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지연된 정의, 또 한 해 넘기는 강기훈 사건
입력 : 2018-12-27 06:00:00 수정 : 2018-12-27 06:00:00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우리 시대 하나의 상징이다. 과거에는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친구도 죽음으로 몰아넣는 운동권의 패륜을 상징했다. 최근에는 국가공권력이 정권 유지를 위해 개인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은 조작사건을 상징했다.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다. 그런데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지금도 무엇인가를 상징한다. 지금은 지연된 정의를 상징한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27년이 지났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1991년 5월 8일 김기설이라는 청년이 서강대 옥상에서 분신자살했다. 자살임은 분명했다. 그런데 갑자기 유서가 대필되었다고 수사가 시작되었다. 유서는 자살자가 쓰는 당연한 현상이 이상하다고 공권력이 수사를 시작했다. 당시 27살이었던 강기훈은 자살방조죄로 기소되었다. 강기훈은 무죄를 호소했지만 대법원은 1992년 7월 24일 그를 자살방조 유죄로 확정했다. 노태우 정권에 대한 민주세력의 투쟁은 잦아들었다. 
 
당시에도 이 사건이 정권에 의하여 조작된 사건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참여정부가 들어서고 진실화해위원회는 2007년 11월 13일 새로운 필적감정결과 등을 기초로 재심이 필요하다는 진상규명 결정을 했다. 강기훈은 억울함을 풀기 위해 2008년 5월 서울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개시가 확정된 것은 무려 4년 반이나 시간이 흐른 2012년 12월 19일. 이후 재심사건에서 그는 2015년 5월 14일 최종적으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 과정까지 걸린 시간이 24년이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상규명 결정 이후만 따져도 7년 반이다. 
 
재심 무죄판결로 강기훈의 인권과 명예는 법적으로는 회복되었다. 하지만 최소한의 회복일 뿐이다. 그의 인생은 회복되지 못했다. 한 인간으로서 사랑하고 싸우고 가정을 꾸리고 직장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하고 친구, 배우자와 함께 지혜롭고 우아하게 늙어갈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자살방조범으로 살았다.
 
남은 것은 그에 대한 국가와 가해자들의 진솔한 사과와 배상이다. 그러나 자발적 사과와  배상은 없었다. 강기훈은 2015년 11월 3일 국가와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고등법원 판결이 나온 것은 2018년 5월 31일, 지금 이 사건은 상고되어 대법원이 심리 중이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강기훈의 손해배상소송 쟁점 중 중요한 것은 국가의 배상책임을 넘어 당시 무리하고 불법적인 수사를 통해 강기훈을 기소한 검사와 허위 감정을 한 감정인의 배상책임 인정 여부이다. 국가의 배상책임은 과거사 사건에서 여러 번 인정되었고 이 사건에서도 인정되었다. 개인 검사와 감정인의 책임을 따지는 것은 이 사건이 처음이다. 검사와 감정인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원래 국가는 하나의 조직체일 뿐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행위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전쟁범죄, 집단학살, 인도에 반하는 범죄에서는 국가 이외에도 개인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는다. 국가는 개인의 행동을 통하여 행동하기 마련이다. 
 
손해배상소송을 담당한 고등법원은 검사와 감정인의 개인 책임을 부정했다. 고등법원은 검사의 공소제기에 관한 판단이 비록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판단이 “당시의 자료에 비추어 경험칙이나 논리칙상 도저히 합리성을 긍정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른 경우에만 그 위법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하면서 검사 개인의 책임을 부정했다. 그리고 검사의 위법한 피의자조사, 변호인과의 접견권 침해, 위법한 피의사실 공표 등 개별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허위 감정을 한 감정인에 대해서도 소멸시효 완성을 인정했다. 결국 책임지는 것은 당시 실제 행동을 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국가일 뿐이다. 국가가 검사와 감정인을 대신하여 국민의 세금으로 강기훈에게 배상을 할 뿐이다. 반성과 사과는 없다. 
 
고등법원의 판결문을 보면 국가, 검사, 감정인의 책임을 가볍게 하기 위한 판사들의 피나는 노력이 보인다. 이 사건은 무고한 자를 처벌한 사건이다. 무고한 자를 처벌했던 인물 중에 판사들도 있다. 법원도 이 사건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법관들은 검사, 감정인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음은 법관들 순서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정의 실현은 지연되고 있다. 적폐청산은 단기간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 사건도 빨리 끝났어야 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슬프게도 강기훈 사건이 또 한 해를 넘기고 있다.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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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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