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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마음속엔 오타쿠가 산다
2016-06-17 10:46:01 2016-06-17 10:46:01
“너 오타쿠지?”라는 말을 듣고 기분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안경 낀 여드름 돼지. 집에 틀어 박혀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 히키코모리. 이 정도가 오타쿠에 연상되는 이미지다. 한국에서는 ‘오덕후’ (줄여서 ‘덕후’) 라는 용어가 더 많이 쓰이는데, 최근에는 아이돌 ‘덕후’들의 봉사·기부 활동으로 오타쿠에 대한 이미지는 예전보다 나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일코’ (일반인 코스프레) 하며 본인이 덕후임을 숨기는 사람이 많은 와중에 여기 본인을 오타쿠라고 당당히 소개하는 사람이 있다.
 
인터뷰 시작할게. 반말로 할까, 존댓말로 할까?
반말로 해.
 
자기소개 부탁해.
난 이제 24살이 되는 학생이고, 내 일상은 덕질 하는거야. 덕질 없이는 못 사는 사람? (웃음)
 
덕질이라고 표현했는데, 그럼 본인이 오타쿠라는 뜻이야?
그렇지. 난 오타쿠지.
 
사실 오타쿠라는 단어가 아직까지도 부정적으로 쓰이고 있는데 한 명의 오타쿠로서 어떤 생각이 들어?
오타쿠 이미지가 안 좋아진 계기가 있긴 해. 근데 그것만으로 모든 오타쿠를 부정적으로 보는 건 안 좋은 것 같아. 사실 모든 사람은 오타쿠 기질을 다 하나씩 가지고 있거든. 오타쿠가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의 매니아라는 뜻이니까. 오타쿠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아직 오타쿠에 대한 시각이 좁아서 그런 것 같아.
 
좋은 답변이다. 그러면 지금 어떤 분야를 덕질 중이야?
나는 개그맨 이진호 좋아해.
 
되게 특이하다. 보통 오타쿠라고 하면 애니메이션이나 아이돌이 먼저 생각나는데 말이지. 어떻게 좋아하게 됐어?
맞아. 개그맨 덕질이 엄청 마이너이긴 하지. 좋아하기 시작한 건 재작년 여름부터야. 그 때 휴학 중이라 심심해서 웃긴 동영상 찾아보다가 <코미디 빅리그>의 ‘썸앤쌈’이라는 코너를 보게 됐어. 쌈 커플에서 이진호가 나오는데, 처음 볼 때는 왜 여자를 저렇게 막 대하나 싶어서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어. 근데 계속 보다보니까 은근히 자상한 매력이 있더라고.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면서 좋아하기 시작한 거 같아. 
그 후로 직접 보고 싶어서 <코미디 빅리그> 방청을 신청했는데 계속 떨어졌어. 근데 그 해 8월에 갑자기 이진호가 팬들한테 밥을 사준다고 모임을 열어서 거기에 가게 됐지. 이진호를 실물로 직접 보고 만나서 대화도 나누고 하니까 되게 재밌고 괜찮은 사람인거야. 솔직히 이런 자리 마련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팬들 밥까지 다 사주고. 이 일을 계기로 크게 빠지게 됐어.
 
그렇구나. 그리고 팬카페에서 특별한 지위를 맡고 있다고 들었어.
응. 이진호 공식 팬카페 지기를 맡고 있어. 카페지기가 된 지는 1년이 다 돼가는 데, 작년에는 운영자였어. 그러다가 어느 날 지기 자리가 비게 돼서 그냥 내가 카페지기 자리 맡겠다고 했지. 원래 내가 나서는 성격이 아닌데, 이상하게 덕질에 관련된 일이면 나서게 되는 거 같아. 말도 많아지고.
 
성격까지 바꿔주는 정도면 덕질이 너에게 미치는 영향이 되게 크네.
맞아. 나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쟤가 반장 하겠어?’ 이런 시선 받아왔는데, 이상하게 덕질 하면서 적극적인 성격이 되더라고. 좀 성격이 변한 거 같아. 그리고 원래 집에 있는 거 엄청 좋아하는데, 덕질을 하니까 방청이나 행사 때문에라도 밖을 나가게 되고. 집에만 있으면 엄마한테 등짝 맞고, 피부 안 좋아지고 그러는데 덕질 덕분에 그나마 밖에 나가는 거 같아. (웃음)
 
덕질 하면서 가장 보람이 있을 때는 언제야?
생산할 때?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게 취미여서, 팬아트를 종종 그려. 그리고 움짤(움직이는 짤방) 만들고, 동영상 캡쳐하고, 사진 찍고 보정하고. 덕후는 흔히 소비하는 사람과 생산하는 사람으로 나뉜다고 하잖아. 나는 뭔가 만드는 걸 좋아해서 이것 저것 많이 하는 편이야. 재작년 9월 9일에 첫 방청을 갔었는데 (역사적인 순간이라 기억한다고 한다.) 집에 마침 DSLR 카메라가 있어서 처음으로 이진호 사진을 찍어서 팬카페에 올렸어. 근데 되게 반응이 좋더라고. 일반 번들 렌즈로 찍은 거라 그렇게 좋은 퀄리티도 아닌데 팬들이 좋아해주니까 나도 엄청 기뻤지.
 
정말 여러 가지 활동을 하네. 근데 지금 4학년이잖아. 이제 슬슬 취업 준비를 해야 할 거 같은데, 그러다보면 덕질할 시간이 부족해 질 거 같지는 않아?
맞아. 내가 생각해도 더 바빠지면 방청도 많이 못갈 거 같고. 근데 핸드폰으로 팬카페 들어가는 건 몇 초 안 걸리니까 웬만해선 평소 하던 대로 다 할거 같은데? 취업준비생으로서 덕질의 비율이 줄어든다면 방청을 못 가는 것 뿐? 별 다를 건 없을 거 같아.
그리고 취업 준비 하면서도 덕질은 계속 할 거 같은 이유가 이게 내 유일한 숨통구거든. 사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덕질이 아니더라도, 애니메이션, 자동차, 영화, 음악 등 여러 분야에 대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것도 덕질이라고 생각해. 모든 사람이 다들 하나씩 자기의 취미 생활을 가지고 있으면 행복하잖아. 그 일을 할 때만이라도 숨통이 트이고 즐거우니까. 그래서 난 덕질이 좋다고 생각해. 
 
듣다보니 취미 생활이나 덕질이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혹시 진로는 어느 쪽으로 생각중이야?
과는 미디어영상학과인데, 전공과 관련 없이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 아직 미래가 불투명하긴 하지만, 내가 만든 캐릭터로 팬시상품을 내는 게 내 꿈이야. 근데 아직 어떻게 할 지 감이 잘 안 오긴 해. 사실 난 그림 그릴 자격이 없는 사람이거든. 너무 게을러서. (웃음) 그래도 덕질 덕분에 그림을 그리게 되니까 다행인 거 같아. 물론 억지로가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그리지. 그리다보면 즐거워. 한 번 시작하면 책상 앞에 7~8시간 앉아서 그리거든. 그런 면에서 덕질이 내가 정기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도와주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지. 실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고. 
 
사진/바람아시아
 
 
덕질이 정말 너에게 있어서 의미가 깊구나. 그럼 이쯤에서 상투적인 질문 하나 해볼게. 본인에게 덕질이란?
화려한 수식을 붙이기보다 그냥 ‘일상’ 이라고 표현하고 싶어. 난 초등학교 때부터  쭉 덕질을 하면서 살아왔거든. 내가 초등학교 때 한글을 다 못 떼었는데 드래곤볼 만화책을 보면서 한글을 떼고, 또 중학교 때는 만화책이랑 판타지 소설을 진짜 많이 읽었지. 하루에 30권정도? 내가 대학을 논술로 갔거든. 어릴 때부터 만화책을 읽어서 그런지 언어 실력에 도움이 된 거 같아. 지금 팬카페 지기 하는 것도 도움이 돼. 공지를 쓰면 쓸수록 논리적으로 글 쓰는 방법이 뭔지 알아가고 있거든. 결론적으로 덕질은 나한테 있어서 일상이자 내 삶에 큰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 
 
잘 알겠어. 이제 인터뷰 거의 마무리 단계인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음. 이 인터뷰 되게 재밌다. 왜냐하면 이진호 얘기를 하면, 친구들이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거든. 나도 이해는 가지. 관심 없는 거에 대해 얘기하면 다 지루하잖아. 그래서 나는 다른 친구들한테 이진호 얘기 잘 안 해. 근데 이 인터뷰 하니까 이진호 얘기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아. 내가 워낙 마이너한 덕질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주변에 얘기 나눌 사람이 없어서 힘들었는데 이 인터뷰 통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되게 행복해 지금 (웃음).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오타쿠가 진짜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에 갇혀있지 말고 한 분야의 매니아로 인정이 되었으면, 그런 방향으로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어. 오타쿠란 결국 어느 한 분야에 대한 전문가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거든. 
 
사진/바람아시아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그녀는 한마디 덧붙였다. ‘오타쿠라고 하면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고 싫다고들 하는데, 그러는 게 뭐가 나빠? 좋아하는 걸 보면 손이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가빠지는 건 누구나 그런 거잖아. 다들 자기 안에 있는 오타쿠 기질을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녀의 말마따나 누구나 자기 안에 한 명의 오타쿠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덕질’을 삶의 원동력이자 숨통으로 활용해 나가는 그녀를 보며 나도 하나쯤 ‘덕질’할만한 것을 찾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주현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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