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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정재영 "자식 잃은 고통?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입력 : 2014-04-10 오후 1:52:14
◇정재영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저벅저벅 눈 덮인 산 속을 헤맸다. 얼굴도 모르는, 딸을 죽인 가해자를 찾기 위해서다. 딸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미련하고 또 미련하게 눈 위를 걸었다. 말도 없고 표정변화도 없이 걸었다. 영화 '방황하는 칼날'에서 정재영이 연기한 상현의 모습이다.
 
이 영화는 끔찍한 사고로 딸을 잃고 살인자가 된 아버지와 그를 잡아야하는 형사의 추격을 그린 작품이다. 정재영은 딸을 잃고 살인자가 된 아버지 상현으로 분했다.
 
직장에서는 다소 소심하고, 아내없이 키우고 있는 딸에게는 무뚝뚝한 우리네 아버지 같은 상현이었다. 그런 그가 딸을 잃고는 무작정 가해자들을 찾아나선다. 행동 하나하나 표정 하나하나에서 딸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드러났다. 정재영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기 힘들었을 수 있다.
 
가벼운 역할과 무거운 역할을 자유자재로 오고가 '천의 얼굴'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정재영을 지난 9일 만났다. 연일 이어지는 인터뷰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특유의 쾌활함으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영화가 재밌었으면 재밌었다고 트위터에도 올리고, 페이스북에도 올려줘요"라며 유쾌하게 영화를 홍보하는 정재영 특유의 화법은 언제나 즐겁다.
 
◇"계산하기 힘들었던 상현, 촬영하니 감정이 훅 들어와"
 
평범한 아빠다. 야근이 잦고, 유일한 피붙이 딸과도 살갑지 못하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아빠에게 엄청난 불행이 찾아온다. 장난삼아 성폭행하는 10대들에게 딸이 목숨을 빼앗긴다. 그리고 우연히 찾아온 제보. 자신의 딸을 죽이는 영상을 보고 낄낄거리는 가해자를 발견하고 방망이를 휘두른다. 감정의 기복이 큰 상현은 오랜 연기 경력의 정재영에게도 난제였다.
 
정재영은 "상현을 어떻게 표현해야겠다고 머리로 생각하기 힘들었다. '진짜'를 보여주고 싶은데, 어떤게 진짜인지 몰랐다. 진짜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상현은 어떤 반응을 할까, 도저히 감이 안 잡혔다"고 밝혔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느낌대로, 감정대로였다. 최대한 고민을 많이하고 한 번에 표현하는 방식으로 촬영했다. 테이크의 횟수는 많지 않았지만, 길었다. 대본대로 하지도 않았다. "딸이 죽었다"는 경찰의 전화를 받았을 때 "재수없게 뭐 그런 말을 하냐"는 상현의 대사는 대본에 없었다. 툭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게 스크린으로 드러난다. 너무도 사실적인 연기는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하다.
 
정재영은 "촬영 전까지는 감정이 잘 안잡혔다. 그런데 막상 촬영을 하게 되면 감정이 훅 들어왔다. 딸이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사람을 죽일 때도, 마지막에 가해자과 대면했을 때도 '큐'하는 소리와 함께 감정이 들어왔다. 그래서 좀 더 사실적으로 그려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극중 상현이 가해자를 찾는 방식은 미련하다는 말로 밖에 표현이 안된다. 조금만 머리를 쓰면 고생을 덜하고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장 고되고 힘든 방식으로 가해자를 찾아나선다. 얼굴도 모르면서. 영화를 보다보면 상현에 대한 답답함이 전달된다. 그 미련함이 딸에 대한 죄책감을 덜려고 하는 상현의 발버둥인 것 같아 안타깝다.
 
"미련해도 너무 미련하다. IT시대인데 전화로 해결할 수도 있을텐데"라고 말한 정재영은 "그런데 아빠 입장으로 당사자가 되면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을 것 같다. 전직 형사였거나 노하우를 알고 있거나 그랬으면, 좀 철두철미하게 찾았을텐데, 평범한 아빠 아닌가. 나는 이게 더 사실적이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정재영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내가 만약 상현이었다면.."
 
영화에서 결국 상현은 또 다른 가해자 조두식을 만난다. 분노한다. 영화의 화두이자 가장 강력한 감정이 표출되는 장면이다.
 
만약 정재영이 상현의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극중에서 형사 역을 맡은 이성민은 "나였으면 바로 쏴 죽였을 것"이라고 강하게 말했다. 부성애는 법보다 위에 있는 듯 했다. 영화를 관람한 아버지들이 대부분 그렇게 말했다.
 
정재영은 "나 같으면 몰래 죽였을 것이다. 대놓고 만나지 않고 뒤에서 쏴죽이지 않았을까 싶다. 용서는 쉽지 않고, 지금까지 찾은 것도 힘든데, 그 놈을 어떻게 가만히 두겠나.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말했다.
 
극중 가해자 조두식은 죄책감이 없다. 분노한 상현 앞에서 "감옥 가면 되잖아요. 이 사람 좀 어떻게 해봐요"라며 목숨을 구걸한다. 고개숙여 "죄송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상현이 된 정재영은 조두식을 바라보며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정재영은 "걔 생각에는 늘상 하던 강간이었고, 죽일 생각은 없었던 건데, 재수없게 죽은 거다. '재수없네'라고 생각하는 거 정도. 죄책감이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며 "그의 행동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지 영화에서 드러난다. 중학생은 봐도 모를 수 있지만, 고등학생들은 봐도 될 것 같다. 청소년관람불가지만 부모님과 함께 봤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정재영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예능은 못해..작품으로 얘기하고 싶다"
 
기자들을 만나는 현장에서 정재영은 늘 웃음을 불러오는 배우다. 툭툭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취재진을 웃게 한다. 이성민이 "정재영은 유머로 유재석을 이길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정재영의 유머감각은 탁월하다. 
 
이 유머감각을 예능에 사용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그는 "예능은 못하겠어"라면서 손사레를 쳤다.
 
정재영은 "나는 방송에 적합하지 않은 개그를 한다. 남을 놀리면서 웃기거나 자해하면서 웃긴다. 대부분 토크쇼는 이야기를 원한다. 나는 말도 조리있게 못하고 이야기도 잘 못한다. 애드립을 좀 치는 건데, 예능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작품으로 얘기할께요"라고 말한 정재영은 "3개월 쉬었는데 몸이 근질근질하다. 지금 딱히 눈에 들어오는 시나리오가 없다. 빨리 좋은 작품을 만나서 연기하고 싶다"고 연기에 대한 갈망을 드러냈다.
 
함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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