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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이주민 여성은 문화를 이해하는 통·번역가의 훌륭한 자원"
(사회적기업가를말하다)이현선 온아시아 대표
"다문화는 조화…편견 없는 존중의 사회를 꿈꾼다"
2017-02-02 14:24:00 2017-02-02 14:31:30
대한민국도 단일민족 시대가 저물고 다민족 시대를 맞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다문화가정 수는 20만 가구에 달한다. 우리나라 가정 100곳 중 2곳이 다문화가정인 셈이다. 오는 2050년에는 다문화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인구의 약 21%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다문화사회에 대한 준비는 미흡한 실정이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인식 개선이나 제도적 장치도 여전히 부족하다. 특히 이주민 여성들의 어려움은 더 크다.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남성과 외국 여성 간 결혼 비중이 70%가량으로, 이주민 여성의 수가 절대적으로 많다. 취업, 자녀양육·교육, 의사소통, 문화·풍습 등의 차이는 이들에겐 장벽이다. 소셜벤처인 '온아시아'는 이주민 여성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해 통역, 번역가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국내 청소년을 대상으로 다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해, 문화적 차이를 좁혀 차별 없는 사회를 조성하는 데 힘쓰고 있다. 이현선 온아시아 대표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뉴스토마토 임효정기자] 똑 부러지면서도 따뜻했고, 활기차면서도 편안했다. 이현선 온아시아 대표의 첫인상이다. 이 대표는 3년 전까지만 해도 대기업에서 중국어 통역을 맡아온 통역사였다. 8년간 통역사로 일해온 그가 소셜벤처를 설립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중국어를 전공한 데다, 통역사로 일하면서 주변에서 이주 여성들을 자주 만나게 됐습니다. 대부분 주부였고, 사회에서 소속감을 가지고 일하길 원하는 분들이 많았죠. 이주민 여성들의 최대 무기인 언어능력을 그냥 썩히기에는 너무 아깝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번역 일을 함께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치 않게 지인 소개로 '소셜벤처 경연대회'에 참가하게 됐다. 소셜벤처 경연대회는 고용노동부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주최하는 대회로, 아이디어 발굴 차원에서 지난 2009년부터 시작됐다. 2014년 이 대표는 경연대회에 참가해 이주민 여성과 관련한 창업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심사과정을 통과되면서 자연스럽게 지금의 온아시아를 설립했다.
 
흔히 '창업은 도전'이라고 말하지만 이 대표에게 창업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주변에서 걱정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걱정보다는 즐거움이 컸어요. 통역사로 일할 때와 달리 쉬는 날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좋아하는 일이니 더 힘이 납니다."
 
이현선 온아시아 대표가 중국어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온아시아
 
"온 세상을 따뜻하게 켜자"
 
온아시아는 이주민 여성들을 대상으로 통·번역 교육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동시에, 이들을 통·번역사로 양성해 기업체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2015년 개인사업자로 시작해 지난해에는 법인으로 전환했고, 고용노동부로부터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았다.
 
온아시아의 '온'에는 세 가지 의미가 담겼다. 온 세상을 뜻하는 '온', 따뜻할 '溫', 켜다의 'ON'으로, '온 세상을 따뜻하게 켜자'는 뜻을 품었다. "언어는 객관적인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서 사람과 사람, 기업과 기업의 연결고리라고 생각해요. 온아시아가 가진 미션으로 아시아를 따뜻하게 밝히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따뜻함이 넘치는 그의 바람이다.
 
온아시아는 이주민 여성들을 대상으로 비즈니스 통역 교육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사진/온아시아
 
온아시아의 사업영역은 크게 두 축으로 구분된다. 우선 이주민 여성들에게 비즈니스 통·번역 교육을 제공한다. 설립 당시인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두 차례 교육이 진행됐으며, 총 130여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교육은 한국외대 교수를 초빙해 이뤄지며, 통역사의 기본매너, 핵심 단어를 메모하는 ‘노트 테이킹’ 등 통역 스킬을 교육한다. 이주민 여성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한국어 발음에 대한 교육도 병행된다. 이 대표는 "이주민 여성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이들이 가장 어려워 하는 부분이 '발음'이었다"며 "이 부분은 아나운서를 초빙해 전문적인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사업영역은 '일자리 창출'이다. 기업과 이주민 여성을 매칭해 통역사로 일할 수 있도록 중개 역할을 담당한다. 비즈니스 수출 상담회 등 단기 통역이 필요한 기업들이 통역사를 의뢰하면 이주민 여성을 매칭해주는 방식이다. 현재 20여명이 통·번역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해 기업과의 23건의 통역 매칭이 이뤄졌다. 기업으로부터 통역 일자리를 확보하는 것은 철저히 이 대표의 몫이다. 영업에도 이 대표만의 철칙이 있다. 온아시아의 소셜미션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사의 사회적가치를 내세우며 영업하지 않습니다. 이주민 여성들이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다른 통역사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신합니다."
 
외국어 교육이 활발히 이뤄지면서 통역시장도 이미 레드오션이 됐다. 이 시장에서 온아시아만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이주민 여성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누구보다 현지 문화를 잘 알고 있고, 국내를 방문한 해외 바이어와의 소통도 잘 이뤄질 수 있죠. 한국어를 모국어로 통역할 때는 경력이 많은 한국 통역사보다 경쟁력이 더 클 수 있습니다." 이 대표의 확신이었다.
 
또 하나의 미션 '이주민에 대한 편견'
 
우리사회에서 이주민 여성들의 고된 삶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다. 이주민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기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온아시아는 지난해 양천구청과 MOU를 맺고 지역 내 중학교에서 자유학기제 교육을 진행했다. 자유학기제는 중학생들이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 한 학기 동안 자신의 꿈과 끼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목적으로 범정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교육개혁 핵심과제다. 온아시아는 '세계 속의 주인공이 되자'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해 지난해 양천구 중학교 2곳에서 진행했다. 다문화 시대에서 편견 없이 서로가 어울리자는 취지였다. 그의 말대로 다문화는 곧 조화다. 
 
"이제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죠. 문제는 이들에 대한 편견입니다. 서로 어울리기에 앞서 인식을 바꿔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다문화 학생 수는 급격히 늘고 있다. 지난 10년 만에 10배 이상 급증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다문화 학생은 9만9186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학생 중 1.68%를 차지한다.
 
양천구 지역내 한 중학교에서 이주민 여성이 모국의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온아시아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이주민 여성들이 직접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청소년들이 큰 관심을 가졌다. 이는 이주민 여성들이 노력한 결과이기도 했다. "전통 의상을 입고 아이들 앞에 서서 강의를 하고, 간단하게 문화체험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서 아이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유발했죠. 학생들이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올해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이 대표의 목표는 수료생들이 강사로 성장해 또 다른 이주민에게 교육을 제공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다. 목표를 위해 하루하루가 바쁜 그다. 이 대표는 올해 상반기 중 중국어 교재를 출간할 예정이다. 이 교재로 기업체에 이주민 여성이 직접 강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이주민 여성들의 최대 강점인 언어능력을 살려 우리사회에서 자존감을 키울 수 있도록 돕고 싶다"며 "무엇보다 따뜻한 기업으로 성장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관심사를 직업으로 삼고, 이어 기업을 세워 나눔을 실천하는 그의 본질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존중'이었다.  
 
임효정 기자 emy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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