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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편편)축복받지 못한 5G
2018-12-05 06:00:00 2018-12-05 06:00:00
12월1일은 한국 통신업계가 축제를 벌일 만한 날이었다. 이통 3사가 다 함께 대망의 5세대(G) 이동통신 주파수를 송출, 5G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무엇보다 세계 처음이다. 업계는 물론이요, 온 국민이 축하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러나 축하할 수가 없다. 도리어 근심의 눈으로 보게 된다. 이유는 지난달 24일 KT 통신구에서 일어난 화재사고 때문이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의 KT 아현빌딩 지하 통신구에서 일어난 화재로 유·무선 전화와 인터넷, IPTV가 며칠 동안 마비됐다. 사고가 난 서울 서대문구는 물론 인근 지역까지 뜻하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마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결혼식이 열리던 날 결혼의 여신이 참석했을 때와 같다. 그날 히메네오스의 횃불에서는 연기만 피어올랐다. 그래서 함께 있던 신들은 눈이 매워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이번 사고로 KT 통신망을 주로 이용하는 카드단말기가 작동을 멈췄다. 주말 장사에 큰 기대를 걸었던 음식점, 주점, 카페, 편의점 등의 소상인들이 날벼락을 맞았다. 만약 평일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은행업무나 주식거래 등 금융활동이 마비되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러니 축하하고픈 마음이 우러날 리 없다. 1994년 서울 종로5가에서도 통신선로 화재로 방송과 통신, 은행전산망이 마비된 일이 있었다. 이밖에도 크고 작은 화재사고가 이미 여러 차례 일어났었다. KT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 없는 것 같다. 
 
이번 사고의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꼽힌다. 우선 방재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이 직접 원인이다. 스프링클러나 백업시스템도 구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통신구의 크기와 등급 때문에 현행 소방법상 지켜야 할 ‘의무’로부터도 빠져나갔다. D등급으로 분류돼 백업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없는 통신구가 KT·SK텔레콤·LG유플러스 3사를 합쳐 모두 835곳에 이른다. 그러니 앞으로 언제 또 다시 유사한 사고가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간다는 한국 통신인프라의 민낯이다. 이렇게 ‘기본’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5G 서비스가 시행되니 조마조마하다.
 
5G는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초연결’ 시대의 핵심 기제다. 자율주행차나 스마트시티, 스마트공장 등 첨단 융합산업을 이끌 기반기술이기도 하다. 5G서비스가 더 확산되면 시민들의 삶은 5G 통신에 더욱 밀착될 것이다. 생활 방식도 상당히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반면 5G 서비스가 본격화된 이후 어느 날 갑자기 또 다시 이번과 같은 사고가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피해 규모는 지금보다 훨씬 클 것이다. 훨씬 많은 시민과 상점들이 날벼락을 맞을 공산이 크다. 자율주행차나 스마트공장에서 오작동으로 말미암아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정보통신 당국자들과 기업들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고 설명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모든 것이 정상작동할 때의 이야기이다. 정상작동할 때의 편리함이야 누가 모르겠는가. 그렇지만, 만에 하나 모종의 허점과 실수가 일어났을 때의 위험은 예측할 수 없다. 5G의 데이터 처리 속도가 LTE보다 20배 이상 빠르고 한꺼번에 전송할 수 있는 데이터 양도 100배 크다고 한다. 그러니 사고가 났을 때 20배나 100배, 아니면 그 제곱으로 피해가 늘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말하자면 ‘통신 핵폭탄’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러한 불길한 가능성을 이번 사고가 예고한 것이다.  
 
이 같은 ‘통신 핵폭탄’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명하다. 이번 사고의 원인을 잘 따져보면 된다. 우선 모든 통신구에 완벽한 화재방지 시설을 갖춰야 한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백업시스템도 제대로 구비해야 한다. 그밖의 예기치 못한 각종 재난을 막을 장치와 대책을 빈틈없이 마련해 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적지 않은 자금이 필요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기본적 투자다. 다소의 자금이 투입되더라도 미리 확실하게 대비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말로 비용을 아끼는 길이다. 사회를 위해 안전한 방법이요, 스스로에게도 유익한 길이다. 반대로 그런 투자를 아끼려다가는 훗날 엄청난 재난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야말로 ‘소탐대실’이다. 세계 6위의 수출규모를 자랑하는 나라에서 그런 어리석은 재앙은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
 
아직 시간은 있다. 5G 서비스는 우선 기업용 시장에서 시행되고, 일반고객 대상 서비스는 내년 3월에야 본격 개시된다. 그 이전에 필요한 방어장치를 완벽하게 갖춰야 한다. 완벽하지 않으면 일반고객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는 차라리 늦추는 것이 나을 것이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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