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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저유가를 위한 변론
2016-02-22 10:00:00 2016-02-22 10:00:00
요즘 뉴스 경제란을 수놓는 머리글은 단연 '유가'와 '증시'다. 유가가 떨어지면 주가도 떨어진다. 그래서 많은 언론에서 세계 경제가 망가지는 걸 우려하며 유가가 올라주길 간절히 바라는 분위기다.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원유가 한 방울도 나지 않는데 말이다.
 
유가하락과 연관지어 나라 경제를 걱정하는 논리에도 일면 타당성은 있다. 주요 산유국인 중동과 러시아 경제가 둔화되면 우리나라 수출에도 비상이 걸리고, 유전 개발이 위축되면 우리나라 중공업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그렇다면 유가가 60달러대로 상승하면 세계 경제나 우리 경제가 지금보다 나아질까. 정답은 '아니다'다. 반대로 세계 경제가 좋아지면 유가는 60달러로 상승할 수 있다.
 
여기서 사람들이 헷갈리는 듯하다. 사실 유가와 주가의 방향성이 같이 나타나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증시에서 유가는 경기둔화의 원인이 아니라 '신호'로 해석된다. 석유는 제품을 만들기 위한 원재료다. 소비자의 주머니 사정이 안 좋으면 제품 소비가 줄고 원재료 수요도 줄어 원재료 값도 하락하기 마련이다. 경제가 나쁜데 원재료 가격이 하락하지 않는다면 소비는 더욱 줄게 된다. 악순환이다.
 
실례로 들어가보자. 2008년 금융위기 직전 유가는 150달러 가까이 폭등했고, 2011년부터 100달러 이상의 고유가가 지속되며 '아랍의 봄'으로 불렸다. 이로 인해 유전 개발에 대한 투자가 폭발적으로 유입됐고,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셰일오일 혁명이다.
 
하지만 이 시기 석유 다소비국인 미국과 유럽의 경제는 금융위기와 재정위기 그늘에서 허덕였다. 개도국 경제로도 그 불씨가 옮겨 붙어 세계 석유수요 부진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2014년 하반기부터 OPEC의 석유공급도 늘어남에 따라 유가 폭락의 막이 오르게 된다. 그리고 2015년 미국 경제가 회복되고 유럽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난 반면 러시아와 중동, 중남미 산유국들의 경제는 궁지에 몰리게 됐다.
 
결국 경제회복을 통한 석유소비의 부양 없이 원유공급 감소로 인해 유가가 상승할 경우 오히려 세계 소비 부진이 가속화된다. 정부의 인위적 경기 부양에만 의존해 저성장하는 호흡기 경제가 장기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저유가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의 회복속도가 두드러지지 않는 것은 지금의 중국 경제와 비교해 설명할 수 있다. 중국의 경기둔화는 과거 고성장기에 과열된 투자가 공급과잉이 되어 현재 잉여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타나는 결과물이다. 석유시장도 마찬가지다. 고유가 때 이뤄진 많은 원유개발 투자와 석유시장으로 유입된 금융자본, 그리고 고유가에 맞춰 조정된 산업구조 등이 이제는 공급과잉의 원인이 되었을 뿐 아니라 비효율적인 산업구조로 전락했다.
 
최근 미국의 경기회복은 우리가 참고할 만하다. 미국은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를 생산했지만 석유 순수입국이라는 특성상 저유가의 부정적 영향보다는 소비개선 등의 긍정적 효과를 더 많이 누렸다. 우리나라가 중동과 러시아로 향하는 수출이 줄어드는 걸 우려하고 있지만 저유가로 경제가 살아날 수 있는 미국, 유럽, 인도 등으로의 수출은 늘 수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정유사들의 실적은 당초 우려와 정반대로 4년래 최고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유가가 하락하면 정제마진이 악화될 것이란 믿음이 이러한 우려를 낳았지만 실상은 아시아 지역의 석유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정제마진이 오히려 좋아졌다. 고통이 심해지면 시야도 흐려지는 법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탓해야 할 대상이 저유가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오세신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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