇다고 뾰족하니 떠오르는 법이 있지도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도지는 자신에게 무엇을 하다 죽을 것이냐 물었던 그녀로부터 답을 얻는다.
 
 
 
사진/바람아시아
 
계기는 이웃 페니에게 잘못 전달된 자신의 우편물들을 돌려받게 되면서 시작된다. 아마 페니를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도지의 손에 절대 들어오지 못했을 우편들 속에서, 그는 첫사랑이 보내온 편지를 발견한다. 조금만 더 일찍 이 편지를 봤더라면 하는 아쉬움에 도지는 페니에게 불같이 화를 낸다. 페니는 미안한 마음에 도지의 첫사랑을 찾아 떠나자고 얘기한다. 어차피 페니 그녀도 가족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는 비행기를 찾아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다. 도지 또한 그녀를 돕겠다며 길을 나선다. 
 
두 사람이 함께 떠나기 위해 차를 얻어 타는 장면을 보면서, 도지와 그의 첫사랑의 재회가 기대되기 시작한다. 만약에 다시 만난다면 영화는 또 어떤 전개를 이끌어낼까. 영화 초반서부터 내내 우울해 보이는 그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기대감은 잠시일 뿐, 어느새 여행 중 도지와 페니가 나누는 대화에 빠져들게 된다. 도지는 자신의 첫사랑과 떠난 아내에 대해, 페니는 자신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페니는 도지와 마찬가지로 이제껏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한 이유를 돌이켜보고, 도지는 어린 시절 가족을 두고 떠나버린 아버지를 떠올린다. 마치 퍼즐을 맞추어가며 잃어버린 퍼즐조각의 빈자리를 확인하듯, 두 사람은 자신의 삶 속에서 놓치고 있던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빈 조각을 채우기 위해 원래의 목적을 뒤로 하고, 새로운 동행을 시작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마지막 남은 인생의 동행자가 되어서 말이다.
 
 
 
사진/바람아시아
 
결말은 예고한 대로다. 소행성이 지구를 덮친다. 그렇다고 죽었는지는 모르겠다. 여느 재난영화의 결말과 달리 실낱같은 희망 따윈 없다. 마치 '이래나 저래나 사람이 죽는 것은 다 똑같으니,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죽음을 앞두고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현실은 영화 속 인물들처럼 언제 정확히 죽을지 알 수 없는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생각해보지 말란 법도 없다. 이쯤에서 다시 ‘지구 멸망을 앞두고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떠올려본다. 아직까지 속 시원히 답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답을 얻을만한 방법은 찾았다. 나는 내 삶에 대해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먼저 내 삶을 진득하게 되돌아볼 계기를 만날 수 있을까. 도지와 페니와 같은 인물을 만나면 좋으련만. 욕심이겠거니 싶어 일기를 꺼내든다.
 
 
 
사진/바람아시아
 
최서영 기자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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