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선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각 정당에서는 공천 결과가, 언론에서는 여론조사 결과가 공개되는 가운데 기성 정치인에 대한 실망감은 "꼭 투표하자"라는 다짐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구 반대편 미국에서도 대통령선거 후보 경선이 한창이다. 민주당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공화당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민주당)과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공화당) 등 2위 주자의 돌풍도 거세다.
우리가 정치인에게, 지도자에게 기대하는 것은 뭘까. 정치·경제·사회 등 나라 안팎의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하면서 도덕적으로도 훌륭하고 깨끗한 슈퍼히어로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슈퍼히어로답지 않아서 더 특별하고 눈길이 가는 대통령이 있다. 지난해 3월 임기를 마친 호세 무히카, '페페(호세의 애칭)' 우르과이 전 대통령이다.
과거 총을 든 무장 게릴라였던 무히카 전 대통령은 도덕적으로 무결하지 않다. 하지만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누구보다 앞서갔다. 마리화나 시장을 합법화, 낙태 및 동성결혼을 허용, 관타나모 수감자 수용 등 파격적인 정책으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지만 정작 나라 안에서는 야당과 여당 모두의 비난을 샀다. 전용기도 없이 해외 순방을 다니고, 공식 석상에 반바지 차림으로 나타나는 기행도 일삼았다. 그러나 소득 대부분을 기부하고 17평 남짓한 작은 농가에서 소박한 삶을 영위했기에 소비주의를 경계하는 그의 목소리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무히카 전 대통령은 온갖 비난을 받으면서도 퇴임 직전까지 국민 56%의 지지를 받았다.
'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은 무히카 전 대통령의 다양한 면모를 집중 탐구한 책이다. 과거 게릴라 활동 시절부터 대통령이 된 이후 추진한 혁신적인 정책들의 뒷이야기를 풀어낸다. 전문가, 동료, 가족의 의견 등 많은 이야기를 담아 논란 많은 인물에 대해 신중하게 정리했다.
▶전문성 : 현직 기자이자 정치칼럼니스트인 저자가 전직 대통령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풀어냈다. 무히카 전 대통령이 어린 나이 쿠바에 방문해 정치에 눈을 뜨게 된 계기부터 아르헨티나와의 외교적 갈등에 숨은 배경까지 다양한 일화를 펼쳐내면서 한 인물, 한 나라의 정치·외교에 숨은 이야기를 전달한다.
▶대중성 : 호세 무히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남미의 작은 나라 우루과이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다만 그동안 축구와 축구선수 수아레즈 정도로만 알려진 나라였기에 우루과이의 현대사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참신성 : 지난 2014년 무히카 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 후보로 올라오며 그에 대한 기사와 평전 등은 많이 나왔다. 논란 많은 한 인물의 삶을 미화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는 책이다.
|
■
요약
1. 총알과 꽃
총알을 가지고 다니던 게릴라 무히카는 어떻게 꽃을 가꾸며 소비주의를 경고하는 지도자가 됐을까. 다른 대통령과 비교해 무히카는 확실히 별종이다. 그는 획일화된 세상에 반항하는 사상을 옹호한다. 나라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대규모 인프라 공사보다는 인권을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춘 논란거리 많은 법률 통과에 더 힘을 쏟았다.
2. 검소한 삶의 방식
작고 낡은 농가에서 무히카는 직접 토마토소스를 만들고 마테차를 끓여 마시며 살아간다. 대통령 시절에는 매달 받는 월급 29만페소(약 1만달러) 중 87%를 기부했다. 재산으로는 1987년형 폭스바겐 자동차 두 대와 트랙터 석 대, 농기구 등이 전부다.
3. 게릴라 시절
1960년 25살이던 무히카는 쿠바에서 혁명을 목격하며 삶의 전환점을 맞는다. 진보진영 지지자가 된 그는 정치의 필요성을 실감했고 무장조직인 민중해방운동-투파마로스에 가담해 게릴라가 됐다. 1970~1971년, 1972~1985년 두 차례 감옥에 수감됐다. 우루과이의 민주화로 석방된 투파마로스 지도부는 민주적인 투쟁을 결정했고 조직내 중재자 역할을 하던 무히카가 중심이 됐다. 무히카는 하원의원과 상원의원, 농축수산부 장관 등을 거쳐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4. 혁명군에서 대통령으로
대통령이 된 무히카는 "나는 임무를 위탁받았을 뿐"이라며 자신 역시 평범한 국민의 한사람으로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국가의 정치 조직 형태를 존중하겠다고 하며 과거 게릴라 시절과 완전히 선을 그었다. 무히카는 친밀함과 탁월한 소통능력을 바탕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얻었다.
5. 조용한 혁명
무히카는 마리화나 시장을 합법화 하는 실험을 했다. 마리화나를 소비할 수는 있지만 거래하는 것은 불법인 기존 체계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를 두고 국가가 마약을 조장한다는 비난과 혁신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라는 상반된 평가를 동시에 받았다. 그의 실험이 성공적이었는지는 좀 더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밖에도 무히카는 동성결혼과 낙태를 합법화하면서 외면당했던 소수의 인권을 보호했다.
6. 록스타 무히카
무히카는 지난 2012년 리우+20 정상회담에서 소비주의를 비판하는 연설을 하며 전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소비하기 위해 일을 하는 삶에 경종을 울리며 소박한 삶의 가치를 강조했다. 미국의 관타나모 수감자를 수용하고 시리아 난민 아이들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면서 무히카는 또 한 번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7. 예언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무히카 본인은 소비주의를 비판했으나 우루과이는 소비에 빠졌다. 공무원 개혁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교육개혁에도 큰 힘을 쏟았지만 우루과이의 공교육은 오히려 퇴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환경 문제와 아르헨티나와의 갈등 문제 등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8. 혁명은 계속된다
임기 말 무히카는 전세계적인 문제로 눈을 돌리며 세상을 바꾸려는 소명의식을 이어갔다. 미국과 쿠바의 관계 정상화에도 무히카의 도움이 컸다.
■책 속 밑줄 긋기
무히카는 "장님 중에 가장 나쁜 장님은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다"라면서
마약을 하는 사람들은 늘 있다고 강조했다.
…
"외면하지 말자. 당신이 마약을 하지 않고,
또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약을 하지 않고 거래도 하지 않고
마약을 거부하고 역겨워한다는 것을 나도 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상황이 지속되고 더 곪아가고 있다."
"내가 반대하는 것은 낭비다.
에너지를 낭비하고, 인간의 노력을 낭비하고,
삶을 위한 시간을 남겨두지 않는 것 말이다.
나는 검소함이라는 단어를 되찾고 싶다."
그럼에도 우루과이는 많은 부분에서 무히카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별점 ★★★
■연관 책 추천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 | 미겔 앙헬 캄포도니코 지음 | 송병선 김용호 옮김 | 21세기북스 펴냄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