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피플)"검찰의 교만함이 스스로 최대 위기 불렀다"
엘리트주의 빠져 시대 못 읽어…기수·서열·실적주의 해결 못하면 개혁 안돼
‘우병우·이석수’ 사건은 '검사스러운' 사건…어떤 형태든 상처 남길 것
2016-08-30 06:00:00 2016-12-04 09:04:43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지금 검찰의 위기는 결국 검찰의 교만이 부른 것입니다.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한 결과입니다."
 
박영수(64·사법연수원 10기) 전 서울고검장이 검찰을 매섭게 비판했다. 역대 어느 국면보다 위기로 몰려있는 검찰에 대한 일침이다. 그는 국민 앞에 겸손하지 못한 검찰, 자기 감정이나 욕심을 이겨내지 못한 검찰, 엘리트 의식에 절어 있는 검찰이 지금의 화를 불렀다고 강하게 지적했다.
박 전 고검장의 이 같은 질타는 검찰에 대한 그의 애착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아직도 검찰을 ‘친정’이라고 부른다. 올해로 법조생활 만 33년, 그중 24년을 검사로 살았다. 여러 대형 부패 사건들을 처리하면서 '전설의 칼잡이'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검찰개혁에 대해서도 상당한 일가견이 있다. ‘검찰개혁 태동기’인 김영삼 정부 대검 검찰연구관 시절 '21세기 검찰개혁 기획단'에서 활동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청와대 사정비서관을 역임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고민과 필요성을 직접 경험했다.
그는 검찰조직 문화의 ‘3대 악’으로 기수와 서열, 평가제일 주의를 지목했다. 박 전 고검장을 만나 현재의 검찰을 진단했다.
 
박영수 전 서울고검장(법무법인 '강남' 변호사. 사진/최기철 기자)
 
검찰의 총체적 위기다. 왜 이렇게까지 됐다고 보는가.
 
과거에는 정치적 중립성이 검찰의 가장 큰 숙제였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사건에 비춰볼 때에는 '진경준 사건' 등 이른바 검찰의 부패, 검찰의 청렴성 문제가 국민 사이에 크게 대두됐다.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게 되면 검찰은 설 땅이 없다. 여기에 부패 문제까지 드러났다. 검사가 이렇게 부패했을 줄 국민이 상상이나 했었겠나.
추상적 얘기인지는 모르지만 두가지 원인이 있다. 검찰이 국민 앞에서 겸손하지 못했다. 사건 처리에서도 겸손하지 못했고 각종 결정에 대해서도 겸손하지 못했다. 결국 검찰의 교만이 문제가 됐다. 둘째는 검사가 공사생활에 극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앞의 겸손과도 통할 수 있지만 검찰은 아직도 시대변화를 읽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현재 검찰 위기의 원인이다.
 
'홍만표·진경준 사건'은 개인적 일탈인가, 조직의 문제인가.
 
이들 사건을 검찰의 조직 문화적 차원에서 접근하거나 법조계 전체로 확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불안감만 더 초래하게 된다. 어느 조직이든 어두운 면이 있다. 검찰 조직이 비대해지고 확대되다 보니까 어두운 면이 자꾸 드러나고 있다.
굳이 구별하자면 개인차원의 문제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재야 법조계의 고질병인 브로커 문제는 법조계에서 가장 오래된 암적 존재이다. 그러나 상당수 변호사는 브로커에 연루되지 않았다. 일부 자기 욕심에 치우친 변호사들이 문제 된다. 같은 이치로 검찰 간부들의 비리 문제도 개인적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조직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문제이기 때문에 해결할 수 있다. 검사 개개인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국민에게 봉사하겠다는 자세를 제대로 갖춰야 한다. 그래야만 교만도 없어지고 극기가 가능한 자제된 생활을 할 수 있다. 이 전에 검사들 개개인의 대오각성이 필요하다. 검찰의 자정작용 능력은 살아있다. 
 
'공수처' 도입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크다.
 
도입 의견에 찬성한다. 공수처 반대 논리로 '옥상옥'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있을 때 가능한 논리다. 대검 중수부는 전국적 수사통합조직이다. 그런 중수부를 폐지할 때에는 대안 마련이 반드시 필요했다. 전국적 단위 사건, 대규모 기업비리 사건, 국회의원이나 고위 정부관료의 독직사범 사건 등에 대한 수사는 지검 특수부 수사로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중수부를 폐지하면서 대안을 전혀 마련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기형적 조직이 계속 생겨났다. 중수부를 부활시키지 않을 바에야 공수처를 도입해서 과거 중수부 정도의 힘을 줘야 한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시비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으로도 공수처를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이 나의 일관된 주장이다. 사건에 맞춰 수사팀을 만드는 변칙적 운용은 바람직하지 않다. 
 
'김홍영 검사 사망사건'으로 조직 문화에 대한 우려가 크다.
 
검찰은 기수에 갇혀있고, 서열에 묶여있고. 평가에 묻혀있는 폐쇄적인 조직이다. 이것이 검찰조직의 어두운 점이다. 검사들이 기수와 서열, 실적에 묶여있다 보니까 상의하달 문화에 파묻히게 된다. 수사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데 어떻게 실적으로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피해자는 물론이고 수사 대상인 국민이 오히려 고마워하고 감사해 하는,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수사가 진짜 실적인데, 그것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 이러다 보니 검사들 여유가 없다. 기수·서열·실적 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사와 교육 시스템의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인사는 다양한 시각과 기준에서 평가가 이뤄져야 하고, 교육은 진지하고 지속적인 인성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검사가 판단을 한번 잘못하면 한 사람의 인생이 망가진다.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검사들은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는가. 없다. 막연한 정의감, 자신만의 정의감으로 수사하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줄 잘 서면 출세하는 문화가 생기는 것이다. 
인성교육은 의식을 바꿔주는 것이다. '교만 모드'에서 '겸손 모드'로 바꿔야 한다. 예를 들어 법무연수원 연수시 진정 자기가 누구고, 검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런 것을 자꾸 고민하도록 해줘야 한다. 여러 선배들의 경험담, 심리학자, 성직자 등 다양한 분들을 모셔서 인성에 대한 부분을 자극해야 한다. 그런 시간을 줘야 한다. 나도 검사를 그만두고 나니까 책 볼 시간이 생겼다. 현직에 있을 때는 주어진 일만 기계적으로 했다.
 
조직 내 오랜 숙제로, 형사부 검사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문제다. 
 
실적우선주의 폐단 때문에 상대적으로 '특수·공안부'에 비해 평가를 잘 못 받는다. 그래서 형사부 검사들이 가고 싶은 곳으로 못 가는 것이 사실이다. 인사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평가와 더불어서 형사부 검사가 대검 연구관이나 법무부로 가서 경험을 쌓고 싶다면 이를 지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그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 제도개혁이고 인사 개편이다. 
지금의 검사 평가는 여러 항목이 있지만, 결국은 '특수·공안부' 검사들의 실적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실적이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검사들이 다양한 보직을 갖도록 해줘야 한다. 반면, 정말 특수수사나 공안수사를 하고 싶어 하는 검사들은 전문화를 시켜 평생 검사로 일하게 해 주는 것도 방법이다. 보직 기회를 평등하고 균등하게 줘야 한다.
 
검찰개혁추진단이 구성됐다. 그러나 셀프개혁이라는 지적이 있다.
 
저도 과거 21세기 검찰개혁단 팀장으로 일한 적이 있다. 그래서 개혁문제는 누구보다도 고민도 해보고 관여도 해봤다. 솔직히 말하면 셀프 개혁은 한계가 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동안 오랫동안 수많은 개혁팀들이 나와서 수많은 대안들이 나와 있다. 어떻게 선택하고 결정할 것인가의 문제만 남아있는 상태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결정을 못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바뀌는 것이 없다. 이것이 셀프개혁의 한계다. 국민도 신뢰를 안 한다.
대학교수, 시민단체 등 민간이 참여해서 국민의 생각이 반영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그 시스템의 결정에 대해 규범적으로 구속력을 줘야 한다. 검찰총장이 무시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개혁단 구성은 조금 성급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김후곤 대검찰청 대변인이 지난달 29일 대검 기자실에서 검찰개혁단 구성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뉴스1
 
 
검찰개혁안으로 검사장 선출제 도입이 거론된다.
 
검찰은 기본적으로 결재시스템이다. 상명하복의 구조를 띠게 된다. 그런 본질을 고려하지 않고 검사장 선출제를 도입 한다면 어느 부장이 후배들을 제대로 지도할 수 있겠나. 검사를 해보지 않은 분들의 단견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검사장승진심사위원회를 둘 필요는 있다. 평검사·시민·변호사 등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본다. 
 
김수남 총장의 특별수사팀 운영 결정을 어떻게 평가하나.
 
과거 대검 중수부가 없는 현 상태에서는 매우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의 성질이나 사회적 파급성을 고려했을 때 통상적 수사시스템에 맡겨서는 안 된다. 반 독립적이고, 그러면서도 수사역량을 가진 팀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수사결과에 대해 수긍한다. 
 
'우병우·이석수 사건'을 어떻게 보는가.
 
참 어려운 질문이다. 지인 중 누군가 얘기했지만 국민들이 봤을 때는 참 '검사스러운 사건'이다. 개인적으로는 씁쓸한 사건이다. 생기지 말아야 할 사건이다. 처리 결과가 어떻든 간 검찰 조직에 대한 큰 상처를 남길 것이다. 특히 우 수석의 경우 여러 가지 얘깃거리를 낳을 사건이다. '진경준 사건'처럼 비화될까 우려된다.
 
정치적 중립성은 어떻게 확보해야 한다고 보는가.
 
참 어려운 얘기이다. 과연 검찰이 정치적 중립성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을까에 대해 먼저 생각해야 한다. 검찰은 수사기관이다. 수사기관은 증거를 찾는 기관이다. 제기된 모든 의혹에 대해 증거로 완전히 객관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거기서 나오는 한계 때문에 과거에 검찰이 오해를 많이 받았다. "수사를 제대로 했나", "일부러 저런 결정을 했나"하는 오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검사는 그렇지 않다. 증거를 외면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단 증거를 찾는 과정에서 일부 미숙했거나 국민 눈에 만족하지 못할 부분이 있겠지만, 수사에 임하는 검사들의 자세와 각오의 문제다.
결론적으로 검사들이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국민들 눈높이에는 미흡하다. 검찰로서는 그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반성해야 한다. 고쳐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 '윤갑근 특별수사팀'의 수사가 매우 중요하다.
 
검찰 출신의 민정라인이 중립성을 해하는 것은 아닌가.
 
저도 청와대 사정비서관으로 근무했었다. 민정의 기능은 크게 세가지이다. 사정과 법률, 민심을 살피는 순수한 의미의 민정이다. 이 중 사정과 법률은 법조인, 특히 검사 출신들이 가장 잘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이 민정 자원으로 검찰을 선호한다.
대한민국이 검찰이라는 조직 때문에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검찰의 기능을 너무 확대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검찰 인사에 민정이 관여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본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잘못된 것 같다. 
물론, 검찰이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수 있도록 민정이 간섭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제도적으로 이렇게 하면 된다. 우선 법조인이든 아니든, 현직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오는 것은 막아야 한다. 둘째 한번 민정이나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사람은 절대로 현직에 복귀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 두 가지만 철저히 지켜도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우려를 줄일 수 있다.
 
인사권 개입이 계속 문제된다면, 검사 인사에서 만큼은 민정을 배제시키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한다면, 대통령이 이것이 제대로 된 인사인지 믿을 수 있겠는가. 대통령이 제대로 된 인사를 하도록 보좌하기 위해서는 그 조직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법적 인사 시스템상, 장관이 똑바로 된 사람이면 민정수석이 못 이긴다. 인사에 대해 민정수석이 부당하게간섭을 할 경우 장관은 직을 내놔야 한다. 과거에도 그런 예가 있었다. 제도는 길을 닦아놓을 뿐이고 그 길 위를 걸으며 발을 맞추는 주체는 사람이다. 결국 제도 보다는 운영의 문제다.
 
앞으로 검찰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이제는 수사검찰이 아니라 인권검찰이 되어야 한다. 대부분 수사 영역인 일반범죄는 경찰에게 주고 경찰 수사단계에서 인권이 침해당하는 국민은 없는지를 살피는 검찰이 돼야 한다. 지금처럼 '경찰이 수사를 빠뜨리는 것은 없나' 이런 것을 찾는 검찰이 돼서는 안 된다. 경찰을 못 믿겠다며 직접 수사당사자가 돼서도 안 된다. 물론 정말 중요한 국가적 범죄에 대해서는 검찰이 수사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직접 수사기능을 남겨둬야 한다. 그 외에는 가급적 직접 수사기능을 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결국 국민을 내실 있게 보호하자는 것인데, 이것은 권한의 문제가 아니다. 검찰의 권한을 경찰에 내주는 것이 아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