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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롯데와 삼성, 재단출연에 다중잣대
2018-05-10 16:53:36 2018-05-11 07:42:29
대우건설 사장 후보 물밑 경합이 한창이다.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사장 자질로 업종 전문성과 도덕성을 따진단다. 그게 양립하는지 의문이다. 건설시장은 담합 적발 사례가 많다. 4대강 담합 사건에는 대우건설도 명단에 있다. 재개발·건축 입찰에선 조합에 뭘 더 얹어주다 적발된 비리도 잦다. 최근에도 현대건설이 관련 혐의로 압수수색을 받았다.
 
시장이 불투명한데 혼자만 깨끗하다고 문제가 풀리진 않는다. 되레 조합 선택을 받지 못해 시장에서 도태되기 일쑤다. 경영인은 입지가 불안해지면 유혹에 빠진다.
 
금품을 주고 사업을 따냈다면 그만큼 돈을 회수하고자 건축물 하자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건설적이지 않은 경쟁은 산업 발전도 역행한다. 하지만 이는 녹록지 않은 현실을 외면한 원론적 얘기다. 공정경쟁만으로 실적을 올리기까지 기다려 줄 대주주는 없다.
 
비슷한 원리가 재벌에도 대입된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재단 출연 기업들은 관행처럼 출연했다고 했다. 나만 빠지면 불이익을 당한다는 얘기다. 법원과 검찰은 처음에 이런 생리를 인정했다. 공소장에는 재단 출연 부분이 대통령 강요에 의한 협박으로 묘사됐다. 검찰은 재단 출연기업들을 기소하지 않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서도 재단 출연은 뇌물에서 빠졌다.
 
그런데 이중잣대 논란이 생기고 있다. 재판부가 재단 출연과 승마지원(유죄)을 달리 판단한 것이다. 얼핏 보기에도 둘은 구분되니 문제는 아닌 듯하다. 하지만 기업 심리를 따져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생긴다. 재단 출연 기업은 재계 순위대로 냈으니 누가 더 특혜를 바라고 낸 뇌물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니 강요와 협박에 가깝다는 것. 여기서 재단에 돈을 더 내라고 요구받은 게 롯데다. 협박의 연장선일까, 특혜를 바란 뇌물일까.
 
우선 롯데가 먼저 주겠다고 한 게 아니라 권유를 받은 점이 여느 뇌물사건과 다른 발단이다. 물론 권유를 받고 롯데는 특혜를 얻을 기회로 판단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황상 롯데는 내라고 한 돈을 깎으려 했다. 뇌물 청탁 과정에 에누리가 들어간 것도 상식적이지 않다. 이미 재단에 거금을 냈는데 더 내라는 돈 안 냈다가 불이익을 당하는 게 억울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고무줄 잣대다. 재단 출연에서 발전한 게 추가 출연이라면 승마지원은 그보다 지원방식에 밀도가 있다. 돈을 낸 심리도 협박, 강요에서 다르게 볼 여지가 좀 더 있다. 그럼에도 이재용 부회장은 풀려났고 신동빈 회장은 구속됐다.
 
신 회장 유죄 판결 법리 근거는 묵시적 청탁이다. ‘안종범 수첩’에 적힌 사업현안이 증거로 채택됐다. 수첩에 현안이 적힌 것은 다른 면담 총수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여기서도 잣대는 달라진 것이다. 포괄적 뇌물이 무죄라는 얘긴 아니다. 일해재단 등 과거 판례도 있다. 적용하려면 재단 출연 기업부터 해야지 그때그때 판단이 다르다면 사법부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얘기다.
 
이재용 부회장 집행유예 판결에 국민이 해당 판사 파면을 청원하자 청와대는 “그럴 권한은 없고 국민이 사법부를 비판할 수는 있다”고 했다. 비판은 불신에서 나온다. 불신은 고무줄 판결에서 나온다.
 
 
이재영 산업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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