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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사건 피해자, 무죄확정 판결 전까지 국가상대 손배청구권 있다"
대법 "소송 낼 수 없는 장애사유 있어…국가가 그 원인 제공한 것"
2019-02-07 16:47:22 2019-02-07 16:55:25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불법구금과 고문을 자행한 수사관들이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더라도 피해자가 재심을 통해 무죄확정 판결을 받기 전까지는 국가를 상대로 하는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37년 전인 '전두환 정권' 시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법 연행된 뒤 기소돼 유죄확정판결을 받은 정모씨와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7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수사과정에서 불법구금이나 고문을 당한 피해자가 유죄 확정판결을 받고 수사관들을 직권남용, 감금 등 혐의로 고소했으나 ‘혐의 없음’ 결정까지 받았다가 나중에 재심절차에서 범죄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무죄판결을 선고받은 경우, 무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기대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며 "피해자가 무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국가배상책임을 청구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고, 채무자인 국가가 그 원인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원고 정씨도 같은 이유로 재심 개시 결정을 받았고, 재심법원이 ‘원고가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발언함으로써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이 초래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판결을 선고했다면, 이 무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원고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청구할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고 정씨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따른 진실규명신청을 하지 않았거나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됐다는 사정이 있더라도 같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렇다면, '사건 당시 수사과정에서 위법행위가 없었더라면 원고 정씨가 재심대상 사건에서 무죄판결을 선고받았을 고도의 개연성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재심대상 사건의 무죄판결 확정 전에 원고들이 권리행사를 할 수 있었다고 보고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을 받아들인 원심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정씨는 1981년 9월 경찰에 불법 연행된 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버스 안내양 등을 상대로 ‘이북은 하나라도 공평히 나눠 먹기 때문에 빵 걱정은 없다’는 등의 말로 북한 공산집단을 찬양해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했다"는 것이 혐의사실이었다. 1심은 정씨를 유죄로 판결하면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은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정씨가 상고했지만 대법원이 1984년 10월 상고를 기각하면서 판결이 확정됐다.
 
유죄 근거는 정씨와 증인의 법정진술, 이를 기재한 조서 뿐이었다. 그러나 정씨 진술은 수사 단계에서 경찰의 폭행과 고문에 의한 것이다. 기소 당시 정씨는 멀쩡하던  오른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었고 청력에도 이상이 생겼다. 정씨는 1982년 자신을 고문한 최모씨 등 수사관 3명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혐의없음 처분했다. 
 
정씨의 결백이 인정된 것은 30여년 후였다. 수원지법은 2014년 5월 정씨의 신청을 받아들여 재심개시를 결정했고, 이 결정은 그무렵 그대로 확정됐다. 정씨와 가족 등 10명은 2015년 3월 이 결정에 근거해 국가를 상대로 총 5억5000만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그러나 1, 2심은 정씨가 석방된 1982년 2월부터 소멸시효기간인 5년 내에 소송을 청구하지 않았다며 기각했다. 이에 정씨 등이 상고했다. 
 
대법원 청사. 사진/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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