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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미증유의 '축생살육'을 보면서
2017-02-08 10:01:18 2017-02-08 10:01:18
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겸임교수
지금 대한민국은 '조류 인플루엔자(AI)'의 침공에 당면해 수천만마리의 가축들이 살처분당하는 사태를 겪고 있다. 현재의 지식과 경험 수준에서 집단 살처분이 최상의 대책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살육작전임이 틀림없다. 인플루엔자에 걸렸다고 조류들이 모두 죽지는 않을 것인데, 다른 개체들에 전염시킬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로 모두 죽임을 당한다. 그중에는 감염되지 않은 개체들도 있고, 설사 감염되었더라도 죽지 않고 살아남을 개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방역을 이유로 모두 살처분을 당한다.
 
4차 산업혁명을 추동하는 첨단과학을 앞에 두고 야만의 시절에도 없었던 잔인함을 본다.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할 때에도 그랬다. 열등한 유대인들의 피가 게르만(아리안)족의 순수한 피를 오염시켜 독일 제국을 병들게 만든다고 선전·선동했다. 그래서 나치는 미국에서 배워온 우생학에 기초해 인종청소 차원에서 "모든 유대인을 제거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학살을 감행했고, 대부분의 독일인들이 이에 동조했다. 조류 인플루엔자도 인수 공통 전염병이라는 경고 앞에 누가 항거하겠는가. 만약 12지신을 수호신이라고 전제한다면, 조류(닭띠)들의 수호신이 요즈음 인류의 방역학에 동의할 것인지 궁금하다.
 
닭이나 돼지를 키워보면, 이들도 주인과 교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릴 때의 기억을 되새겨보면 나의 외할머니는 키우던 닭들에게 '뚱순이', '얌전이', '드센녀' 등의 이름을 일일이 붙여줬다. 그중에 뚱순이가 알을 제일 잘 낳았다. 모이를 줄 때 "구구~구" 하고 소리를 내면 닭들이 앞다퉈 모여들었다. 외할머니는 닭들에게 늘 뭐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닭고기를 잘 못 먹었다. 지금도 닭고기를 보면 집 마당에서 놀던 닭들이 생각난다. 파블로프의 조건반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대목이다.
 
그런가 하면 외갓집에서 키우던 돼지가 팔려나갈 때 광경은 지금도 생생하다. 녀석은 체격이 매우 실했고, 눈썹이 특히 예뻤다. 가끔 답답한 돼지우리에서 나오게 해 운동을 시키기도 했고 빗질도 해주고 나면 윤기가 반지르르 돌았다. 돼지 장수에게 팔려나갈 때 우리에서 내몰아 이리저리 가도록 했지만 녀석은 자꾸 제 우리 있는 곳으로 되돌아서고는 했다. 할 수 없이 외할머니가 뭐라고 달래면서 겨우 트럭에 타게 하였다. 주인을 떠나 팔려다간다는 상심 탓이었을까. 그후 다시는 돼지를 키우지 않았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닥치더니 '엎친 데 덮친다'는 말처럼 이제는 또 구제역이 몰아친다. 이제 또 얼마나 많은 축생들이 도살당할까. 지정 폐기물처리장의 침출수는 걱정하면서 대량살육으로 인한 토양과 지하수의 오염은 걱정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물론 살처분은 농림축산식품부의 일이고 토양과 지하수 오염방지는 환경부의 일이니 서로 관할이 다르다고 할 게 뻔하다. 살처분하는 쪽이나 오염을 방지하는 쪽이나 모두 일부의 책임만 지기 때문에 인과관계와 책임도 단절된다. 어느 측에 항의해야 문제의 근원을 해결할 수 있을까 망설여진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형국이 될지 모르겠지만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한마디 덧붙이자면 천문학적인 숫자의 살처분이라는 현실에서 과연 기업적 축산이 우리 토양에 맞는 일인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전통 농업과 농가에서는 축산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고기를 안 먹은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농사에 필요한 노동력을 얻고 음식물 찌꺼기 재활용을 위해 가축들을 키웠다. 닭도 고기가 목적이 아니라 달걀을 얻기 위해 키웠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 바람을 타고 축산이라는 개념이 확산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영국이나 호주처럼 초지를 조성하기에 적합한 기후가 아니었고, 동물들을 방목하는 데 필요한 농장도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량 축산과는 개념이 다소 달랐다. 그러다 보니 인공사료와 밀식(密植) 사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저항력이 강한 가축들을 기대하는 것은 과욕이었다.
 
축산기업들이 배출하는 가축분뇨들은 악취를 내뿜고 토양·지하수의 오염원이기 때문에 엄격하게 규제되고 있다. 하지만 분뇨의 재활용이나 적정처리가 종종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폭설이나 폭우 또는 장마 때에는 불가항력적으로 오염정화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다. 오염물질은 평소 잘 관리되더라도 화재와 마찬가지로 단 한 차례의 사고라도 일어나면 주변을 순식간에 망가뜨린다. 축생들의 복지와 자원순환 시스템을 구비한 축산기업들도 있지만 아슬아슬한 손익의 경계에서 경영상의 애로를 겪는 한계기업들도 있다. 축생살육이라는 되풀이되는 대란 앞에서 축산의 미래와 축생의 비애를 다시 걱정한다.
 
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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