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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82년생 김지영들'의 우울한 대한민국
2017-04-07 06:00:00 2017-04-07 06:00:00
1982년에 태어난 여자 이름중 김지영이 가장 많아 제목이 됐다는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보편적인 한국 여성의 삶을 평범하게 그려낸 책이다. 김지영씨와 동갑인 필자도 '폭풍공감'과 '감정이입'을 번갈아 해가며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다만 김지영씨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아직 자녀를 두지 않았고, 필자에게 닥쳐올 그 일들이 두렵기만 하다는 점 일 것이다.
 
"김지영씨는 지원이를 어린이집에 데리고 나와 유모차에 태웠다.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날씨가 좋아서 계속 걸었다. 공원 맞은편 건물 1층에 카페가 새로 생겨 할인 행사를 하고 있었다. 김지영 씨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 들고 공원 벤치에 앉았다. 바로 옆 벤치에는 서른 전후로 보이는 직장인들이 김지영 씨와 같은 카페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얼마나 피곤하고 답답하고 힘든지 알면서도 웬지 부러워 한참 그들을 쳐다보았다. 간간이 그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나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고 싶다', '맘충 팔자가 상팔자야'"
 
고백하건대, 나도 그랬다. 1년에 한두어번 있을까 말까하는 평일에 쉬게돼 낮시간에 카페에 가게되면 새삼 부러워 "팔자 좋은 아줌마들"이라고 말하곤 했다.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그 커피 1500원이었어. 나 1500원짜리 커피 한 잔 마실 자격도 없어?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고백하건대, 너무 미안했다. 한국 사회에서 일·가정 양립이 얼마나 어려운지 뻔히 알면서 같은 여자로서 그들을 '편견'갖고 바라본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정부가 아무리 대책을 내놔도 출산율은 뚝뚝 떨어지고, 경력단절여성(경단녀)는 많아지고 있는게 현실이다. 장시간 근로, 사내눈치 등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려운 직장문화를 바꾸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고용정책을 만들어내는 공무원 조차도 문화와 인식을 바꾸는게 쉽지 않다고 토로할까.
 
실제 최근 통계청이 처음으로 기혼여성의 경력단절 통계를 내놨는데 20세 이상 기혼여성 중 결혼 전 직장 경험이 있는 여성은 928만9000명이다. 이 중 경력 단절 경험 여성은 44%인 696만명이나 된다. 출산을 꺼리는 여성도 늘었다. 아직 자녀가 없는 가임기(15~49세) 기혼 여성의 평균 추가계획자녀 수가 1명이 채 되지 않았다.
 
독일도 우리와 같은 어려움을 겪었다. 1994년 독일 출산율은 1.24명으로 최저수준을 보였다. 장시간 근로, 보육 및 방과후돌봄 서비스 부족, 육아로 인한 여성의 일자리 포기 등의 문제로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이다. 이에 독일정부는 2007년 육아휴직 수당을 인상하고, 2015년에는 육아휴직을 파트타임근로와 병행하도록 하고, 아버지 육아휴직을 촉진하는 개혁조치를 실행했다.
 
이결과 출산율은 2014년 1.47명까지 올라서고, 아버지 육아휴직 참여가 개혁 전 3.5%에서 34%로 증가했다. 일과 가정생활 책임을 공평하게 분담할 수 있도록 하는 대책들을 내놔 정책변화를 일으킨 셈이다. 하지만 우리의 일가정양립 대책은 주로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하고, 임신기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식의 평범한 회사에서 이뤄지기 어려운 대책들이 대부분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김지영들이 우울한 대한민국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야할까.

김하늬 기자 hani4879@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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